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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험이 전가(轉嫁)되는 이유

 

김용만 대표 편집인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 배터리 업체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지금까지 23명이 숨지고 3명이 형사 입건되었다. 사망자 23명의 국적은 한국 5명, 중국 17명, 라오스 1명이다. 18명이 이주노동자다. 한국 국적자 중 귀화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희생자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라고 봐야 한다. 더욱이 아리셀이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으로 파견받았다는 정황이 짙어지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까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아리셀의 모회사는 코스닥 등록 업체 에스코넥이다. 에스코넥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는 박순관 대표다. 아리셀 대표이기도 하다. 인력파견업체 메이셀은 직업소개업 등록을 하지 않았고 파견 허가도 없다고 한다. 메이셀 소재지는 아리셀 공장으로 되어 있다. 메이셀 관계자는 아리셀과의 연관을 부인한다. 사람도 주소지를 정할 때 무관한 곳으로 정하지 않는다. 하물며 이해관계에 민감한 법인은 말할 것도 없다. 모회사부터 인력파견업체까지 그려지는 가치사슬은 상식선에서 이해된다.


원인 파악과 진실 규명이 우선이다. 결과에 따라 책임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고 보상도 합당해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언론들은 연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상 말고 본질을 보자. 위험은 왜 전가되는지 말이다. 잘못이나 책임을 왜 다른 사람에게 넘겨씌우는지 말이다. 위험은 약자에서 강자로 전가되지는 않는다. 강자에서 약자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다른 당사자에게 위험 부담을 지우는 이유는 복잡하다. 한두 가지가 아니고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 측면을 보자. 비용과 잠재적 손실을 줄일 수 있고 내부에서 갖추지 못한 전문성 활용이 가능하다. 시장 변동에 용이하고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사회 측면에서는 법적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규제 요건을 충족시켜 정당성 유지가 가능하다. 현상의 기저에는 자본주의 시장 작동 메커니즘이 있다.


통제가 안 되는 시장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추구한다. 가급적 적게 비용을 투입해서 가능한 많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현 자본주의가 당면한 난관을 극복하는 길은 ‘개입 없는 시장의 자율 조정’이란 게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요체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리 녹록치 않다. 복잡한 이해관계들과 수많은 매개변수들이 점철되어 움직이는 곳이다. 많은 한계들이 드러나면서 신자유주의 실험은 실패했다는 게 정설이다.


신자유주의가 부추긴 ‘위험 전가’의 폐해는 심각하다. 세계는 지금 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용이 오히려 증가했고 내부 통제력을 상실했다. 의존도가 증가했고 위험이 집중되면서 사회적 비용이 상승했다. 책임 회피가 일상이 되면서 사회구성원 간 신뢰에 금이 갔다. 아직 ‘길’은 없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은 있는데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각개 전투’는 계속되어야 한다. 위험을 외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걸 막아야 한다. 결국 지역 주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지역 케이블카 건설은 재검토되어야 마땅하다.


자본주의는 내부 모순을 외부로 전가시켜 해결하려고 한다. 냉전이 막을 내리고 신냉전의 시대, 신자유주의는 이런 과정을 극대화했다. ‘네덜란드의 오류’를 기억하자.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의 생활은 지구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심하지 않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환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고 자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류’다. 경제 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을 글로벌 사우스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6월 30일 프랑스 총선이 치러진다. 미국 대선을 넘어 인류사 중요한 순간이 될 듯하다. 마크롱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극우 집단이 득세할 빌미를 주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젊은 대통령의 도박 탓에 프랑스에 극우 내각이 출범할 가능성이 크다. 극우 정당이 위험한 건 파시즘으로 경도되기 쉽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빚어 낸 비극의 역사를 보건대, 신자유주의가 가고 파시즘이 도래 하는 건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다.


극우 정당이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건 표면상 ‘이민 문제’ 때문이다. 난민을 포함한 이민 문제는 사실 모순의 전가에 따른 ‘기후 위기’에서 상당 부분 비롯되었다. ‘기후 난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때 이민자들은 꿈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국경을 넘는다. 재해와 전쟁으로 자국에서는 먹고 살 방편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대표가 이민을 반대하면서 환경 문제는 적극 개입하겠다고 한다. 괴이한 포퓰리즘이자 어이없는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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