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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찾다 ⑥ 예술로 살아나는 작은 마을들

최종 수정일: 2일 전

2025-04-17 고은정, 제종길, 이응철

 

일본 지방에서 열리는 혁신적인 예술제들을 소개한다. 예술로 지역을 살리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살아 있는 지역문화를 만들어 내는 예술의 힘을 보여 준다.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요즘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예술 현장은 어디일까. 의외로 대도시의 미술관이 아니다. 오히려 인적 드문 시골 마을, 섬, 골목이 예술의 최전선이자 실험의 무대가 되고 있다. 일본의 예술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예술로 지역을 재해석하고, 사람과 공동체를 연결하며, ‘살아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낸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깊게 들여다보고 있고 지난주에는 '에치고 츠마리 대지의 예술제'도 소개했다. 두 예술제를 총괄하는 인물은 ‘지역 예술제의 전설’이라 불리는 키타가와 프람(北川 Fram)이다.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는 세토우치 바다의 작은 섬들, 눈 덮인 산골 마을을 세계 예술지도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예술제를 통해 버려졌던 장소가 다시 살아나고,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예술은 지역의 얼굴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그가 이끄는 다른 예술제도 좀 더 살펴보자.


오쿠노토, 예술로 그린 외딴 끝자락: 오쿠노토 트리엔날레


이시카와현(石川県)의 가장 북쪽, 바다와 산이 교차하는 조용한 끝자락에 자리한 '오쿠노토(奥能登)'는 마치 세상의 가장자리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고요한 땅에 예술이 스며들면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2017년 첫선을 보인 오쿠노토 트리엔날레(Oku-Noto Triennale, 奥能登国際芸術祭)는 극지의 예술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고립된 지역을 무대로 삼아, 예술의 힘이 공간과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이 예술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장소를 매개로 한 대화에 다름없다. 작가들은 현지에 머물며 마을 주민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들 삶의 기억과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폐가에 설치된 조명, 옛 여관에 펼쳐진 설치미술, 오래된 항구에 띄운 사운드 아트는 그 자체로 마을의 기억 복원이자, 주민의 삶을 기리는 노래다.

오쿠노토의 예술은 느리고 조용하지만 깊다.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가 아닌, 지역의 호흡에 맞춰 천천히 진행되는 이 축제는 현대미술이 어떻게 공동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오쿠노토 트리엔날레 포스터 이미지다.  사진_ https://oku-noto.jp
오쿠노토 트리엔날레 포스터 이미지다. 사진_ https://oku-noto.jp

이치하라,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예술 : 이치하라 아트 × 믹스


도쿄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에 닿는 지바현(千葉県) 이치하라시(市原市)는 도심과 자연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이치하라 아트×믹스(Ichihara Art × Mix)는 예술과 마을,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독창적인 예술제다. 2014년 처음 열린 이래, 이치하라 아트×믹는 ‘혼합(mix)’이라는 이름처럼 다양한 장르, 다양한 사람들을 엮어 내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전시장과 공연장은 도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폐선 직전의 기차역, 공장 외벽, 비어 있는 민가와 논두렁마저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도시 재생과 현대미술, 자연과 기술, 주민과 예술가가 혼합된 이 축제는 지역 예술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실험적인 가능성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이 축제의 주인공은 지역 주민이다. 그들은 예술가와 대화를 나누고, 작업에 참여하며, 일부는 작품의 해설자 역할까지 맡는다. 참여와 소통이라는 키워드는 축제를 단순한 관람이 아닌 체험으로 바꿔 놓았다. 예술은 마을의 일상이 되고, 마을은 예술의 일부가 된다.

'이치하라 아트×믹스' 예술제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사진_ 예술제 홈페이지에서 인용 https://ichihara-artmix.jp
'이치하라 아트×믹스' 예술제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사진_ 예술제 홈페이지에서 인용 https://ichihara-artmix.jp

     

북부 알프스의 풍경 속에서 : 북부 알프스 예술제


나가노현(長野県)의 시나노오마치(信濃大町)에서 펼쳐지는 북부 알프스 예술제(北アルプス国際芸術祭, Northern Alps Art Festival)는 말 그대로 산의 축제다. 해발 3000미터에 이르는 일본 북부 알프스 산맥의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예술이 그 풍경을 다시 그려 낸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예술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현대미술과 자연환경의 공존을 탐색한다. 작품들은 산책로 위, 삼림 속, 강가에 설치되어, 관람은 곧 하이킹이 된다. 예술 감상과 자연 탐방이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전통 목재를 활용한 건축 구조물, 바람과 소리로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아트, 생태계와 공생을 테마로 한 조각 작품 등은 사람과 자연, 예술의 관계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축제 역시 예술가 혼자만의 무대가 아니다. 지역의 장인, 청년, 자원봉사자들과 협업하며, 제작 과정에 깊이 관여한 주민들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예술의 기억을 간직한 삶을 지속한다. 북부 알프스 예술제는 관광지 중심의 이벤트에서 벗어나, 지역의 존재 자체를 예술의 일부로 만들어 낸다.

북부 알프스 전경을 나타낸 예술제 포스터 중 하나다. 사진_ 홈페이지 https://shinano-omachi.jp
북부 알프스 전경을 나타낸 예술제 포스터 중 하나다. 사진_ 홈페이지 https://shinano-omachi.jp

예술제를 통한 ‘재생의 스토리’


일본 곳곳에서는 이러한 예술제의 정신을 잇는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예컨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시작된 ‘리본 아트 페스티발(Reborn-Art Festival)'은 미야기현(宮城県)’의 이시노마키(石卷)를 주무대로 하는 재난의 아픔을 딛고 회복을 이야기하는 종합 예술제이다. 폐허가 되었던 이시노마키 해안가에 다시 생명이 깃들고, 작품과 공연, 지역 음식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2021~2022 '리본 아트 페스티발'의 포스터다. 사진_https://2022.reborn-art-fes.jp/en/ 에서 인용
2021~2022 '리본 아트 페스티발'의 포스터다. 사진_https://2022.reborn-art-fes.jp/en/ 에서 인용

‘아이치 트리엔날레(愛知国際芸術祭)’는 예술을 더욱 대중적으로 풀어낸다. 현대미술, 연극,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강연과 대화 프로그램으로 관객과의 거리도 좁힌다. 예술은 어렵지 않아야 하며,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느껴진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2019년 포스터다.사진_https://aichitriennale2010-2019.jp/2019/en/index.html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2019년 포스터다.사진_https://aichitriennale2010-2019.jp/2019/en/index.html

‘요코하마 트리엔날레(横浜トリエンナーレ, 神奈川)’는 일본과 세계를 잇는 플랫폼이다. 글로벌 예술가들의 실험적 작품들이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고,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워크숍과 토크는 예술의 공공적 역할을 묻는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포스터이다. 사진_ https://www.yokohamatriennale.jp/korean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포스터이다. 사진_ https://www.yokohamatriennale.jp/korean

‘사이타마 트리엔날레(埼玉国際芸術祭)’ 역시 예술의 장벽을 낮춘 축제다. 지역민과 방문자, 신진 작가와 기성 예술가가 어우러지는 현장은 예술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다채롭고 열린 분위기를 자아낸다.


축제의 뿌리, 일본 문화


이처럼 일본의 예술제가 특별한 이유는 일본 문화 전반에 녹아 있는 축제의 DNA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순히 유명한 몇 개의 축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지역마다 사계절 내내 수천 개의 축제가 열린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축제 수만 연간 3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하루 평균 약 80개 이상의 축제가 일본 어딘가에서 열리는 꼴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 속에서 생긴 풍요와 재해, 감사와 위로는 늘 축제의 형태로 표현됐다. 봄에는 꽃 축제, 여름에는 불꽃놀이와 야시장, 가을엔 수확 축제, 겨울엔 눈 축제가 있다. 또 일본에는 약 8만 개가 넘는 신사가 있고 대부분 자기만의 축제를 하고 있으니 이게 지역마다 연례행사가 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축제는 단지 이벤트나 관광 자원이 아니라 생활문화이다.

예전부터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하나의 전통적인 의식인 거다. ‘함께 살아가는 확인의 시간’이라고나 할까. 예술제 역시 이 문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지역 분권이 활발한 나라이다 보니 지역마다 자부심을 품고 독자적인 축제로 발전시키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축제를 문화 산업과 지역경제를 살리는 관광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술은 ‘함께’ 만드는 것


일본 예술제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다. 작가 혼자가 아니라,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 관람객이 함께 만드는 예술이다. 예술은 더 이상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 녹아든다. 그래서 일본의 예술제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완결된 예술이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되고 변화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것이 예술제를 찾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되는 이유다.

일본의 예술제를 둘러보며 강하게 느낀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술은 지역의 정체성을 재조명한다. 낡고 버려진 공간이 예술을 통해 다시 의미를 얻고, 과거의 기억은 예술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둘째, 주민이 주체다. 예술제는 단순한 문화 소비가 아니라, 지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창작의 현장이다. 셋째, 예술은 현재진행형이다.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는 지속성을 바탕으로,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얼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예술은 더 이상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마을의 일부가 된다. 마치 오래된 골목길에서 피어난 꽃처럼, 예술은 자연스럽고도 조용하게 사람들의 삶에 스며든다.

예술이 마을을, 그리고 사람을 바꾼다. 일본의 예술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큰 감동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이 기적은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예술의 가능성을 믿는 용기, 그리고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 세 가지가 있다면, 어디든 예술의 마을이 될 수 있다.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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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3일 전
Rated 5 out of 5 stars.

몰랐던 예술제에 대한 정보를 알게되어 좋았어요. 여행가기 쉬운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혹은 휴양 관광을 위한 오키나와 삿포로가 아닌 일본의 구석구석을 부러 챙겨 가보고싶어지는 것 같아요.

지역의 적극적인 참여가 지역 예술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부분에서 국내에서 최근 높아진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페어나 비엔날레등이 좋은 신호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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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4일 전
Rated 5 out of 5 stars.

참여형 예술, 참여형 축제의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자연스럽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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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4일 전
Rated 5 out of 5 stars.

일본의 글로벌하게 확산된 대중문화를 보면 일본색을 많이 느낄 수 있는게 지역문화콘텐츠가 잘 활성화됐기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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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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