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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상이 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김용만 대표 편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발한 지 2년 4개월이 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력 침공한 지 9개월이 되어 간다. 전쟁도 길어지면 일상이 된다. 전쟁이 일상이 되면 죽음도 일상이 된다. 일상이 된 죽음은 더는 끔찍하지도, 참혹하지도 않다. 일본 도쿄전력은 지난 6월 28일 후쿠시마 오염수 7차 해양방류를 개시했다. 이번 방류는 이번 달 16일까지 진행되며 방류량은 종전 회차와 동일한 7800톤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더는 세간의 관심이 크지 않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13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주변국은 이해할 수 없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여론 또한 들끓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처리 정화 기술인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 고도액체처리시스템)의 타당성 홍보로 대응했다. 2023년 7월 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ALPS로 처리된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결국 2023년 8월 24일 도쿄전력은 방류를 개시했다. 11개월이 된 지금, 어느덧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ALPS로 처리된 오염수를 ‘처리수’라 부른다.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방류 되는 물을 더 이상 ‘오염수’라 부르지 말아 달라 한다. 이를 위해 일본 총리 등 고위 정치인들까지 방송에 동원 되곤 한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일본은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다.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공업용수나 농업용수로 쓰면 될 일이다. 아까운 물을 굳이 바다에 버릴 이유가 없다. 많은 수고와 돈을 애써 들이면서 말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촉진하고 원자력 안전과 보안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국제기구이다. 검증기관이라기보다는 국제협력과 기술지원, 기준설정, 감시활동을 주도하는 다목적 국제기구라 할 수 있다. 검증을 한다면 핵 비확산 분야에 한정된다. 애당초 IAEA는 오염수 방류 여부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IAEA가 원자력 분야 전반을 검증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직관일 뿐이다.


더욱이 IAEA 의견이 유엔(UN)의 공식 입장이라는 오해가 만연하다. UN 인권 최고대표부가 낸 특별보고서는 IAEA와는 상반된 내용을 보여 준다. 독립적인 UN 전문가 집단이 평가했다. 후쿠시마 ALPS 처리수는 여전히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는 ‘오염수’임을 확인한다. 특별보고서는 “도쿄전력이 방사성 트리튬(Tritium) 물질에 계속 기만하고 있으며, 기본적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유기화합물 삼중수소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유엔(UN)의 공식 입장은 없다. UN 산하 국제기구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합의를 도출한 적이 없다. 전 세계 과학계의 합의도 없다. 미국 전 지역 100여 개 해양연구소로 구성된 미국해양연구소협회는 2022년 12월 12일 공식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는 “일본이 주장하는 안전성에는 적절하고 과학적인 데이터가 결여되어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IAEA 종합보고서는 우리에게 ‘금과옥조’가 되어 있다. 이견(異見)을 말하려고 하면 “국제원자력기구도 못 믿으면 괴담을 믿을까” 하면서 타박을 한다. IAEA 종합보고서가 ‘면죄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도쿄전력은 앞으로 30~40년은 계속 방류를 하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보관된 오염수 양과 쌓일 양을 가늠하면 훨씬 더 오래 방류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다. 끝이 안 날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에 ‘너무 늦은’ 일은 없다. 잘못 끼운 단추는 풀어서 다시 맞게 끼우면 된다. 상황을 직시하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우리는 너무 일찍 포기했다.


도쿄전력은 대외적으론 오염수 해양 방출이 인체에 무해하고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23년 3월 도쿄전력 내부보고서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잠재적 손해배상 지급을 예상하고 그 규모와 대응 방안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사실 다수에게 직접 피해를 주고 이로 인한 막대한 손해배상은 불가피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일본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다행이다. 다만 한국법원에서 받아 주지 않아 일본법원으로 가야 하는 건 못내 아쉽다. 그러다 보니 소송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징벌적 집단소송 전통이 강한 미국법원을 통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실용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이 경우 보통 소송비용은 법무법인이 감당하니 말이다. 하지만 물질 보상은 부차적이다. 소송으로 압박하는 목적은 결국 반인륜적 오염수 방류를 더 이상 못하게 막기 위함이다.



런던협약·런던 의정서 당사국 총회 현장. 출처 : 국제해사기구 IMO. 오염수 방류는 2023년 8월에 시작됐지만, 종료 시한은 없다. 런던의정서 총회에 참석한 각국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문제 제기 하고 있다.
런던협약·런던의정서 당사국 총회 현장. 출 : 국제해사기구 IMO. 오염수 방류는 2023년 8월에 시작됐지만, 종료 시한은 없다. 런던의정서 총회에 참석한 각국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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