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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제는 ‘녹색경제’가 아니고 ‘청색경제’다

산업시대라는 틀을 버리지 않고서는 기후위기의 근본 해법은 없다. 생태시대로 전환이 절박하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한동안 ‘녹색경제(Green economy)’가 해답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존 경제의 대안으로 희망을 가졌다. 녹색경제는 효율뿐만 아니라 공정이라는 가치를 품고 있었다. 공정성은 저탄소 경제로의 정당한 전환을 주로 의미했다. 녹색경제의 추진력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법적구속력 있는 파리국제협약을 이끌었다. 녹색경제의 청사진에 따라 지구는 전대미문의 기후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녹색경제는 많은 선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구되었던 실행가능성을 성취하지 못했다. 경제 불균형과 이질적인 산업구조로 인해 개별 국가들은 온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은 야금야금 늘었다. 평균온도 억제 목표인 ‘1.5도’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올해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보여 준 기대 이하의 결과와 지난 12월 2일 폐막한 플라스틱국제협약 제5차 부산협상위원회가 결렬로 마무리된 건, 녹색경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정부는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연간 3000억 달러 기후대응재원 마련에 합의한 것을 성과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효성을 믿는 국가는 거의 없다. 애초 개발도상국들이 요구한 금액에 한참 못 미치고 그나마 재원을 부담할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허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병든 지구를 생각하면 녹색경제가 말하는 ‘자원순환’, ‘에너지전환’ 등을 통한 대대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당장 실천해야겠지만, 화석연료를 두고 꼬여 있는 이해관계를 풀 수 있는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는 ‘알렉산더 매듭 자르기’식으로 단칼에 잘라 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을 전제로 한다. 현실 세상에서는 전 세계를 강제하는 전제군주가 있을 수 없기에 이 방법은 동화 속에 놔두자. 결국 실패하고 있는 녹색경제가 아닌 다른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그 청사진이 바로 ‘청색경제’다. 그동안 녹색경제에 가려져 있었지만 바람막이를 걷어 내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청색경제(Blue economy)’는 생물이 진화하는 원리와 기제가 반영되어 운용되는 경제 방식을 말한다. 청색경제를 해양생태계와 산업에 국한해서 바라보는 해석은 항간의 오해다. 자연 전체 즉 생물을 모방해 그 노하우를 받아들인 기술 및 시스템이 작동하는 경제 생태계를 의미한다. ‘생물모방’은 생물에서 영감을 얻는 것에서 시작한다. 박테리아가 지구에 처음 나타난 이후 38억 년 동안 생물의 ‘자연선택’은 중단된 적이 없다. 선택에 실패한 생물은 화석이 되었고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생물은 선택에 성공한 존재들이다. 살아남았다는 건 나름의 비결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물모방’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경제가 산업시대의 향수를 떨치지 못한 엉거주춤한 도전이었다면, 청색경제는 하나의 과학기술을 넘어 ‘생태시대’를 여는 혁신적인 접근 전략이라 말할 수 있다. 생물들은 화석연료를 고갈시키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며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고서도 현재 우리가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을 해 왔다. 이보다 완벽한 모델은 없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된다. 청색경제는 생태계가 진화 경로를 유지하도록 하여 인류가 자연의 끊임없는 창조성, 적응력, 풍요로부터의 혜택을 누리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확신하고 있다. 산업시대가 발생시킨 ‘병증’은 산업시대 틀 내에서는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시대전환이 요구된다. 산업시대에서 생태시대로 넘어가지 않고서는 당면한 기후위기를 벗어날 길은 요원하다. 생태시대로 가는 문의 열쇠는 자연이 이미 가지고 있다. 열쇠를 찾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씩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면 될 일이다.


지구 표면의 3분의 1은 육지다. 그중 3분의 1은 인간이 거주하고 작물도 재배하는 곳이다. 또 3분의 1은 나무가 들어차 있는 숲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사막이다. 나미브사막의 풍뎅이는 수증기에서 물을 만들어 낸다. 사막에서 생존하는 비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과 숲은 점점 줄어들고 사막은 점점 늘고 있다. 나미브사막의 풍뎅이는 문제 해결의 열쇠다. 사막이 수풀로 우거지게 된다면, 늘어난 숲은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게 될 것이다. 관건은 관심과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다.


물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약속은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 이행의 현실적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도덕적 의무는 냉혹한 경제에 쉽게 굴복 당한다. 산업시대 규칙을 매만지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청색경제는 생태시대로 가는 ‘준비된 다리’다. 기후위기는 지구가 단순히 더워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후라는 비선형 세계에서 결과값은 지수 함수적이다. 단순 합을 넘어 인류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타격할 수 있다. 생태시대로의 전환은 환경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다.


인더스트리 5.0은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목표로 하는 산업을 넘어 산업이 사회에 미치는 역할과 기여를 강화하는 비전을 제시”하려고 하며, “인간 중심(Human-Centric), 지속 가능성(Sustainable), 탄력성(Resilient) 향상을 더하는 것"이라고 2020년 출간한 “Industry 5.0 – Human-centric, sustainable and resilient”에서 유럽위원회의 연구 및 혁신 총괄 사무국(Directorate-General for Research and Innovation, European Commission)은 밝히고 있다. (사진_European Commission: https://data.europa.eu/doi/10.2777/07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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