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7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탄소는 최대 4개까지 안정된 결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네?!”
탄소가 어떻게, 그리고 왜 4개의 안정된 결합을 만들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화학을 포기하게 됩니다. 저 또한 화학을 깊이 다룰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비탈이나 최외곽전자 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탄소가 4개의 결합을 만든다는 사실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탄소가 4개의 결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산화탄소(CO)나 이산화탄소(CO2), 메테인(CH4) 또는 에테인(C2H6), 그리고 포도당(C6H12O6)과 같은 다양한 구조의 분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탄소화합물은 1천만가지 이상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아미노산과 단백질처럼 무한대에 가까운 복잡성을 가진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4개의 안정적인 결합을 만들 수 있는 탄소의 화학적 특성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분자 수준에서 보자면 놀라울 만큼 거대하고 복잡한 존재입니다. 이 순간에도 호흡하고, 소화하고, 면역 기능을 작동시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가능케 하는 원소가 바로 탄소입니다. 탄소는 생명의 근원 그 자체입니다.
숲에서 순환하는 탄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탄소가 어디에 얼만큼 저장되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순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숲의 이곳저곳에 있는 탄소들의 무게를 측정했습니다. 커다란 나무의 키를 재고, 둘레를 측정합니다. 더 정밀한 조사를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 그 나무의 부피와 무게를 측정하기도 했습니다. 나무를 말려서 물의 무게를 측정하고, 나무를 태워서 탄소의 무게를 측정했습니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나무 안에 저장된 탄소의 양을 계산했습니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면서 잎에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하고, 매년 자라는 나무의 크기를 측정함으로써 나무가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많이 탄소를 저장하는지 알아냈습니다. 매년 나무가 떨어뜨리는 잎과 가지의 양을 측정함으로써 나무에서 땅으로 유입되는 탄소의 양을 측정했습니다. 땅에 떨어진 낙엽과 나뭇가지가 얼마나 빠르게 분해되는지를 측정하고, 토양의 미생물이 호흡을 통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함으로써 대지에서 대기로 돌아가는 탄소의 양을 측정했습니다. 대기과학자들은 숲의 안과 밖에서 탄소의 유입과 유출을 측정했습니다. 이제는 인공위성과 드론,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등의 원격탐사 기술을 이용해서 숲의 현황과 성장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숲을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하고, 측정한 값들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탄소 순환의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생태계에서 오랫동안 진행돼 왔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의 오랜 노력을 통해 우리는 숲에서 탄소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탄소의 순환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식물이 복잡한 포도당을 만들고, 미생물이 단순한 이산화탄소로 되돌리던 탄소순환 고리에 인간은 화석연료라는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인류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지난 200년간 빠른 속도로 숲을 베어 내고, 습지를 매립하고, 그곳에 도시를 세웠습니다. 숲과 습지에 저장돼 있던 탄소는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인류는 땅속에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같은 형태로 저장돼 있던 탄소들을 꺼내 쓰기 시작했습니다. 화석연료를 불태워서 열과 에너지를 얻고 남은 이산화탄소들은 대기 중으로 배출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매년 510억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그 양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배출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떠다니면서 천천히 기후의 균형을 깨뜨렸고, 지구 전체의 온도를 상승시켰습니다. 우리의 여름은 더워지고 길어졌으며, 겨울은 따뜻해지고 짧아졌습니다. 달라진 탄소순환으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태풍과 홍수, 폭염과 산불 같은 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기후변화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기후변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숲은 탄소의 거대한 저장고입니다. 우리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키 큰 나무들은 그 크기만큼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크게 자라는 나무는 40년간 4톤의 탄소를 흡수합니다. 숲의 바닥에 푹신하게 깔려 있는 낙엽들도 탄소입니다. 토양에 섞여 있는 유기물,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미생물, 숲에서 살아가는 새와 곤충, 커다란 동물들 또한 탄소입니다. 우리는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듦으로써 탄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행위만으로 탄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인류는 너무나도 많은 숲을 베어 없앴습니다. 세계의 숲은 1990년 42억3643만ha에서 2020년 40억5893만ha로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30년간 한반도 면적의 약 8배에 달하는 규모의 숲이 사라진 셈입니다. 미국인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약 20ha의 숲이 필요합니다. 미국에는 3억3천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 배출하는 탄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6500만㎢의 땅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구의 땅은 고작 1.48억㎢ 뿐이고, 세계 인구는 82억명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단순한 계산으로도 인류가 배출하는 탄소를 숲에 저장하기 위해서는 땅의 면적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이 훼손된 숲이 아닌 지표면 아래 저장돼 있던 화석연료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탄소의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기존에 대기 중으로 배출된 탄소를 다시 어딘가에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순간 지구 어딘가의 나무들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탄소를 흡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숲은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맑은 물과 공기를 내어줍니다. 우리는 소중한 숲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어린 나무들이 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내주어야 합니다. 인류는 어린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열과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혁신에 도달해야 합니다. 부디 인류의 혁신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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