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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디지털 세상에 만드는 숲

 

2024-10-03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아빠, 새 덕후 영상 봐도 돼?” 

“물론이지. 하지만 더 좋은 건 우리 주변의 새를 너의 눈으로 직접 관찰하는 거란다.” 

영상을 통한 학습도 좋지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드론 카메라가 대자연의 모습을 고화질로 제공하다


자연을 기록하는 광학기기의 발달은 눈이 부십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화질 사진과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매 순간 SNS를 통해 공유됩니다. 아마추어들을 위한 중급기 정도 카메라의 센서로 4K, 8K 영상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는 센서로 들어오는 정보 중 사람의 눈이라고 판단되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 추적합니다. 새를 비롯한 동물의 눈을 추적하는 카메라도 있습니다. 렌즈들은 빠르게 조용하고 빠르게 촛점을 잡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영상을 위한 짐벌은 매년 새 제품이 나옵니다. 짐벌이 달린 채 출시되는 영상용 카메라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드론은 자동으로 촬영자를 따라가며 촬영해 줍니다. 항상 들고 다닐 수 있는 작고 가벼운 드론부터 고화소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는 중대형 드론까지 선택지도 다양합니다. 최근 공개되는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은 대자연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각도에서 고화질로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은 평면적이며, 시청자와 상호 작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촬영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제공되는 영상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가상의 숲속을 누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속도로 가상 세계의 숲속을 거닐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내가 원하는 곳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이런 고민을 오랫동안 해 온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들입니다. 우리는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던전을 탐험하기도 하고,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거나, 자동차와 비행기를 몰기도 합니다. 게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게임 속 세계와 상호 작용합니다. 


파리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 등장한, 어쌔신 크리드 게임의 주인공


지난 2024 파리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어떤 게임이기에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까지 참여했을까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프랑스의 유비소프트(Ubisoft)가 개발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실제 역사적 사건 속에 가상의 이야기를 끼워 넣고, 그 안에서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게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고,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와 소설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의 위대한 점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도시를 그대로 모델링해서 가상세계에 구현한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한창인 18세기의 파리, 산업혁명이 한창인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외에도 아테네, 멤피스, 예루살렘, 베네치아, 로마, 콘스탄티노플 등 세계사의 중요한 지점들을 가상세계에 구현합니다.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역사적 고증에 아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기에 미국에서는 어쌔신 크리드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거나, 코로나 시대의 수학 여행지로 이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게임 속 가상세계는 이제 역사와 문화 영역에서도 중요한 공간입니다.


가상세계에서, 숲은 왜 여전히 어설플까요


가상세계의 숲은 어떨까요?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같은 게임에서는 대면적의 숲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 숲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최신 게임들의 그래픽은 놀랄 만큼 사실적입니다. 그런데 왜 숲은 여전히 어설프게 표현될까요? 나무는 도시의 인공적인 구조물들처럼 육면체나 원통의 형태로 단순하게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나무의 잎과 가지는 정밀하고 복잡하게 생겼으며, 무수히 많습니다. 게다가 바람에 흩날리거나 빛을 투과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가상세계의 숲을 구현하기 위해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는 무수히 많은 나뭇잎의 형태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연산해야 합니다. 아주 성능 좋은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그 모델을 구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숲과 나무는 게임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일 뿐인 경우가 많아 시스템 자원의 많은 부분을 할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인공과의 거리에 따른 최적화 기술을 적용합니다. 주인공이 가까이 다가가면 자세한 모습을 보여 주고, 멀어지면 단순하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게임을 해보신 분들은 주인공과 숲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나무가 단순한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래픽이 덜컥거리고 갑자기 눈에 띄게 단순해지는 장면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나무는 납작한 평면 위의 텍스처로만 표현됩니다. 이러한 기술의 적용은 컴퓨터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가상의 숲을 여행하는 사람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안방에서 열대 원시림과 한대림을 가상세계로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이 업데이트되면서 식물을 평면 위의 텍스처가 아닌 실제 폴리곤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는 훨씬 사실적인 가상세계의 숲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상세계에 사실적인 숲을 만드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일까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너무 바쁘고, 주말에는 고갈된 체력을 충전하느라 숲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침대 또는 소파에 누워 제한적으로나마 숲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노인과 어린아이, 장애인들도 안전하게 원시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열대림이나 거대한 한대림, 추워서 가기 힘든 영구동토의 생태계를 탐험할 수도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열대림이나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비행기표를 사지 않아도 됩니다. 위대한 엔지니어와 개발자들은 거대한 숲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디지털 세상에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서 조금 더 사실적인 숲을 만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애플과 메타라는 세계 최정상의 빅테크 기업들은 Apple Vision Pro나 Meta Quest 3와 같은 VR기기 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지만 관련 기술은 빠르게 발달하고 있으며, VR 기반의 자연 체험 영상, 콘서트 영상, 게임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숲을 경험하는 방식에 새로운 선택지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가상세계의 숲으로 실제 숲의 변화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생태계 보전과 연구 영역에서도 혁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삽니다. 숲은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천천히 변해갑니다. 인간은 고작 50년 정도 숲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숲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숲을 경영하는 것 또한 비슷합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숲을 가꾸는 사람들의 행위는 숲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나무를 심는다면 혹은 이 나무를 벤다면, 이후 숲은 어떻게 변해갈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상세계의 숲을 이용한다면 우리는 실제 나무를 베지 않고도 숲의 변화 과정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습니다. 광릉숲이나 원대리 자작나무숲과 같은 숲을 정밀하게 측정한 뒤, 가상세계에 그대로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의 시간을 빠르게 돌림으로써 수십 년을 기다리지 않고도 기후변화나 산불 같은 재난 이후에 숲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 낸 뒤 숲이 변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함께 지켜보거나, 나아가 가상의 나무를 직접 심고 베어 봄으로써 올바르게 숲을 경영하는 방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나갈 수 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가 교육용으로 활용된 것처럼 가상세계의 숲 또한 시민들에게 깊이 있는 환경교육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숲의 모습을 기록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입니다.

기업, 정부, 시민사회의 협력으로 '디지털 세상의 숲'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디지털 세상의 숲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정부와 시민, 기업이 함께 숲을 만들어 온 우리의 역사처럼 디지털 세상의 숲 또한 잘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주체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기업의 참여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같은 대형 IT 기업 외에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크래프톤과 같은 게임 개발사 또한 크게 성장했습니다. 국내외 시장에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들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IT 기업들 또한 ESG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이 정부, 시민사회와 함께 디지털 세상의 숲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게임 개발사는 가상의 숲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직원의 숙련도를 향상시킬 수 있고, 개발한 그래픽 소스를 향후 게임 개발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광릉숲과 같이 모델이 되어 줄 수 있을 만한 숲 현장과 관련 자료를 제공할 수 있고, 성과물의 활용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은 다자간 협력을 주도하면서 개발자들이 숲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숲의 세세한 내용들을 자문하거나 실제 데이터 수집과 제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네이처링과 같은 훌륭한 기업에서 축적한 데이터 또한 가상의 숲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디지털 세상의 숲은 더 현실의 숲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디지털 세상의 숲도 자란다


저는 제 딸이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더 깊이 느끼기를 바랍니다. 숲을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의 변환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으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탄소와 질소가 순환하고,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리쬐고, 생물들이 각자의 자리를 위해 다투는 공간으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저 멀리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가까이 다가오는 빗소리, 숲의 천장을 뚫고 내리는 비가 내 몸에 닿을 때의 서늘한 느낌, 숲의 바닥과 죽은 나무에서 느껴지는 미생물의 냄새, 낙엽과 나뭇가지, 숲의 토양을 밟고 걸어갈 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바스락거림, 쪼그리고 앉거나 엎드려야만 관찰할 수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숲의 작은 존재들,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려오는 다양한 산새들의 노랫소리, 나무를 두드리며 먹이를 찾는 딱다구리 소리, 손에 만져지는 나무껍질의 촉감,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햇살이 피부에 닿는 순간의 느낌과 같은 것들은 디지털 세상에 구현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저는 제 딸이 모든 감각으로 숲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든 감각으로 숲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기조차 귀찮아질 때는 디지털 세상의 숲으로 오세요. 그곳의 숲도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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