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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태양이 만드는 숲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8. 08.


한 여름의 태양이 쏟아집니다. 나뭇잎들은 너무도 강렬하게 반짝여서 오랫동안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태양이 내리쬐는 길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나무 그늘 아래로 숨어듭니다. 사람들은 여름의 태양이 버거운데, 나무들은 밝고 뜨거운 빛을 찾아 위로 위로 자랍니다. 나무들은 태양이 뜨겁지 않은 걸까요? 나무들은 왜 태양을 향해 자라는 걸까요?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는 잠시도 서 있기 어렵습니다

나무들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태양을 향해 자라는 일을 계속해 왔습니다. 태초의 생명체들은 개척자로서 광합성을 위한 공간을 찾아서, 새로운 틈새와 자원을 찾아서 물에서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비어 있는 모든 땅은 개척자들의 몫이었지만 그들은 가혹한 건조를 견뎌야 했습니다. 땅 위에서 물은 언제나 귀했습니다. 키가 작았던 개척자들은 조금이라도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차지하는 땅의 넓이가 곧 차지하는 빛과 물, 양분의 양으로 이어졌습니다. 개척자들은 낮은 물가에서 조금 더 높은 땅으로 이동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과 떨어진 건조한 땅은 언제나 비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곳의 자원은 모두 개척자의 것이었습니다. 


태초의 개척자들은 물에서 육지로 올라 온 작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조금만 위로 자랄 수 있다면 그곳의 빛은 모두 내 것일텐데.’ 

초기 식물들은 이끼처럼 키 작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광합성할 수 있지만 키가 작고 바닥에 붙어서 자랐습니다. 조금만 위로 자랄 수 있다면 옆에 있는 다른 키 작은 식물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위로 자라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찌어찌 위로 자란다고 해도 그 꼭대기에 있는 잎까지 물을 공급할 수 있어야 그 잎이 말라죽지 않고 광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시의 하늘은 항상 비어 있었지만 식물들은 그 하늘까지 잎을 뻗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식물들은 천천히 진화했습니다.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관(管)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멋지게 진화한 구조는 필요 없었습니다. 아주 조금만 위로 올라가더라도 그 위에 있는 하늘은 모두 개척자들의 공간이었으니까요. 하늘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식물들은 더 많은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있었습니다. 혁신을 이뤄 낸 개체들이 살아남고, 성공한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는 일을 셀 수 없이 반복함으로써 식물들은 점점 더 멋진 구조들을 만들어 내고 더 높은 곳까지 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을 보내는 물관, 광합성 생산물을 나르는 체관, 더 튼튼한 줄기를 만들기 위한 형성층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관다발의 진화는 식물을 더 크게 자랄 수 있게 했습니다. 식물들은 수직적인 공간을 두고 경쟁했습니다. 달라진 세상에서 더 높이 진화하는 종, 낮은 곳에서 그늘을 견디는 종, 높이 자라는 종에 기생하는 종, 높이 자라는 종이 없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 떠나는 종 등 다양한 전략을 바탕으로 식물 군집의 다양성이 폭발하면서 지구의 표면에 숲이라는 생태계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세쿼이아 나무의 거대함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요? (출처 :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magazine/article/giant-sequoias)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코스트 레드우드라고 불리우는 세쿼이아(Sequoia sempervirens)입니다. 115.7m까지 자란 개체가 있다고 합니다. 북부 캘리포니아 해안의 이상적인 기후, 풍부한 강수량, 비옥한  토양, 산불과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나무껍질을 갖춤으로써 세쿼이아는 세계 숲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도달한 나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쿼이아는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 낸 관다발 구조 덕분에 물과 양분을 뿌리 끝부터 꼭대기에 있는 잎까지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광합성을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자라는 나무들은 어떻게 물을 나무 꼭대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식물이 뿌리 끝에서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과정은 토양, 뿌리, 줄기, 잎, 그리고 공기 사이의 수분 퍼텐셜 차이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물은 삼투압의 원리를 통해 토양에서 뿌리로 흡수됩니다. 흡수된 물은 모세관 현상에 의해 가는 물관을 따라 나무 꼭대기에 있는 잎으로 올라갑니다. 나무 꼭대기의 잎에서 이뤄지는 광합성과 기공에서 발생하는 증산작용(transpiration)도 아주 중요한 힘입니다. 기공에서 물이 증발하면 빈 공간만큼 물 분자들이 끌어올려지는데, 이 과정에서 물 분자 간의 응집력(cohesion)과 부착력(adhesion)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응집력은 물 분자들이 서로 수소 결합을 통해 연결되는 힘이며, 부착력은 물 분자들이 식물 세포벽에 붙는 힘입니다. 이러한 힘들이 결합되어 물기둥이 형성되고, 이는 높은 나무의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면장력(surface tension)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직경이 작은 물관을 따라 물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동하게 합니다. 식물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이처럼 멋진 구조의 관다발을 만들어 왔고, 높은 나무의 꼭대기까지도 효율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작 20cm 안팎의 빨대로 물을 빨아먹는 데도 꽤 큰 힘이 필요한데, 115m가 넘는 나무의 꼭대기까지 물을 빨아올리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나무는 태양을 향한 진보를 멈추지 않습니다

여름의 숲은 나무 꼭대기까지 눈부신 초록빛입니다. 매 순간순간 나무 꼭대기까지 물이 잘 전달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식물이 태양의 빛으로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이 변치 않는다면 식물은 계속 태양을 향해 자랄 것입니다. 숲에서 가장 높은 곳의 하늘은 항상 비어있으니까요. 셀룰로스와 리그닌으로 만들어진 세쿼이아 나무 줄기의 기계적 강도가 높이의 한계를 정할 수도 있고, 나무의 물관부가 견딜 수 있는 장력의 한계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높이의 한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진화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생명은 또 다른 혁신을 이뤄 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목격한 숲은 길고 긴 진화의 역사 중 아주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빛이 꺼지지 않는 한 나무는 태양을 향한 진보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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