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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가자① | 일본 해안 도시와 섬들의 실험

 

‘바다의 복원’을 목표로 열리는 일본의 세토우치 예술제는 기후변화와 산업화로 손상된 해안 지역을 예술로 되살리려는 프로젝트다. 나오시마는 그 중심지로 일본의 예술 섬으로 자리 잡았다.


2024-11-07 제종길, 고은정, 이응철


편집자 주

해안 도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바다에 접한 도시와 섬들은 저출생과 노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함께 해양 기후변화 위기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또 수도권 대도시로의 경제와 문화의 집중화, 그리고 표준화는 지방 도시의 독특한 지역 문화 소멸과 함께 경제 침체로 그 황량함이 가속화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가자]는 '일본으로 간다'다.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있는 바다,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의 12개 섬과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바다 복원’을 주제로 3년마다 예술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열린다. 이 축제와 함께 연안 지역이 살아났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번 연재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우리 해안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를 알아 보기 위해 세토우치로 떠난다.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생태학을 전공했으며,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일했다. 국회의원(17대)이 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을 창립하고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 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2008년에 만들어 지금까지 일하며, (사)도시인숲 이사장으로 있다. 경기도 안산시장(제13대)일 때는, 문화예술 도시를 꿈꾸었고, 현재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자 안산아트포럼 회원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 바다』(2002) 등 다수가 있으며, 『숲의 도시』는 전국 성호 문학상의 올 본상 작품이다.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SITE 환경디자인 대표, 도시공학박사로 상지대학교 조교수, 인천광역시 도시디자인 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도시경관과 공공디자인 전문가로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행정안전부 마을 육성과 도시재생 분야에서 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디자인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사)한국문화산업학회, (사)한국색채학회, (사)한국스마트해양학회의 부회장이며, 저서로는 『내가 사랑한 디노베이터』(2020년, 공저), 『공공디자인으로 대한민국 바꾸기』(2020년, 공저), 『예술이 농촌을 디자인하다』(2018년, 공저) 등이 있다.


이응철 일본 국립가고시마대학교에서 생태인류학과 지역자원학 연구로 2002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과 일본의 갯벌에서 어업활동과 갯벌문화 비교에 관한 다수의 연구가 있다. 일본에서는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농학부 지역사회개발학과 교수,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으로 일했다. 2015년 한국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농어촌 어민들의 활동과 건강 및 인간과 자연의 회복력(resilience) 등을 중심으로 인간의 건강, 사회의 건강, 환경생태의 건강에 관하여 탐구하기 위함이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 연구원, 경상북도 통합건강중진사업단 위원, 해양수산부 국가중요어업유산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매력자원연구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이며 국립 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적 자본의 법제화(1)—일본 사회적 자본 현황분석과 고찰』이 있다.

 

2017년 봄 일본으로 떠나는 공무 여행이 설레게 했다. 이 글의 대표 저자인 나의 여행 목적은 일본의 정령 지정도시 시즈오카시(静岡市)와 문화교류를 위한 것인데, 오히려 귀국길에 잠시 들릴 나오시마(直島)로 가는 일에 마음이 더 쓰였다. 아무도 몰랐던 나만의 비밀로 일본에서 해안도시인 안산을 예술 도시로 만들려면 반드시 봐야 할 곳으로 오래전부터 점찍어 두었기 때문이다. 나오시마만 둘러보기엔 아쉬움이 컸지만, 지식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무린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세토우치 지역을 잘 몰랐다. 해양학자로서 세토나이까이가 한국의 한려수도처럼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한 바다였다는 것과 산업화 과정에 해양 환경이 망가져 이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미술가와 건축가들이 예술행사를 섬에서 3년에 한 번씩 여는 국제 예술제라는 정도로만 알고 갔다. 온 하루도 아닌, 단 몇 시간을 나오시마의 주요 지점만 해설을 들으며 바쁘게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함께 간 일행들 모두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드시 다시 오리라!” 다짐하고 떠나왔다. 이렇게 출입한 것이 올해까지 네 번을 다녀왔다.

2022년 다섯 번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공식 포스터이다. 포스터의 모델이 시선을 끄는데 지역에 거주하는 두 노인(남녀 각 1명)를 선정하여 다분히 미적·사회적 효과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제의 주제를 ‘바다의 복권’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복원’이라는 단어로 쓴다. (예술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한 것임)

또다시 나오시마로 가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瀬戸内国際芸術祭 Setouchi Triennale 이하 예술제)에 관해 수집한 자료도 늘었고, 나오시마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해 여름휴가를 나오시마로 다시 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절친한 두 쌍의 부부와 일본 무사시노대학교에서 공부한 교수 한 명을 겨우 설득해 오카야마에서 만나기로 했다. 출발지도 다르고 일정이 서로 다른 바쁜 이들이라 각자 따로 떠나 일본에서 만나는 계획이었다. 나오시마로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둘 중에 혼슈 오카야마현의 우노항에서 가는 것이 훨씬 가까우니 그리 선택했다. 때마침 일본은 장마철 한가운데였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쉬지 않고 온종일 오카야마를 적시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라디오에서는 계속 외출 자제를 알렸고 이후도 비가 계속 온다고 했다. 일행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그래도 빗속에 아침 일찍 출발을 강행했다. 우노항에 도착하니 비의 세기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여행객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날은 날씨로만 봤을 때 다시 없을 최고의 여행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비는 거의 그치고 선선한 여름 해풍을 제대로 즐기는 항해가 되었다. 비 온 다음날의 푸른 하늘. 특히 나오시마를 보고 이누지마(犬島)로 이동할 때 탄 작은 배는 완전 우리 독차지였다.

그래도 아쉬웠다. 다른 10개 섬이 더 있었고, 일정상 두 섬만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어서다. 2019년 예술제에 다시 오자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다시 2022년으로 미루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5년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2022년 늦여름에 10월부터 외국인들의 방문이 허가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방문 준비를 했다. 때마침 항로도 열렸다. 이번엔 두 후배와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다 돌아보려고 출국 전에 일정과 방문지 그리고 배편을 꼼꼼히 챙겼다. 이번엔 예술제의 중심지인 시코쿠 가가와현의 다카마쓰(高松)에 숙소를 정하고, 도착 첫날에는 오사카 공항에서 오카야마를 거쳐 열차로 우노항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나오시마로 가기 위해서였다.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宮浦港)으로 여객선이 접근하면 제일 먼저 ‘빨간 호박’(위 사진) 눈에 들어온다.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작품으로 그녀의 점박이 호박 작품들을 활용한 디자인과 상품들은 나오시마에서 완전 대세다. 렌터카 문양(아래 사진)에서부터 기념품과 홍보물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에 활용되고 있는데 몇몇 상품은 비싼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판다. 다카마쓰 공항 면세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네세 하우스 호텔 앞 방파제에는 ‘노란 호박’이 있다. (사진_제종길)

희망의 바다로 가는 길


국내에서 예술제 지도를 여러 번 보고 섬의 이름도 외우고 교통편을 다시 살피는 동안 12개 섬이 모두 익숙해졌다. 예술제의 미션(Mission)이 홈페이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바다의 복원(Restoration of the Sea)’이었다. 그 뜻이 회복이든 재생이든 간에 얼마나 숭고한 비전인가? 더군다나 예술제에서. 설명을 보자. “세토내해는 고대부터 중요한 교통로였습니다. ……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한 독특한 지역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섬의 독특한 정체성은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세계화, 최적화, 균질화의 가속화에 따른 지역의 활력 감소로 인해 침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통해 한때 무역과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세토나이카이의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번성했던 섬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이 지역을 세계의 ‘희망의 바다’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렇다. 바로 희망의 바다와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울림이 있었다.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디자인 마을이라고 할 정도 하나하나가 독특하면서 그것들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함께 휴가 여행한 일행들과 작은 카페 앞에서 카페 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_이호중)

이것은 어찌 ‘바다 살리기’ 뿐일까? ‘사람 살기 좋은 곳 만들기’와도 동의어일 것이다. 산업발전이 우선이던 시대에는 해안의 만과 습지를 메우고, 그 자리에 산업단지와 조선소를 지었다. 해양생태계가 비명을 질러도 사회의 욕망은 경제적 가치에만 몰두했었다. 어찌 일본뿐이겠는가? 너무나 똑같은 과정을 거치고 이제야 후회하는 우리나라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예술로 복원(이 글에서는 ‘복원’과 ‘복권’을 번갈아 가며 씀)하려고 사업가와 예술가들이 먼저 나섰다는 것이 참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바로 이 점을 우리나라에 잘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책’이 떠올랐다. 이 매력적인 해안 예술제를 찾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으나 대부분 미술품 전시에 관심을 두었거나 단기간 여행으로 거쳐 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술제 또는 나오시마에 관한 여러 권 서적이 있다. 그 가운데에는 12개 섬을 다 다녀와서 여행기 형식으로 쓴 책도 있다. 방문객들은 대개 나오시마만 보고 가거나 한두 개 섬을 더 보고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가 본 것을 소개하면서 그 배경까지 알리고 싶었다. 아울러 예술제 주관자들이 꿈꾸었던 환경과 섬 공동체의 복원도 잘 이루어졌는지 궁금하여 자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분석하되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한다. 내년 2025년 예술제를 앞두고 좋은 안내서가 되길 바라면서. 집필 계획을 세울 때부터 지식의 한계에 부딪혀 관련 전문가 두 명—고은정 박사와 이응철 박사 그리고 사진가 박진한 씨를 포함한 동료 세 명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래서 주어를 ‘우리’라고 할 때는 네 저자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

베네세하우스 호텔 전면 잔디밭에는 최초의 설치품인 네델란드 화가이자 조각가인 카렐 아펠(Karel Appel)의 조각인 ‘개구리와 고양이(Frog and Cat)’가 있다. 이곳에는 이 작품 외에 프랑스 조각가인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이 ‘르 반(Le banc)’ 등 여러 개가 있다. (사진_제종길)

나오시마에서 예술제가 시작되다


섬 나오시마(直島)는 예술제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1980년대에는 나오시마의 주변 바다와 섬 환경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인구 저감과 노령화에 직면했다. 위키피디아와 여러 자료에 따르면 1985년 오카야마에 본사를 둔 한 후쿠다케 출판사(후에 이름이 베네세 Benesse로 바뀜) 대표인 테츠히로 후쿠타케(Tetsuhiro Fukutake)가 나오시마 마을(直島町, Naoshima-chō)의 대표를 만나 섬을 문화·교육 시설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1955년에 있었던 168명의 희생자(수학여행 중학생이 100명 희생)를 낸 여객선과 화물선 충돌사고를 계기로 건립된 세토대교가 1988년 완공되면서 이 지역의 관광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1989년에 베네세 사 대표의 아들 소이치로 후쿠다케(Soichiro Fukutake)가 나서 ‘나오시마 국제 캠프(Naoshima International Camp)’가 이곳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나오시마, 테시마(豊島), 이누지마(犬島)에서 베네세 사가 시작한 예술 프로젝트의 총칭인 ‘베네세 아트 사이트(Benesse Art Site)’의 기초를 구축했다. 카렐 아펠의 조각품인 ‘개구리와 고양이’는 1989년 베네세 아트 사이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오시마에 설치된 최초의 예술 작품이다. 물론 캠프 설립 때부터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건축과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일련의 발전 과정을 거치다가 2000년부터 시작된 니가타의 ‘에치고쯔마리 아트 트리엔날레(Echigo-Tsumari Art Triennale 이후 미술 축제)’의 시작으로 인구소멸 농촌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크게 주목받자, 2004년에 세토우치에서도 예술제를 준비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니가타현과 미술 축제 기획자의 도움을 받아 2010년에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 개관과 동시에 7개 섬에서 첫 예술제가 열렸다. 그러니까 내년 2025년 예술제는 6회가 되는 셈이다.

댓글 3개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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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Nov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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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는 안산도 전형적인 피해지역이기에 나오시마의 예술도시로 해양을 복원하려는 사례는 많은 시사점이 있겠네요

안산에도 나고시마등 12개 섬의 노력이 연구되고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변화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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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Nov 08
Rated 5 out of 5 stars.

바다를 살리는 것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것. 그것을 은유와 직관으로 보여주는 예술까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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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Nov 08
Rated 5 out of 5 stars.

나오시마 일대는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예술을 적절히 녹여낸 부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가본 여러 나라나 지역 중에도 유독 기억에 남는 여행지였습니다. 다음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중에 다시 방문하여 더 그 의미를 깊이있게 느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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