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온 11년. 서국화 변호사는 동물의 권리가 여전히 법과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황희정 기자 2024-11-29
서국화 변호사는 '법무법인 울림'의 변호사로 PNR(People for Nonhuman Rights)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52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42기다.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 환경부 환경오염피해소송지원변호인단, (사)동물권 행동 카라 이사, 호루라기 재단 법률지원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구 저서로는 『동물법, 변호사가 알려드립니다』(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저), 『동물보호법 강의』(공저), 『우리는 동물 권리에 진심』(공저) 등이 있다. 배상 실효성 확보를 위한 원자력손해배상제도 개선 관련 정책연구 연구원,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마련 연구 자문위원, 야생동물 판매, 개인소유 관리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공동연구원, 동물보호복지 전문기관 구축연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 2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수상했다.
공장식 축산과 도축 장면 영상을 보고 충격받아
어린 시절부터 법조인을 꿈꾼 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국악을 배우며 예술가의 꿈을 꿨다. 동네 국악 학원에서 들리던 장구 소리에 반해 시작했다. 설장구라고 하는 장구를 메고 하는 무용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슬럼프가 찾아왔다. 예술가의 길은 재능과 끈기, 환경까지 뒷받침되어야 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부모님이 송사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과정을 보면서 법률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법학은 단순히 공부를 잘하면 할 수 있는 학문으로 생각했는데, 대학에 실제로 진학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내가 다닌 이화여대는 미션스쿨로, 종교나 윤리를 많이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물보호단체가 공개한 공장식 축산과 도축 장면 영상을 봤다. 당시 그 장면은 큰 충격을 줬다. 우리는 왜 이런 문제를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질문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동물복지에 관심 갖게 됐다.
동물보호법 개정의 길에 서다
고시를 공부하며 두 가지 고민에 몰두했다. 하나는 동물복지의 실질적인 해결책, 다른 하나는 스스로의 가치관 정립이었다. 도서관 자료실에서 동물권, 여성학, 철학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고시 공부보다는 여기에 정말 몰두했다. 특히 『육식의 성정치』와 같은 책들은 동물권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줬다. 201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자연스럽게 동물복지 관련한 법적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환경연합, 녹색연합 등의 큰 환경단체들에는 이미 법률 부속 기구들이 있었는데, 동물단체에는 그런 체계가 없었다. 이곳저곳 찾다가 생명권 네트워크 변호인단과 함께하게 됐다. 거기서 박주연 변호사를 만났다. 그곳에서 동물권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그 과정에서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동물보호법은 1991년 제정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학대 방지 규정을 명확히 하고, 복지 농장과 실험동물 보호 조항을 추가하는 등 많은 개선 작업이 이뤄졌다. 그중 제일 큰 이슈가 사육금지 제도였다. 동물학대로 형을 받은 사람은 동물을 못 키우게 하는 제도였는데, 그건 헌법상 재산권, 자유권 등과 충돌해서 법원행정처와 법무부를 거쳤지만 벽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PNR 설립, 동물권을 위한 새로운 도전
2017년, 박주연 변호사를 비롯한 동료 변호사들과 동물권 전문 법률단체 PNR을 설립했다. 박주연 변호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동물복지 관련 법적 공백을 메우고, 입법 및 정책 활동에 집중하기 위한 단체였다. 우리가 법적으로 다퉈서는 승산이 거의 없었다. 결국 입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물론 단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전문적인, 법률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해야 승산이 있어 보였다. 간혹, 변호사들이 이렇게 일하면 봉사활동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활동은 재능기부로만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야 변호사들이 동물권에 꾸준히 힘쓸 수 있다. 지금 PNR에서 활동하시는 구성원들에게 조금이나마 활동비를 지급할 수 있는 규정을 겨우 만들었다. 드릴 때 민망한 금액이나 후원해 주는 분들의 취지에 맞다고 본다. 가까운 미래에 상근 변호사를 한 분 두고 싶다. 당장은 각자 시간이 될 때 활동하는 형태이어서 업무의 진행이 전체적으로 느린 편이다. 변호사들이 각자 본업을 하면서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
예방적 살처분 소송, 법의 한계를 직면하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17년에 있었던 예방적 살처분 명령 취소 소송이다. 참사랑농장에서 사육된 닭 5000마리를 살처분하라는 명령을 두고 진행된 소송이었다. 이 농장은 일반적인 공장식 축산 방식이 아닌, 닭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복지 농장이었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AI감염 가능성만으로도 닭들을 모두 살처분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복지 농장에서 자란 닭들은 면역력이 강하다는 농장주의 주장을 토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법원은 긴급하다는 이유로 살처분 명령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 이후로 소송이 진행되는 2년 동안 AI는 끝났고, 닭들은 건강했다. 결국 패소해서 닭 5000마리를 살처분할 명목이 생겼지만, 익산시가 실제로 집행은 하지 않았다. '안 했으니 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 이 농장주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이 정한 살처분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범죄자가 됐다. 그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으면 복지 농장에 지원되는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그분은 지금 현재까지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며 생계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동물복지 농장을 지속하는 자체가 어려워진 사건이다. 진짜 마음이 아팠다.
동물보호법에서 아직 동물은 물건이다
동물보호법은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학대 규정이 강화되고, 처벌도 더욱 엄격해졌다. 이전에는 동물 학대를 하면 50만원 이하의 벌금만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체계의 근본적 한계가 존재한다. 동물이 민법상 물건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개인의 소유권과 동물의 복지가 충돌하면, 일단 재산권을 훨씬 더 우선시하는 체계이다. 헌법에서 동물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동물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로 치환되어야만 주장될 수 있다. 동물은 원고 적격도 없고 당사자 능력 자체가 아예 없으니, 모든 소송에서 어떤 권리를 주장하든 간에 동물들의 권리 자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이 동물을 바라보는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동물보호법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발전했지만, 법체계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민법과 헌법에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물권에 대한 경험을 법조인들과 나누고 싶어
법조계가 동물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 초기 단계다. 많은 법조인들이 동물 관련 소송이나 입법 과정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고, 대부분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법을 적용한다.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로스쿨 학생들과 법조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컨퍼런스 등을 열고자 한다. 경력 법관을 뽑는 요즘 임용 방식에서 보면, 이런 컨퍼런스에 참석해 경험한 변호사 누군가가 법원에 임용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바로 이런 분이 법원에 들어가서 동물권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컨퍼런스를 통해 교류가 트이고 동물권에 대한 감수성이 자란다면, 법원에 가서도 동물권의 측면에서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고 희망한다. 법조계는 항상 느리게 따라가는 집단이다. 2013년 변호사로 이 활동을 시작해 지금껏 11년이 지났다. 제도의 변화로 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게 변했다. 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먼 미래로 보이지만, 생각보다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는 실날 같은 희망이 있다. PNR이 보수적인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네트워킹을 계속 넓혀가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단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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