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설] 음식물이 쓰레기가 되는 이유

 

인류는 화석연료 덕분에 기아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종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한 해 동안 13억톤의 음식물이 버려진다. 생산되는 음식물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버려지는 곳의 77%는 가정과 식당이다. 버려진다는 건 남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은 120억명 이상을 먹일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현재 인구가 80억명쯤 되니 남아도는 음식물이 생기는 건 언뜻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인간사회에서 ‘기아’라는 단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구의 9%인 7억3천만명은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불균형한 분배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모든 동물은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동물인 인간도 마찬가지다. 배고픔은 인류에게 종으로서 지구에 출현 한 이후 줄곧 숙명과도 같았다. 먹고사는 것에 관한한 30만년이라는 인류 역사 대부분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었다. 1만년 전 농업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소수 지배계층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식량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전체적인 기아 탈피가 본격화된 것은 화석연료 덕분이다. 그것도 백년이 채 안 된 최근의 일이다.


20세기 초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쉬가 개발한 화학공정이 출발이었다. 대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하는 공정인데, 이를 통해 질소 비료를 거의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현존 인구 절반의 생존은 이 화학공정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공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가 필요하다. 농기계와 관개 시스템 펌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석유다. 농축산물을 곳곳으로 유통시키는 물류망도 대부분 석유를 통해 가동된다.


화석연료는 공업의 구조와 내용만을 바꾼 게 아니다. 먹거리와 직접 연결된 1차 산업 자체의 구조와 내용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결과는 전대미문의 식량 생산 증대였다. 화석연료는 ‘기아’라는 숙명에서 인류를 구해 줄 ‘신의 선물’과 같았다.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이상변화와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화석연료 덕분에 기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지만, 인류의 멸종을 앞당기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화석연료 없이도 ‘배고픈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전환, 지속가능한 농업 기술 적용 보편화, 지역화된 식량 시스템 구축 등 갈 길은 준비되어 있다. 물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일은 현 농업시스템에 대한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다. 조금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위기는 기회다. 도전에 직면했던 인류가 항상 그래 왔듯이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다.


식량은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고르지 못한 분배와 낭비다. 자급자족이 아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농산물도 상품이다. 이윤추구를 위한 시장논리에 따라 분배되기 마련이다. 국가와 개인 간 구매력 격차는 분배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구매력을 키워 간격을 좁히는 게 관건이지만, 지역 중심의 식량 시스템 확대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지역의 필요는 가급적 지역 안에서 충족시키는 접근 방식이다. 유통 단계의 농산물 손실률이 11%에 이름을 감안할 때 적극적 검토가 필요하다.


음식물이 쓰레기가 되는 건 먼저 과잉 구매 때문이다. 그리고 보관과 관리 미흡이다. 과잉 구매는 기본적으로 수요 예측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수요 예측 실패는 개인적인 판단 잘못이라고 봐야겠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쇼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음식을 위한 식자재도 쇼핑을 한다. 온오프 쇼핑몰들은 무한 소비를 부추긴다. 이들 쇼핑몰은 고도의 데이터, 심리 분석 기반 알고리즘으로 무장하고 있다. 알고리즘의 치밀한 공격에 소비자들은 맥없이 지갑을 연다.


<지금 구매 하세요: 쇼핑의 음모>, 지난달 20일 넷플리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상은 얼마나 많은 물건이 생산되고 얼마나 빨리 버려지는 지를 통계를 가지고 가상현실로 시각화해서 보여 주었다. 매일 휴대폰 1300만개, 매일 의류 1억7천만벌이 폐기되고 있다. 불필요한 구매를 유도하는 술수를 하나씩 들춰내며 쇼핑은 소비자에 대한 음모라고 다큐는 결론을 낸다. 쇼핑의 음모는 휴대폰과 의류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소비가 정착되어야겠지만, 만들어진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 세계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비율은 20% 이하다. 미국의 경우 재활용률은 4%정도다. 미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재활용률이 95%에 이른다. 2013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큰 역할을 했다. 무게에 따른 유료화와 태그(RFID) 방식의 결합은 정책과 정보통신기술의 전 세계적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얽혀 있는 기후문제도 사람들이 마음을 먹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과거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고통 없는 구토제’ 개발에 골몰했다고 한다. 쌓여 있는 ‘산해진미’를 모두 맛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고, 음식을 먹고 게워 내는 일을 반복하는 축제를 매일 밤 열었다고 한다. 게워 낸 음식물 쓰레기가 만든 검붉은 강은 제국이 몰락하는 징후였다. 예나 지금이나 과도한 음식 소비는 탐욕의 상징이 되곤 한다. 탐욕을 멈추는 것이 건강을 잃지 않는 길이며, 인류가 종의 종말을 비껴가는 유일한 길이다.


화학비료로 인류는 식량증산에 성공했으나 과다한 사용으로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농업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

댓글 0개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