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찾다 ③ 타카미지마, 문어와 사람이 떠난 자리에 예술이 남아
- hpiri2
- 3월 21일
- 6분 분량
세토우치 섬 타카미지마에서 만난 섬의 역사와 예술제 작품들. 이 섬의 과거 영광을 돌아보고 현재의 쇠락을 아쉬워하며 사람의 공간을 문어의 공간으로 대체하여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2025-03-21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남쪽 경사가 급하고 북쪽이 완만한 섬
지금까지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이하 예술제)’에 관련하여 연재 참여하고 있는 섬들이 다 개성이 있으며 유사한 섬들이 하나도 없다. 본래 세토나이카이의 섬들이 다 그런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상식적으로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고 예술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한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타카미지마(高見島)도 역시 매력적인 섬이고 지금까지 봐 왔던 다른 섬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선 지형이 다르다. 섬은 석기시대 손도끼 모양인데 북쪽이 뾰족하고, 남쪽은 둥글넓적하다. 지도에서 보자면 섬의 북쪽 끝이 약간 서쪽으로 기울었다. 산세는 남쪽이 높고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남쪽에서 바라보면 원뿔꼴 산봉우리만 보인다. 산 정상은 약 300m인데 남에서 약 3분의 1 지점이어서 남쪽으로 경사가 급하지만, 북쪽으로는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섬의 경사를 상상해 보라. 그래야 남단 마을 두 곳 중 큰 마을, ‘우라(浦)’가 급경사 언덕 위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고, 농사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도, 왜 인구가 급격히 줄었는지도 수긍이 될 것이다. 항 주변의 마을 이름은 ‘하마(浜)’다.


이타모치에는 더 이상 사람이 안 산다
2020년 현재 인구는 25명이다. 가장 많았던 전후에는 1000명이나 되었으며, 2000년에만 하더라도 100명이 넘었다. 마을은 과거 세 곳이 있었으나 앞에서 언급한 두 마을 외에도 북쪽 동쪽 해안에 있었던 한 마을— ‘이타모치(板持)’에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전체 면적은 2.33㎢이고, 해안선 둘레는 6.4㎞여서, 면적으로 보면 혼지마의 3분의 1이나 인구는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만큼 섬을 떠난 주민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현장을 방문하고는 척박한 생활환경 때문일 거라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우선 농토라고 할 만한 땅이 없었으니 주업은 어업이었을 테고 어항에 세워진 선박이나 항구에 버려진(아니면 남겨둔) 문어단지들을 보면 문어잡이가 주 어업이었음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어가 더 이상 잡히지 않아서다.

오징어 배를 어항에서 볼 수 없다
가가와현에서 만든 ‘이이다코(イイダコ, 주꾸미)’ 보호 전단을 보면 20년 전 어획량과 비교해 지금은 100분의 1이라니 어찌 수지 타산이 맞출 수 있었겠는가? 어항에 있는 어구의 상태를 보니 족히 4∼5년은 넘었을 것으로 보였다. 토기로 된 단지는 깨진 것이 많았고, 밧줄도 풍화로 삭아가고 있었다. 지역의 안내서에서 타카미지마의 산업은 수산물이라고 하면서 어종이 오징어라고 적혀 있었지만, 오징어 배를 어항에서 볼 수 없었다.

문어 자원의 감소, 그리고 빈집들
섬의 최고봉인 류오잔(龍王山)에서 용왕제를 지내는 것으로 보아 주민들에겐 풍어와 물 부족 해결에 대한 간절함이 기원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부업이라는 것도 건조한 환경에 자라는 제충국(除虫菊) 재배인 것만 보아도 물 부족이 일상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60년대에는 국화꽃으로 온 섬이 흰색으로 뒤덮였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화학제품이 등장하자 제충제 재료였던 국화 재배도 곧바로 쇠퇴하였다.
주변 바다에서 일어난 문어 자원의 감소가 이타모치 마을 폐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거라는 판단이 선다. 급경사에 조성된 우라 마을에 있는 집의 규모나 장식 등을 보면, 한때 수산자원이 풍요로웠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돌담 사이로 난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대부분 비어 있는 빈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전경은 그래서 보는 사람의 가슴 아프게 했고, 또 슬프게도 아름다웠다.

빈집에 들어서 문어의 공간
2013년에 이 섬의 빈집에 작품 ‘다코노이에(蛸の家 문어의 집)’를 설치한 작가 ‘요시노 오지(吉野央子)’의 작품 설명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집에 문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그런데 빈집에 사는 문어는, 이런 사람의 처지를 몰래 바라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문어가 사라진 바다를 떠난 어민들을 바라보며 문어는 어떻게 느끼는지 작가는 알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육지의 부촌들
에도시대 우라마을의 대화재 이후 시와쿠 지역 대표들이 중심이 되어 돌담을 쌓아 경사면에 작고 독특한 촌락 구조의 부촌을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섬에서 남동쪽으로 7.4km 떨어진, 배로 가면 25분 걸리는 다도츠의 과거 역사와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타카미지마는 행정적으로 가가와현 나카다도군(仲多度郡) 다도츠쵸(多度津町)에 속한다. 비록 지금은 작은 군에 속한 한 지역이지만, 다도츠는 시코쿠에서 근대산업을 선도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철도와 전력이 처음 시작된 곳이었고, 최초의 사립은행이 설립된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선박 무역을 하는 거상들이 있던 곳이었으니 같은 구역으로서 타카미지마의 자부심도 대단했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어업도 번성했으니. 이곳 다도츠에서도 타카미지마 이름과 순번을 가진 예술제 작품, 네 개를 전시하고 있었다. 섬에 가려면 이 다도츠항을 거쳐야 한다.




지구의 바다가 다 이럴진대
타카미지마에는 모두 13개의 작품이 있는데 11개가 우라 마을에 있었고, 이곳의 작품들은 다 가까이 있었으며, 모두 빈집에 설치되어 있었다. 섬에 거주하는 주민이 살지 않아 쇠락한 큰 빈집들의 현실을 아쉬워하면서도 과거를 회상하는 작품의 무대로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다. 작품들을 보고 나서면서 집 마당을 에워싼 돌담 뒤에 서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애써 모른 체하며 태평하게 잔잔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 왔었다. 지구의 바다가 다 이럴진대. 마을의 집을 바라보면 활기가 넘쳤을 때는 기품이 있고, 시와쿠제도의 일원으로서 당당했던 마을이었고 집이었을 텐데. 집들은 다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으니 그 옛날 늘 바다를 품고 살면서 바닷일에도 자신만만했음이 틀림없었다.
개인적으로 예술제에 참여하는 전체 마을 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다. ‘연재 1부 ④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바다’ 편에서 소개한 작품(ta11), ‘마사히토 노무라(野村正人)’의 ‘나이카이의 테라스(內海のテラス)’의 장면은 나의 감정을 풀어 놓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너무나 평화로워서 더 슬픈 풍경.

우라 마을의 작품들
우라 마을에 있는 작품 몇 개를 살펴보자. 사진과 함께 보길 바란다. 먼저 ‘나카시마 카야코(中島伽耶子)’의 작품(ta02) ‘토키노후루이에(時のふる家 시간의 집)’이다. 이 작가는 니가타 산골에서 열린 「에치고 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2013)에도 참가한 작가로 벽에 관통한 아크릴판이 실내로 들어온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했다. 빛은 변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고 느꼈다.

눈꺼풀의 뒤, 과거와 미래의 불확실성
작품 ‘마나우라노케시키 2022(まなうらの景色2022)’ (ta05)는 ‘무라타 노조미(村田のぞみ)’ 작품으로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모습을 연출하여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마나우라노는 ‘눈꺼풀의 뒤’를 말하는 것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경색(景色)’은 경치 또는 풍경이니 마음에 남는 추억이나 원래 풍경을 제목은 말하려고 한다.

또 다른 빈집에는 ‘지난날과 지내기’라는 뜻을 가진 ‘카지츠노도큐(過日の同居)’(ta07) 역시 일본 여성 작가 ‘후지노 유미코(藤野裕美子)’의 작품이 있었다. 화려한 색채로 풍요로웠던 지난날을 회상하고자 하는 의도는 보이나 현실이 아닌 허상인 것을. 사람이 살지 않아 퇴색된 벽과 천장과 밝고 선명한 색상의 그림과 문양이 극한 대조를 이룬다.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었음을 나타내었다고 해야 하나?


하나만 더 소개하면, 작품 ta10 ‘하나노코에・코코로노이로 2022(はなのこえ・こころのいろ2022)’로 ‘코에다 시게아키(小枝繁昭)’의 작품이다. 제목을 우리말 풀면 ‘꽃의 소리・마음의 색채’이다. 화가이자 판화가인 작가는 타카미지마에서 만난 꽃을 주제로 사진, 후스마(襖)- 큰 문에다 그린 전통 회화, 도예 기법으로 오브제로써 화려하게 표현했다. 보고 느끼는 것을 함께 제작하였는데 궁극적으로 한때 섬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제충국’을 소환하였다. 즉 ‘조추기쿠노이에(除虫菊の家 제충국의 집)’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섬 이름, 타카미지마는 높은 곳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일견 멋진 바다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섬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섬에서 특이한 매장 문화가 있는데 실질적인 산소인 ‘우즈매바카(埋め墓, 매장한 묘)’와 성묘하는 장소 ‘마이리하카(参り墓, 참배하는 묘)’로 나뉜다. 이를 ‘료보세이(両墓制, 양묘제)’라고 하는 이 일대 세 섬에서만 하는 매장 풍습이다. 이것도 이들 섬이 가진 환경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환경의 변화가 섬을 예술적으로 만들어두었네요, 아쉬운 일이지만, 매력적으로 변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래도 멋을 가지고있어서 다행이네요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변화에 인간이 영향을 받는 것인지, 그런 환경의 변화를 인간이 만드는 것인지 고민해보게 되는 사례였어요.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예술 작품들이 멋있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어확량 감소 그래프가 충격적이네요. 주 민이 떠난 자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게 참 감성적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올해 트리엔날레에 방문하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갑갑한 정국에 박사님의 글이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주변에도 돌려서 기쁘게 볼게요. 일상 속 예술, 자연이 넘쳐나 위로가 되는 우리나라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