생수를 마시기 위해 국내에서만 매년 56억병의 플라스틱 페트병이 만들어진다. 생수만이 살아있는 물이 아니다. 마실 수 있는 모든 물은 살아있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56억병의 생수용 플라스틱 페트병이 생산된다. 지구를 열네 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The Guardian이나 National Geographic 등의 매체들은 전 세계적으로 생수를 마시기 위해 생산되는 플라스틱 페트병이 연간 5천억병에 근접하며, 이것은 초당 약 1만6천병이 생산되는 꼴이라고 주장한다. 생수 시장은 연평균 3.3% 이상 계속 커지고 있다. 플라스틱은 99% 화석연료에서 만들어진다. 하여 국제사회는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재활용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생수를 둘러싼 플라스틱 경제는 거꾸로 가고 있다.
국내 생수 시장은 2010년 약 3900억원에서 2023년 2조3000억원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전 세계 생수 시장도 비슷한 흐름이다. 생수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건강에 대한 대중의 욕구 때문이다.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깨끗한 음용수는 필수다. 과거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생수를 찾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 그동안 정수 처리 능력이 대폭 향상되어 수돗물은 생수 못지않은 음용수다.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사람들은 생수를 고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가정용 정수기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집 안에서는 생수 대신 정수된 수돗물을 마시게 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집 밖에선 일회용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즐겨 마신다. 생수를 생산하는 대기업은 심지어 생수병을 패션과 연결해서 광고하기도 한다. 세련된 디자인과 더 비싸지는 생수병은 외출할 때 들고 있어야 하는 액세서리가 되어 가고 있다. 가방이나 선글라스 같은 소지품처럼 말이다.
물은 어느 시대든 인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1~2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못하면 견딜 수 있는 시간이 3일이 채 되지 못한다. 인류의 문명이 강을 끼고 발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물은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있어서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그 총량이 변한 적이 없다. 탄소처럼 말이다. 귀하지 않은 물은 없다. 정수 기술이 발전해서 수돗물이 깨끗해지고 마셔서 전혀 문제가 없는데, 불필요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환경에 유해하기까지 한 생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대중이 합리적인 않은 결정을 하는 데는 일차적으로 정부 탓이 크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말이다. 담당 책임 부서의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면에는 기업들의 이권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당연 영리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십분 양보해서 생수를 포기하지 못하더라도 기업은 생수 용기를 플라스틱 아닌 다른 물질로 대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측면에서 생수시장을 인정하더라도 플라스틱 병만큼은 바뀌어야 하고 그게 지속가능한 경제다.
플라스틱을 퇴출시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값싸고 편리한 이 재료는 우리 생활에 너무 깊게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부를 창출하는 산업별 국가별 이해충돌을 조정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의무화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체결을 위해 작년 부산에서 개최된 마지막 협상이 결렬된 것도 근본적으로 이런 이유다. 일보 진전을 위해선 문제를 명확히 하고 가야 할 길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문제가 얽혀 어려울 땐 좀 더 쉬운 것부터 순차로 푸는 게 상책이다. 지형 간 이해관계의 난맥과 단기간 대체재가 상용화되기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전반적인 플라스틱 퇴출은 두고 볼 일이다. 그래도 생수는 수돗물이라는 대체재도 분명하고 이해관계도 비교적 단순하다. 정부가 적극 장려하면서 손해를 보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사람들이 마음을 먹으면 된다. 이 대목에서 기후 언론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결국 대중의 기후리터러시가 답이다.
자원순환은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다. 필요를 넘어서는 과잉생산에 대한 원초적인 해결은 생산 자체를 줄이는 것이겠지만, 세상에 나온 자원을 재사용 또는 재활용하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 미만이다. 생수용 페트병은 재활용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전 세계적으로는 평균 50%이고 국내에선 80% 가까이 된다. 그렇다고 생수 페트병이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이렇게 재활용이 되는 데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수 병의 숫자를 보면 말이다.
사실 생수(生水)라는 말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는 다. 모든 물은 살아있다. 죽어 있는 물은 없다. 생수는 수돗물과 대비해서 더 비싸게 팔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케팅 용어다. 수돗물을 정수하기 위해 국내에서만 매해 3조6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다. 지구 전체로 보면 약 3000조원에 이른다. 소독 냄새가 난다고 피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금이다. 이것 하나부터 실천하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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