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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도파민 제로시티(Zero-City), 영양군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5. 24


경상북도 영양군이 화제입니다. 3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피식대학’이라는 채널에서 제작한 영상 ‘경상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영양에 왔쓰유예' 편이 지역 비하 논란에 휩싸였고 해당 영상은 현재 비공개 처리되었습니다. 영상에 관한 논란과 별개로 경상북도 영양군에 관해 찾아볼 만한 여행기가 적어 2022년에 다녀온 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양군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아내님께서는 영양군에서 숲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내님의 출장과 별개로 조금 더 깊이 영양을 느끼기 위해 여름휴가 동안 영양군에 머물렀습니다. 디지털 세상과는 조금 떨어져 자연을 즐기고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울산에서 영양군의 숙소까지 내비게이션을 찍고 출발했습니다. 시간이  늦어 해가 진 이후에 영양면으로 진입하게 됐는데, 가로등 없는 꼬부랑 산길이 반겨주었습니다. 어두운 산길 운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없는 점은 편했습니다. 밤길 운전이 아니라면 운전 환경은 나쁘지 않습니다. 참고로 영양군에는 고속도로와 4차로, 철로가 없습니다. 신호등도 3개뿐이라고 합니다. 천천히 달리거나 잠시 길가에 차를 멈추고 경치를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는 숙소를 크게 가리지 않지만, 어떤 여행자들에게 숙소는 아주 중요합니다. 영양군에는 좋은 숙소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숙소 중 눈여겨볼 만한 곳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머문 곳은 ‘스테이 영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한옥 한 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확장해서 두 채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옥과 잘 조화된 현대적인 소품들, 방문객을 위한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오래된 한옥이 주는 아름다움은 여행에서 묵어본 숙소들 중 단연 훌륭했습니다. 좋은 호텔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주는 숙소였습니다. 예약이 어려운 점을 빼면 단점을 찾기 힘든 숙소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찾고 싶은 숙소입니다.



영양군을 방문한 손님들이 한 번씩은 가봤을 것 같은 달식당입니다. 친절한 사장님, 깔끔한 실내, 잘 정돈된 메뉴와 식기, 음식도 좋습니다. 돈까스, 파스타, 피자 모두 훌륭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벼운 양식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께서 이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달식당처럼 세련된 식당보다는 선미식당처럼 오래된 지역 식당이 제 취향입니다. 된장도 직접 담그고, 김치도 직접 담그는 식당입니다. 영양군의 식재료와 영양군의 레시피로 오래 만들어져 온 음식이 좋습니다.



영양군에는 카페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는 프랜차이즈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숨겨진 좋은 카페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카페 연당림은 단연 아름답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아닌 한옥의 창호를 통해 바로 보이는 풍경을 제공하는 한옥 카페입니다. 영양사과라떼, 고추 스콘, 산나물 스콘 등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한 메뉴의 구성에서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제비도 느리게 날아다니는 정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카페의 오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카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홀린 듯이 방문하게 된 카페 이밤 헤스티아입니다. 커피에 진심이신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데 가게에 담긴 디테일들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카페를 만들고, 정원을 만들고, 숙소를 만들고, 삶을 만들어가고 계셨습니다. 2022년 당시에 많은 고민을 담아 성장하고 계셨으니 지금은 더 좋은 공간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양군의 흥림산 자연휴양림에는 숲 속 나무들을 그물로 연결한 네트 어드벤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영양군의 낮은 밀도가 정말 고마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숲 속에 설치된 커다란 그물에 조용히 누워 숲틈으로 보이는 하늘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키즈카페의 그물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고요함입니다. 아, 키즈카페의 그물에는 아빠가 누우면 안 되는군요. 



영양군에는 30.6ha에 이르는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인제군 자작나무 숲의 5배에 이르는 면적입니다. 자작나무는 하얀 나무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자작나무 숲의 틈으로 들어오는 빛은 아주 독특한 풍경을 제공합니다. 자작나무 숲이 우리나라의 기후에 맞는가 하는 고민과는 별개로 자작나무 숲이 주는 아름다움은 꼭 한 번 직접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양군에서 좋은 계곡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운 것은 좋은 계곡을 고르는 것입니다. 계곡은 많고, 사람은 적으니, 대체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면 적당히 차를 세운 뒤, 계곡에 돗자리를 깔고 물놀이를 시작하면 됩니다. 사람이 없으니 자리를 경쟁할 필요도 없고, 물놀이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계곡에 먼저 온 사람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만 이동하면 다른 멋진 계곡이 있습니다. 쓰레기도 없습니다. 버릴 사람이 없으니까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맑은 계곡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계곡을 떠났습니다.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 인근에는 건물과 도로가 많고, 밤에는 늘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영양군에도 사람이 적게 살지만 인근 지역도 인구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이런 낮은 밀도는 그 자체로 관광자원이 됩니다. 영양군에는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이 있습니다. 별을 보기 위해 지역의 가로등을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가로등은 밝기를 줄여 아랫쪽으로만 빛을 비추게 해 두었습니다. 이로써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별을 관찰하기 좋게 만들어 두었으며, 어린 아이들에게 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천문대와 별 생태 체험관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다양한 교육자료와 반사망원경, 굴절망원경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경북 영양의 인구는 2023년 말 기준 1만5661명입니다. 1970년에는 6.8만명이었고, 1990년에는 3.1만명이었습니다. 서울시 관악구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청림동(구 봉천3동)의 인구가 1만4724명입니다. 경북 영양은 서울시 관악구 청림동보다 2550배 넓습니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1.7%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90%가 넘습니다. 행안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개 시군 중 75개 시군이 산촌입니다. 우리는 왜 높은 밀도로 모여 살까요? 도시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높고, 의료, 교통, 문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높은 밀도로 인한 집값, 환경오염, 높은 경쟁과 출퇴근 거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밀도가 높은 도시에 살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밀도가 낮은 지방에 살기를 원하지만 그 비율은 꽤 다릅니다. 


우리 가족은 숲 가까이에서 살아왔고, 숲 가까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숲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영양군의 아름다운 숲을 보았습니다. 피식대학에서 촉발된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영양군에 대해 알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양군을 방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양군의 아름다운 숲을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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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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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May 26
Rated 5 out of 5 stars.

좋은 글, 사진, 사람,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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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May 25
Rated 5 out of 5 stars.

너무 잘 읽었습니다. 글 만으로 힐링이 되는것 같네요.. 빠르고 꽉차있고 뜨겁다고 느껴지는 일상인데 이렇게 느릿하고 바람부는 글을 읽으니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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