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대표 편집인
저마다 얼굴이 다르 듯 지역도 다 다르다. 그 특색에 자부심을 갖느냐 못 갖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킨 나라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역사의 엄혹한 교훈이다. 지역의 현재는 나름의 이야기와 경험이 쌓인 결과다. 그 미래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해야 튼튼한 법이다. 그저 ‘따라가기’는 안 될 일이다. ‘케이블카 건설 붐’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꼬를 튼 곳은 강원도다. 강원도는 지난해 11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을 개최했다. 기세를 몰아 지역 6곳에 추가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울산, 전주, 부산, 경남 산청군, 함양군, 전남 구례군 등이 줄을 서고 있다. 예상컨대 더 늘어날 것이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추진 41년 만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착공식에 참석했다. 정부가 내락한 모양새다. 이제 지역 케이블카 건설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다.
해당 지자체는 최대한 환경파괴 없이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최대한’이라는 말이 함정이다. 이 말은 노력해보겠다는 의미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를 함축한다. 결국 ‘환경영향평가’로 걸러 낼 수밖에 없다. 책임부서인 환경부가 빈틈없이 임무 수행을 하는 건 당연하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 국가책임공탁제’ 도입이 시급하다. 사업자 입맛에 맞는 환경영향평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운영되면 지역 내 생산유발효과와 취업유발효과가 크다고 한다. 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전에 시장 조사와 타당성 분석을 철저하게 한다. 기업의 존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분석과 미흡한 조사로 시작된 신사업으로 퇴출되는 기업들이 시장경제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들이 제대로 수익 타당성 검토를 했는지 모르겠다. 시장에 나와 있는 케이블카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다.
강원도는 케이블카 사업에 전부를 건 듯하다. 약속한 대로 가리왕산을 복원하라는 산림청과 환경부의 행정명령에 요지부동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위험해 보이지만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내릴 수 없다는 것일까. 부채질한 정부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덩달아 다른 지자체들도 호랑이 등에 올라타려 하니 심각한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차가운 제동이 필요하다.
이 와중에 김완섭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환경부 장관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오는 22일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김 후보자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강원 원주을에 출마했었다. 당시 공약 가운데 ‘치악산 케이블카 건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일부 언론은 지역의 숙원사업인 케이블카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반기는 기사를 내놨다. 김 후보자가 강원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책임지고 있으며 케이블카 사업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부서다. 그런 부서의 수장 자리에 케이블카 사업을 대놓고 찬성하는 사람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명약관화다. 허가권을 주겠다고 하면 말리기도 어렵다. 부서 수장이 이럴진대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왜 하필 이때냐’라고 하면 음모론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보자. 강원도가 나서고 다른 지자체들이 동조하는 ‘케이블카 붐’ 시국이다. 거기에 케이블카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개발 지향적 인물이 환경부장관에 지명되었다면 의구심이 드는 게 합리적이다.
기상청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평균 기온은 계속 오르고 있다. ‘탄소감축’을 위해 노력했건만 여전히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위기는 성격상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환경부와 산림청은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양대 축이다. 얼마 전 취임한 산림청장은 산림청차장 출신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다. 환경부도 '생태감수성'을 지닌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수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미래를 위해 타협할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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