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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가 되돌려 놔야 할 것들, 자민당 독재와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방출

 

일본 정부는 민의를 수렴하지 않은 일방적 오염수 해양방류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생명체에서 발현되는 고유한 특징을 정치에서도 많은 부분 공유하기 때문이다. 생물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를 하듯 정치도 도전과 응전을 통해 진화를 한다. 정치의 본질은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살아있다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정치는 진화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죽어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를 ‘독재’라고 한다. 독재는 민의를 수렴하는 절차를 생략한다. 지금 일본의 정치는 70년 가까이 지탱해 온 ‘자민당 독재’라고 정리할 수 있다. 자민당 독재의 민낯은 2023년 8월 24일 후쿠시마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는 일본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지진 발생 30분 후 거대한 쓰나미가 해안선을 덮쳤고, 해안 지역의 많은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지진과 쓰나미로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원자로 냉각시스템이 마비되었다. 수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으며 냉각수 부족으로 원자로 내 핵연료 봉이 녹아내렸다. 지금도 사고 난 원자로에는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노출된 핵연료로 인해 오염수가 생겼고 빗물과 지하수가 흘러들면서 그 양은 130만 톤을 넘는다. 후쿠시마 제1원전을 책임지고 있는 도교전력은 이 오염수 처리 방안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도쿄전력은 핵 오염수 처리인 만큼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다. 우선 오염수를 추가 탱크에 저장하여 방사능 농도가 자연적으로 감소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삼중수소의 반감기가 12년이라고 보면 40~50년 정도가 소요된다. 추가로 저장탱크를 확보할 부지는 충분하다. 어차피 인근 30㎞이내는 방사능 유출로 사람이 살지 못한다. 이 밖에 지하 심층 주입, 고체화해서 매립하는 방법, 증발해서 대기 중에 방출하는 방법 등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결국 일본 정부는 가장 손쉽고 비용이 저렴한 해양 방출을 선택했다. 또한 가장 위험한 길을 잡은 것이다. 자국민에게나 국제 사회 모두에게 말이다.


도쿄전력의 실무 검토 안들이 모두 묵살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하기 전 2020년 4월부터 7월까지 다섯 차례의 화상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양 방류에 대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13일,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기준과 절차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동의했고, 자체 여론 조사에서도 일본 국민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는 걸 내세워 밀어붙였다.


당시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를 비롯하여 국제 사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본 내부 비판 여론도 들끓었다. 여론 조사에서 많은 일본 국민이 찬성했다고는 하나, 60% 이상이 다른 대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고 답변한 다른 여론 조사 결과도 있었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처리의 급박함을 호도하면서 자국민을 겁박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민주주의 제도가 ‘삼권 분립’이다. 일본 정부가 독선적인 정책을 집행할 때, 견제해야 할 법원과 의회는 없었다. 특히 의회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1955년 이래 거의 정권을 놓친 적이 없다. 다수의 총리들이 명멸했지만, 자민당 내 다수 파벌은 변한 적이 없다. 파벌의 원류는 태평양전쟁의 주범들이다. 현대 국가체제에서 몇몇 왕조국가를 제외하고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다. 자민당 장기집권의 원인에 대해서는 분분하겠지만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자민당 장기독재의 결과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까지 괴롭히고 있다. 핵 오염수 해양 방류는 바다를 공유하는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게 중요한 쟁점이다. 그럼에도 자민당의 정치적 독점구조와 관료 중심 정책 결정 방식은 민주적 절차가 작동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사실 후쿠시마 제1원전처럼 사고가 난 원자로에서, 그것도 핵연료에 직접 접촉한 물을 바다에 버리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사고가 나지 않은 원자로에서 온배수를 하천이나 바다에 흘려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핵연료에 직접 닿은 물은 절대 바다에 버리지 않는다. 핵 오염수가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현재 이런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며, 이는 다분히 자민당의 폐쇄적인 정치 때문이다.


올해 10월 1일 자민당 내 만년 소수파이자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 이시바 시게루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이전부터 자민당 의원이었지만 개혁적인 정견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지라 취임 직후 이시바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지지는 컸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그의 입지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을 합법적으로 재무장하는 개헌에 골몰할 게 아니라, 일본의 민주주의 정상화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야 한다. 하여 그동안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졌던 결정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일본 국민들이 바라는 바이고 총리로서 본인의 입지를 굳건하게 하는 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인류가 두 번째로 겪은 대규모 원전 사고다. 이후 일본은 한동안 원전 가동 자체를 중단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피해 규모도 막대했다.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후쿠시마 현 주민들을 다시 벼랑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행정 편의가 자국민과 인류의 삶보다 더 우선시될 수 없다. ‘잃어버린 30년’이 가져온 장기 경기 침체도 항간의 소문처럼 중앙은행 총재가 저지른 금리정책 실수라고 단순하게 볼 일은 아니다. 고여서 흐르지 않는 정치와 다분히 연결되어 있다.



도쿄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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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Dec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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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이 인류에게 어떤 해악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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