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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김우성 | 해초가 만드는 바다의 숲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8. 16



우리는 땅을 밟고 살아갑니다. 땅 위에서 먹이를 구하고, 땅 위에서 일하고 쉽니다. 우리의 집은 땅 위에 있고, 우리가 누리는 숲 또한 땅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생각은 땅 위에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표면의 70%는 바다이고, 지구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70%도 바다에서 일어납니다. 바다의 숲은 어떨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탐험가 크레이그 포스터와 로스 프릴링크는 잠수복이나 산소탱크 없이 맨몸으로 차가운 바닷속을 헤엄치며 바다의 숲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바다의 숲’이라는 좋은 책이 출판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습니다. 숲은 육상생태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바다에도 빛이 있고, 물이 있으며, 흙이 있습니다. 땅 위에 숲이 있는것처럼 바다 속에도 숲이 있습니다. 커다란 바닷말들은 군락을 이루면서 여러 바다생물을 잉태하고 보호하는 서식지의 역할을 합니다. 바다숲 또한 육지숲처럼 바다를 맑게하고, 토양을 안정화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바다의 숲은 어떤 모습일까요?

해초는 바닷가를 찾는 어린이들의 좋은 장난감입니다

땅 위의 숲은 식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식물이 햇빛을 받고, 이산화탄소와 물을 흡수함으로써 포도당과 같은 복잡한 탄소를 만들어 내는 광합성을 합니다. 식물이 고정하는 탄소가 육상 생태계의 핵심적인 축이 됩니다. 바다의 숲에서는 이 역할을 조류(藻類; Algae)와 식물성 플랑크톤이 대신합니다. 우리가 뭉뚱그려서 해초(海草; seagrass)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식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조류라는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했지만, 분자생물학과 계통분류학이 발달하면서 이들이 하나의 그룹 안에 넣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존재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류는 여러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지금에 이른 다양하고 복잡한 존재들입니다. 녹조류(Chlorophyta)는 식물과 관련이 있지만, 홍조류(Rhodophyta)와 갈조류(Phaeophyceae)는 식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미역과 다시마가 속하는 갈조류는 식물보다는 짚신벌레와 같은 생물에 더 가까운 존재입니다. 현대의 생물 분류에서 조류는 단일 그룹이 아니라 아주 넓은 범위를 포함하게 되었기에 공식적인 분류학적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 체계는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편의상 해초라고 부르겠습니다. (삶을 바쳐 연구해 오신 해양생물학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은 해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바다의 숲은 해초와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시작됩니다. 해초와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고정하면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물고기, 갑각류 같은 다른 존재들이 그 탄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곳이 바다의 숲입니다.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다의 숲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대기 중으로 배출한 탄소를 다시 거두어들여 어딘가에 저장해야 합니다. 나무의 모습으로 육지의 숲에 저장하면 좋겠지만 숲을 지키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숲을 베고 농경지를 만들거나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육지의 숲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바다의 숲에서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바다의 숲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랍니다. 다시마의 한 분류인 켈프(Kelp)는 하루에 50cm씩 최대 80m까지 자랍니다. 바다의 숲은 육지의 숲보다 최대 20배나 빠르게 자랍니다. 다시마가 자라는 속도는 곧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다시마 안에 고정되는 속도와 같습니다. 바다의 숲은 빠르게 자라고 또한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열대우림보다 단위 면적 당 더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육지의 숲을 베어내지만, 바다의 숲은 도시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바다의 숲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이 대기 중에 배출한 온실기체를 다시 생태계 안에 저장하는 일입니다. 바다의 숲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기후변화 해결에 기여할 수 있고,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풍요로운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해양 생태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바다에 숲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가 오래 전부터 바다의 숲을 만들어 온 민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울산에는 해초를 김에 싸 먹는 배말톳김밥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바다의 숲을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는 해초를 먹는 사람들입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le monde)는 2019년 ‘지구를 위해 해초를 요리하는 한국’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리는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고 소풍갈 때 김밥을 싸는 민족입니다.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굶어 죽어가던 극동 지역의 러시아인들에게 해초 먹는 법을 가르쳐 준 민족입니다. 한국전쟁에서 포로에게 밥과 이상한 검은 종이(외국인의 눈에 비친 김)를 준 민족입니다. 우리는 검은 반도체 김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민족입니다. 우리가 맛있어서 먹었는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류가 해초를 생산하고, 가공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우리는 한국인입니다.(펄럭)


제가 태어나기 전, 저의 할아버지는 어부(漁夫; Fisherman)였다고 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라 미역 같은 해초를 양식하는 일을 하셨으니 어부보다는 바다의 농부가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노를 젓는 작은 배를 타고서는 봄에는 미역과 우뭇가사리, 여름에는 곰피, 가을과 겨울에는 성게나 해삼 같은 것들을 채취하셨습니다. 저의 작은아버지는 숲에서 일하시고, 아내님과 저도 숲에서 일합니다. 저의 딸도 숲의 곁에서 자랍니다. 숲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우리 가족의 역사 안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를 심음으로써 육지의 숲을 만든 사람들의 숭고한 삶을 칭송합니다. 김과 미역을 길러 냄으로써 바다의 숲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바라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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