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7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아빠, 백년숲 현관에 엄청 큰 거미가 거미줄을 쳤어!”
“하하! 정원의 생물다양성이 사무실 안으로 확장되고 있네.”
백년숲을 찾는 손님들이 놀라지 않도록 거미는 조심스레 정원으로 돌려보내 줍니다. 우리는 숲과 가까이에서 살고, 숲과 가까이에서 일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한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실내에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들어온다면 그 종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도시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종과의 공존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백년숲의 정원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살아가고, 그 식물들을 찾는 벌과 나비, 박각시가 찾아옵니다. 한껏 익은 가을의 감나무를 찾는 직박구리와 박새, 곤줄박이, 동박새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가끔 길고양이가 정원 구석에서 볕을 쬐기도 합니다. 정원 구석에 간단한 음식물 쓰레기를 묻는 곳이 있는데, 땅을 조금만 파도 지렁이와 쥐며느리가 잔뜩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위한 공간인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눈길을 돌려보면 다양한 생물들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양함은 자연의 본질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같은 종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다양성이 존재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도시가 아닌 숲으로 가면 더 거대한 다양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바닷속이나 땅속에도 놀라운 생물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균, 고세균, 곰팡이, 선충 등 미생물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사용한 숫자의 개념이 아득해질 정도로 많은 다양성과 복잡성이 존재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인간은 발 아래 흙 속에서 어떤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주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은 왜 이렇게도 다양할까요? 양분이 풍부하고 온도와 습도, 산성도가 딱 맞는 흙이 있다면 모든 미생물은 그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생물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곳에 공간이 많음에도 한 곳에만 몰려사는 데서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미생물들은 고민합니다. ‘추위에 견딜 수 있다면 저 넓은 땅에 있는 자원은 모두 나의 것일 텐데.’, ‘적은 양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면 빛과 물이 많은 땅에 살 수 있을 텐데.’, ‘그늘에서 살 수 있다면 큰 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유기물을 먹을 수 있을 텐데.’ 각자의 방식으로 경쟁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습니다. 물, 온도, 산성도, 먹이, 은신처 등 모든 자원이 협상과 적응의 대상이 됩니다.
생태학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니체(niche)’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니체는 생태계 안에서 생물이 차지하는 ‘지위’를 의미합니다. 먹이사슬에서의 위치, 온도, 빛, 수분 등 모든 조건이 그 생물의 니체, 즉 그 생물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생태자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생태자리가 겹치면서 발생하는 경쟁과 비효율을 피하기 위한 노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얕은 뿌리를 가진 식물은 토양 표면 근처의 수분을 흡수하는 반면, 깊은 뿌리를 가진 식물은 더 깊은 곳에서 물과 양분을 얻습니다. 서로 다른 종의 개미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 먹이를 찾거나 한 종은 식물의 씨앗을, 다른 종은 곤충을 잡아먹는 것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생태자리를 나누기도 합니다. 다윈의 연구로 유명한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들은 먹이에 따라 서로 다른 부리 모양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생물종들이 경쟁을 줄이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공존합니다.
같은 종 사이에서 생태자리를 나누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서울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고 더 많은 집이 생깁니다. 좋은 점들도 있지만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교통 혼잡, 상하수도 문제, 각종 환경오염과 높아지는 경쟁, 낮아지는 삶의 질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높은 밀도를 견디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높은 밀도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삶을 찾아 서울을 떠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호남의 평야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강원도의 숲 가까이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제주의 바다를 찾거나, 잘 정돈된 신도시로 사는 곳을 옮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같고 또 다릅니다. 인간(Homo sapiens)과 소나무(Pinus densiflora)는 전혀 다른 생명체 같지만 우리는 DNA에 기반한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인간도 소나무도 각자의 DNA에 기록된 순서대로 아미노산을 연결하고 단백질을 합성해서 생명의 구조와 기능을 만들고 이어갑니다. 저와 아내는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거의 같은 DNA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차이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러 단계의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다양성의 틀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조금 더 이어가겠습니다.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숲은 생물다양성이 보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