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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탄소가 만드는 숲 (상)

 

2024-10-10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늦었지만 빠르게 가을이 왔습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시나무는 추위에 약한 나무일까요? 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사시나무가 속한 포플러속(Populus)의 나무들은 북반구의 아열대지방부터 극지방까지 널리 분포하는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추운 고위도의 내륙지방에도 살아가는 나무이니, 추위에 약한 종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온몸을 떠는 모습의 상징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시나무는 잎 뒷면에 잔털이 많아 잎의 앞면과 뒷면의 색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게다가 잎자루가 길고 납작해서 약한 바람에도 잎이 잘 흔들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시나무는 조용한 바람에도 모든 잎이 앞뒷면을 번갈아 보여주며 반짝이듯 흔들립니다. 

김해 화포천에서 만난 포플러나무입니다. 나무 아래 작은 사람이 보입니다. 포플러는 이렇게도 크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흔들리는 사시나무의 잎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식물의 잎은 광합성을 하는 기관입니다. 광합성은 태양에너지를 식물의 엽록체를 통해 화학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길고 복잡한 광합성의 과정을 단순한 한 줄의 화학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6CO2 + 12H2O → C6H12O6 + 6O2 + 6H2O


태양빛을 받은 엽록체에서 여섯 개의 이산화탄소와 열두 개의 물 분자를 하나의 포도당과 여섯 개의 산소, 여섯 개의 물 분자로 바꿉니다. 핵심적인 변화는 탄소원자 하나, 산소원자 두 개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의 이산화탄소 분자 안에 있던 탄소가 탄소원자 여섯, 수소원자 열둘, 산소원자 여섯 개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의 포도당이 된 것입니다. 식물은 포도당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에너지를 저장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기도 합니다. 또한 식물의 성장과 번식 및 삶의 모든 순간에 필요한 아미노산, 단백질, 지방과 같은 복잡한 분자들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식물은 포도당으로 생태계에서 가장 흔한 탄수화물인 셀룰로스(cellulose)를 합성합니다. 셀룰로스는 식물의 세포벽을 만드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물질입니다. 식물은 셀룰로스와 리그닌(lignin)처럼 튼튼한 물질을 합성함으로써 태양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줄기나 가지와 같은 구조를 만듭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빛을 독점하고, 더 많은 잎을 틔워 더 활발하게 광합성에 매진합니다.

잎이 담아내는 탄소를 몸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나무들이 숲을 만듭니다.

사시나무의 잎은 왜 이렇게 잘 흔들리는 모습으로 진화했을까요? 광합성을 잘 하기 위해서는 높이 자라 많은 빛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합성에 필요한 재료들을 잘 수급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우선 깊고 넓게 뿌리를 뻗어 충분한 양의 물을 흡수해야 합니다. 또한 잎의 뒷면에 있는 기공으로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해야 합니다. 인간은 숨을 들이마실 때 횡격막을 아래로 내려 가슴 속 공간을 늘림으로써 폐 속의 압력을 낮춰 공기를 빨아들입니다. 하지만 식물이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은 동물과 다릅니다. 열려 있는 기공을 통한 식물의 기체교환은 확산에 의한 수동적인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나뭇잎 안에 가득 찬 수증기는 상대적으로 물분자가 적은 대기 중으로 확산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분자들은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가 소진된 나뭇잎 안으로 확산됩니다. 이런 수동적인 기체교환을 잘 할 수 있어야 광합성의 재료인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남은 수증기를 공기 중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시나무는 원활한 기체교환을 위해 잎을 잘 흔들 수 있도록 잎자루가 길고 납작한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바람이 불 때 잎을 흔들어 기공 주변의 기체들을 잘 섞어 주는 것입니다. 반짝이며 흔들리는 사시나무 잎은 오랜 진화의 산물입니다.    

나뭇잎의 앞면은 태양빛을 받고 뒷면은 기체를 교환합니다.

나무의 거대한 몸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이산화탄소 분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무의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거대한 탄소의 저장고입니다.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자신의 몸을 만드는 과정을 우리는 탄소고정(Carbo fixation)이라고 합니다. 식물의 삶을 통해 단순한 구조의 탄소는 복잡한 구조의 탄소로 변합니다. 수많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숲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탄소를 저장합니다. 탄소는 숲에서 나뭇잎과 가지, 줄기와 뿌리가 되기도 하고, 숲의 바닥에 두텁게 깔린 낙엽이 되기도 합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만든 복잡한 구조의 탄소들은 숲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 미생물의 소화 또는 호흡에 의해 다시 단순한 구조의 탄소로 되돌아갑니다. 이것이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탄소의 순환입니다.


숲은 거대한 탄소의 순환장치입니다. 탄소는 한 곳에 저장된 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며 천천히 그 모습을 바꿉니다. 탄소가 만드는 숲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의 글에 담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다음 편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음 주에도 분량 조절에 실패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생태계는 탄소 그 자체이며, 저의 실패 또한 거대한 탄소순환의 일부입니다.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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