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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질소가 만드는 숲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9. 26.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끝나 가고 있습니다. 낮이 짧아지고 이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길어진 여름을 만끽하던 나무들이 바빠졌습니다. 급하게 찾아온 짧은 가을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무들은 천천히 초록을 거두어들이고 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나무는 왜 잎을 떨어뜨릴까요? 나무가 잎을 떨어뜨릴지 말지 결정하게 하는 인자는 대체로 온도와 물입니다. 온대 지방인 우리나라의 경우, 겨울이 되면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땅이 얼어붙으면 식물은 광합성에 필요한 물을 구할 수 없게 됩니다. 비도 적게 오는 계절인 겨울에 말라죽지 않으려면 증산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물을 소모하는 구조인 잎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추운 고위도 지방에는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상록성 침엽수림인 타이가 숲이 있습니다. 춥고 미생물의 활동이 더딘 타이가 숲에서는 나무가 떨어뜨린 잎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다시 양분의 형태로 나무에 흡수되기까지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잎을 떨어뜨렸다가는 새 잎을 만들 양분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이가 숲의 나무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오래 잎을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더 추운 지역으로 가보면 사계절 잎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워 아주 짧은 여름에만 잎을 내고 긴 계절을 잎 없이 버티는 나무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것보다 더 추운 극지방에는 나무가 없고 이끼와 관목만 존재하는 영구동토의 툰드라 지대가 나타납니다.


추운 지방에서만 낙엽의 전략을 고민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도에 가까운 열대 지방의 나무들 또한 잎을 달고 있을지, 떨어뜨릴지 고민합니다. 자주 비가 내리는 열대우림의 경우 나무들이 일년 내내 잎을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기와 우기가 번갈아 찾아오는 열대낙엽수림에서는 우기에만 잎을 달고 있고, 건기에는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나무들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고 건조와 손상으로부터 살아있는 조직을 지킵니다.

가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고, 산 꼭대기에서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애써 만든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 나무에게는 손해가 아닐까요?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선택된 전략들은 대체로 꽤나 효율적인 방식들입니다. 여름이 끝나가고 낮이 짧아지면 나무는 봄부터 애써 만든 잎의 초록색 성분인 엽록소들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엽록소를 분해해서 얻은 소중한 질소는 내년을 위해 나무의 몸 안으로 흡수하고, 곧 떨어뜨릴 잎에는 상대적으로 흔한 탄소를 남김으로써 손해를 최소화합니다. 초록색 엽록소가 분해되고 나서야 그 아래 감춰져 있던 잎의 원래 색인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 노란색과 주황색 색소) 또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 빨간색과 보라색 색소)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곧 만나게 될 가을의 풍경입니다. 

나뭇잎의 본래 색이 드러나는 가을이 오고있습니다.

왜 질소는 흡수하고 탄소는 버릴까요? 질소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언제나 질소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대기의 78%는 질소입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산소가 21%를 차지하므로 둘을 합치면 99%입니다. 나머지 모든 종류의 기체를 합쳐도 1%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질소는 지구의 대기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기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흔한 질소는 식물이 이용할 수 없습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 N2는 질소 원자 두 개가 삼중결합을 하고 있는데, 이 결합은 정말이지 강력하고 안정적인 결합입니다. 이 결합을 끊으려면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결합을 끊어내야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암모늄(NH4+)이나 질산(NO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안정적인 질소의 삼중결합을 끊고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이온 형태의 질소로 만드는 과정을 우리는 질소고정(nitrogen fixation)이라고 합니다. 자연 상태의 토양에서는 이 역할을 주로 콩과 식물과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Rhizobium)나 오리나무류와 공생하는 방선균(Frankia)이 해 왔습니다. 콩과 식물이나 오리나무류는 뿌리에 작은 혹처럼 생긴 방을 만들어 두고 그곳에서 질소를 고정하는 박테리아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박테리아들이 먹고살 수 있는 탄수화물을 공급해 주고, 박테리아들은 질소를 암모늄이나 질산으로 만들어 식물에게 줍니다. 소중한 질소를 얻기 위한 식물과 박테리아의 공생은 아주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반면 탄소는 대기 중의 0.03%에 불과한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식물이 이용하기 편한 구조입니다. 물과 햇빛만 있다면 잎의 뒷면에 있는 기공으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광합성을 통해 탄수화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미생물이 만들어 주는 소중한 질소는 아껴 써야 하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는 탄소는 언제든지 직접 탄수화물로 만들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아낄 필요가 덜합니다. 이렇게 나무가 떨어뜨린 낙엽은 토양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물들에게 요긴한 먹이이자 소중한 보금자리가 됩니다. 

낙엽은 대부분 탄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질소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옥하다고 생각하는 땅의 모습을 상상해볼까요? 부드럽고, 촉촉하고, 거름이 될 만한 유기물이 풍부한 모습입니다. 이런 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경이 0.002mm 이하인 진흙 입자가 풍부합니다. 진흙 입자의 표면은 대체로 음전하(-)를 띱니다. 그곳에 슬쩍 붙어있는 암모늄(NH4+)과 같은 양이온들은 물과 함께 식물에게 흡수됩니다. 소중한 암모늄(NH4+)과 질산(NO₃⁻) 이온은 물에 잘 녹습니다. 비가 자주 내리거나 토양이 산성화되면 물에 녹은 질소 이온들은 식물이 이용할 틈도 없이 땅속 깊은 곳을 지나 하천으로 흘러가버립니다. 숲에서 질소가 항상 모자라는 이유입니다.


나무는 사람과 다르지만 또 같습니다. 나무와 사람은 생김새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DNA에 기반해 단백질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DNA에 기록된 순서대로 아미노산을 연결해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은 우리 삶의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일입니다. 식물은 힘들게 얻은 질소를 이용해 DNA도 만들고, 세포의 각종 소기관도 만들고, 소중한 엽록소도 만들어야 합니다. 질소가 있어야 엽록소를 만들 수 있고, 엽록소가 있어야 광합성을 할 수 있습니다. 질소가 없으면 엽록소를 만들 수 없으니 광합성이 시원치 않고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식물을 먹고사는 사람도 농사를 짓기 위해 대량의 질소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나 가축의 배설물에서 얻은 질소로 거름을 만들거나, 콩과 식물의 돌려짓기를 통해 농경지의 질소를 보충했습니다. 1908년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와 카를 보슈(Carl Bosch)가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인류는 화학비료를 통해 농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인간도 공기로 빵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만 질소의 삼중결합을 끊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 인간은 많은 에너지를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와 아산화질소(N2O)와 같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의한 질소 고정은 풍요로운 세상을 만듦과 동시에 기후변화나 생물 다양성 감소와 같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질소는 숲의 비옥함 그 자체입니다. 나무는 박테리아와의 공생을 통해 질소를 고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질소로 만든 엽록소에서 광합성을 하며 큰 숲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화학적으로 질소를 고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질소로 거대한 농경지와 가축의 무리를 만들었습니다. 귀했던 질소는 어느새 지나치게 많은 양이 농경지에 뿌려짐으로써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부영양화로 인해 강과 바다에서 녹조나 적조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적당한 양의 질소가 필요한 생태계에서 순환해야 합니다. 소중한 질소가 오염물질이 아닌 숲으로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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