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복원은 세계 최초 산림생태복원모델인 만큼, 정부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의 명언이다. 숲은 훼손되면 어지간해서는 제 모습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자연이 회복시키는 게 아니라면 인간이 개입해서 완전 복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가리왕산의 생태적 가치는 조선 시대 초기부터 인정받았다. 조선 왕조 4대 임금인 세종은 가리왕산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하여 일반인이 함부로 출입하거나 벌목하지 못하게 했다. 500년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니 가리왕산은 말 그대로 ‘생태보고’다. 가리왕산 숲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민간 포함 정부의 국책개발 사업이 일체 금지된 곳이다. 하지만 반세기를 넘게 지켜온 노력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2018년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특별법까지 만들어 가며 이 금지를 깼다. 시민사회의 반발은 대회가 끝난 후 복원하겠다는 약속으로 무마했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원상 복구 의무는 상식이다. 사용이 끝났으니 원상 복구의 의무가 있고 더구나 국무조정실이 나서서 원상 복원을 약속했다. 숲을 이전으로 되돌리는 일은 사무실 원상 복구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다. 숲은 수많은 생물과 무생물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생태계다. 사무실 원상 복구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더욱이 우리는 숲을 복원해 본 경험이 전혀 없다. 세계적으로도 산림을 제대로 복원한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덜컥 해 놓은 복원 약속은 애시 당초 순탄할 수 없었다. 산림 복원을 위한 청사진도 능력도 재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원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올림픽이 개최된 단 2주와 500년을 맞바꾼 셈이다. 복원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하면 훨씬 더 긴 시간과 바꾼 꼴이 되었다. 만약 시간을 거래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전에 내린 불합리한 결정들을 일단 차치하고 십분 양해를 한다 해도, 올림픽이 끝나고 6년이 지난 지금, 약속된 복원은 진행되고 있어야 한다. 강원도와 산림청은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고 있다고 답하지만 아직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 정선군민들은 곤돌라의 철거를 막고 있어 계획은 계획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산림청과 환경부는 복원을 위해 행정 집행을 시도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강원도와 정선군은 주민들을 동원해 약속 이행을 폭력적으로 막곤 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총선을 겨냥한 민생토론회에서 곤돌라 존치와 개발을 약속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실무 부서의 행정 집행을 방해한 꼴이다. 가리왕산 곤돌라 존치 여부는 정부가 발표한 일정에 따라 조만간 결정되어야 한다. 산림청은 이를 위해 정선 주민 대표와 시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 합의 도출을 만들겠다고 한다. 8차에 걸친 협의체 회의에서 합의문 초안까지 어렵게 나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정선 군민들이 주장하는 ‘지역 소멸’은 가볍게 스칠 일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대한민국의 존속을 위해 넘어야 할 산 가운데 하나다. 만만한 산들이 아니다. 저 출산, 고령화와 지역 소멸은 하나의 문제에 다른 면들인지도 모른다. 서로 깊게 엮여 있다는 뜻이다. 지역 소멸 방지를 위해 지역 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곤돌라 운영이 지역 경제에 실질적이 도움이 될 것인지는 면밀하게 따져 볼 일이다. 실제로 여수와 통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리나라 지역 케이블카 운영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해당 지방정부의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어느 지역주민이 앞마당에 있는 숲과 자연이 훼손되는 걸 원하겠는가. 가리왕산은 대대로 정선 군민들에게는 자랑이자 보람이었을 것이다. 가리왕산 되살리기는 주민들에게도 간절한 소망이다. 문제는 인구소멸 등으로 인한 팍팍한 살림살이다. 살림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 관광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눈요기 관광이 아닌 치유와 생태가 연결 된 경험이 고부가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훼손된 가리왕산을 복원하는 과정이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고 생태계가 살아가는 신비한 과정을 지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리왕산의 복원 과정 자체가 매력적인 지역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숲을 복원하는 건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국내에서 해 본 경험이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도 아직 없다. 즉,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숲의 시간은 사뭇 다르다. 나무의 수명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 심지어 만년이 넘기도 한다. 어쩌면 이대로 가만히 두면 수백 년, 아니 한 천년쯤 지났을 때 훼손 된 숲은 원래의 자기 모습을 찾게 될지 모른다. 그만큼 자연의 회복력은 장대하고 위대하다. 인간이 개입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니 어려운 게다. 우리 인내심이 천년을 기다릴 수 없기에 작정한 것이고 관여했으면 성공해야 한다.
합의문 초안이 나왔다지만 앞으로의 할 일은 더 많아 보인다. 한발한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산림과 토양, 생물, 생태계, 야생동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모든 지식과 지혜를 모아야 할 일이다. 어렵게 이른 합의가 물거품이 되지 않고 미래 세대에 욕먹지 않으려면 당연한 일이다. 지역 소멸 극복이라는 정선군의 염원도 이 과정에서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생태 복원이라는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 나침반을 제대로 잡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정부와 민간의 힘으로 벅찬 시대적 과제다. 올림픽 국위선양이라는 국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던 만큼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다. 또 아는가.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성공한다면 ‘K-산림복원’이라는 말이 생길지 말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산림녹화’라는 기적을 이룬 나라다.
개발 단계에서 신중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