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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해달이 만드는 바다의 숲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8. 22.

 

저는 ‘아기해달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보노보노의 사랑스러움도 좋고, 포로리의 ‘나 때릴 거야?’를 말하는 순간과 너부리의 폭력성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해달은 만화 또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해달을 볼 수 있는 아쿠아리움은 없습니다. 현실 세계의 해달은 일본의 홋카이도,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와 쿠릴 열도, 미국의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멕시코의 바하 칼리포르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유튜브와 같은 경로를 통해 보고 싶을 때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달은 커다란 바다코끼리나 물범처럼 추운 바다에서 사는 다른 포유류들과는 달리 토실토실하지 않습니다. 두꺼운 지방 대신 부드럽고 촘촘한 털로 체온을 유지합니다. 해달의 털은 인간의 털보다 훨씬 빽빽하게 자랍니다. 게다가 이중모 구조로 되어 있어 긴 털 사이에 공기를 가둠으로써 짧은 털은 물속에서도 젖지 않습니다. 해달은 빽빽한 털 사이에 갇힌 공기층으로 추운 바다에서도 체온을 유지합니다. 이와 더불어 끊임없이 사냥하고 계속 먹어대면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열량을 섭취합니다. 해달은 조개나 갑각류, 물고기 등을 가리지 않고 먹는데, 배 위에 돌을 올려놓고 조개를 내리쳐 조개껍질을 깨 먹는 모습은 정말 귀엽습니다.  


어쩌다 해달은 만나기 어려운 종이 되었을까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성격과 부드러운 모피로 인한 남획이 해달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을까요? 모피를 노리는 인간의 사냥이 문제라면 해달 사냥을 규제하면 될 일입니다. 해달을 향한 위협은 더 무섭고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해달들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손쓸 틈 없이 죽어갔습니다. 바다가 오염되거나 마구잡이식 남획에 의해 해달의 먹이가 되는 작은 동물들이 줄어들었고, 배고픈 해달은 추운 바다에서 저체온증으로 죽어갔습니다. 해달의 개체군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해달의 먹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바다의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해달이 사라지면 바다는 어떻게 될까요? 단지 귀여운 바다의 포유류 한 종이 사라지는 데서 끝나는 문제일까요? 


해달이 사라지면 거대한 다시마로 채워진 바다의 숲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해달이라는 한 종의 멸종이 바다의 숲을 황량한 바다 사막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까요? 해달이라는 한 종의 유무가 바다 생태계의 구조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해달은 그만큼 중요한 종입니다.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한 종의 멸종이 그 지역에서 사는 다른 모든 종의 생물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을 핵심종(keystone species)이라고 합니다. 해달은 추운 바다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자기 체중의 40% 정도 되는 양의 먹이를 먹습니다. 해달의 체중이 약 20~40kg 정도니까 한 마리의 해달이 매일 약 8~15kg 정도의 먹이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해달은 바다 생태계의 강력한 포식자이고, 해달의 엄청난 먹성은 먹이가 되는 종들의 개체 수를 결정하는 강력한 통제 장치입니다. 


저는 해달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마땅한 사진이 없어서 초등학생 딸에게 해달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해달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성게는 해달의 먹이들 중 하나입니다. 온몸이 가시로 뒤덮인 성게가 걸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사실 성게는 꽤 활발하게 가시를 움직이며 바다의 밑바닥을 돌아다니는 종입니다. 성게가 바다의 밑바닥을 돌아다니다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를 만나면 뿌리와 줄기부터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바다의 생태계가 망가지고 성게의 천적인 해달이 사라지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성게가 바다의 모든 숲을 먹어 치워 버립니다. 바다의 숲이 사라진 황량한 바다 밑바닥에는 성게만 가득하다가 이내 성게도 없는 사막 같은 바다가 되어버립니다. 성게의 수를 조절할 수 있는 해달이 있다면 바다의 숲도 있는 것이고, 성게의 수를 조절할 수 있는 해달이 사라진다면 바다의 숲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해달은 바다 생태계의 구조를 결정하는 종입니다. 


생태계는 여러 개의 부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비행기와 같습니다. 복잡한 비행기에서 의자나 선반 같은 사소한 부품이 하나 둘 정도 빠진다고 비행기가 추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엔진이 하나 빠지거나, 날개가 하나 빠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작 부품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비행기가 추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생물들은 생태계 안에서 서로 복잡하고 섬세하게 관계 맺으며 살아갑니다. 해달과 성게의 관계는 좁게는 먹고 먹히는 관계처럼만 보일 수 있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바다 숲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관계가 되고, 더 멀리 떨어져서 보면 바다 숲의 해조류를 통해 해양 생태계 안에서 탄소를 고정하고 순환시킬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계가 됩니다. 바다 숲의 해달뿐 아니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습지를 만드는 비버, 사바나를 지키는 코끼리 등 많은 생태계에는 그 생태계의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종이 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해달의 위기가 바다 숲의 위기인 것처럼 핵심종의 위기는 그 지역 생태계의 위기입니다. 일단 바다가 사막화되면 그 바다는 작은 생물들을 키워 낼 수 없게 되고, 그 생물들을 먹고사는 해달도 부양할 수 없는 황량한 바다가 됩니다. 바다의 숲을 만드는 것은 해조류들이지만, 그 숲을 지키는 것은 해달이며, 해달을 지키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귀여운 해달을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해달의 서식지가 되는 바다의 숲도 더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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