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통과 순환을 체험할 수 있는 작은 섬, 이누지마에서 미술관과 예술 작품들, 섬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소개한다.
2025-1-24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오사카성 개축에 쓰인 화강암 산지
이누지마(犬島)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섬들 가운데 유일한 오카야마현에 속한 섬이며, 크기도 가장 작고 육지와도 가장 가깝다. 다들 알다시피 ‘이누’는 ‘개’다. 이 이름은 웅크린 개 모양을 닮은 거석 ‘이누이시사마(犬石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술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구는 30명이다. 이웃한 테시마가 이누지마보다 17배나 크니 얼마나 작은 섬인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여러 부속 섬을 끼고 있어 이누지마 제도라고도 한다. 과거 이 섬이 명성을 얻은 것은 양질의 화강암 산지였기 때문이다. 주로 성벽을 쌓는 돌로 쓰였는데 1620년 오사카성 개축을 비롯해 여러 성 공사와 1903년 개항한 오사카치코(大阪築港, 오사카시항)의 공사에도 이용했다.
인구는 급감 중, 주민 대다수가 70세 이상
‘하자마 에미코(狭間恵三子)’의 책 『세토우치국제예술제와 지역창생(瀬戸内国際芸術祭と地域創生』(2023)에 따르면 위의 항을 공사하던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채석장으로 가장 활발했다. 당시 섬의 인구는 5천명에서 6천명에 이르렀다. 채석장에서 1909년 ‘이누지마 세이렌쇼(犬島精錬所, 이누지마 제련소)’가 창업했지만, 구리 가격의 대폭락으로 인해, 제련소는 불과 10년 만에 조업을 중지했다.”라는 글이 나온다. 그러니까 2008년까지 약 90년간 방치되었다. 인구에 대해서는 3천여명이라는 기록도 있고,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누지마의 역사’라는 2011년 오카야마시에서 발간한 자료를 인용해 1935년 무렵에 1500명이었고, 1969년 750명인 이후에 가파르게 줄어 2017년 35명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런 통계로 볼 때 인구수가 부풀려졌다기보다는 제련소가 한창일 때 직원이 2000명 이상이었다고 하고 1935년에는 또 다른 공장 때문에 이누지마로 이주한 근로자도 많았다고 하니 출퇴근한 근로자를 포함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섬보다 인구수가 크게 급감한 곳인데 앞으로도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주민들 대다수가 70세 이상인 까닭이다.
낡게 바랜 구리 제련소와 현대미술의 조화,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
배에서 이누지마에 내리면 바로 탄화 목조 건물인 ‘이누지마 티켓 센터’가 나오고 그 뒤로 큰 굴뚝이 보인다. 바로 ‘이누지마 세이렌쇼 비주츠칸(Inujima Seirensho Art Museum)’(in07B), 즉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이다. 옛 건물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도록 그 자취를 보존하면서 일부분을 돌과 벽돌을 재활용해 재생한 미술관이다. 기존의 굴뚝과 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두고 구리 제련 시의 부산물인 슬래그로 만든 카라미 벽돌과 현지에서 채취한 화강암을 적절하게 섞어 만들었다. 한때 구리가 녹고 연기가 피어올랐던 제련소가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곳으로 재탄생했다. 거무튀튀하고 낡게 바랜 건축물과 현대미술이 절묘하게 조화롭게 어울려 아주 고즈넉하고, 거친 구조 속에서도 아늑함을 느끼게 했다. 예술의 마력이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의 활동을 다른 섬으로 전개하고 싶어 한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여러 산업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는 이누지마를 예술의 힘으로 재생하고 싶어 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제련소의 터에 폐기물 처리장을 만들 계획이 있었지만, 그는 이누지마가 제2의 테시마처럼 처리장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제련소 용지를 서둘러 매입했다. 1992년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의 개관에 따라 개인전에 초대된 작가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는 1995년 ‘이누지마 아트 프로젝트’를 착상했다. 이후 건축가의 삼부이치 히로시(三分一博志)와 함께 건축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식물의 힘을 이용한 고도의 정수 시스템을 도입해 환경친화적인 자연 에너지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들었다. 이는 위 두 전문가와 오카야마대학교 환경공학부가 협동하여 작업한 결과다.
2007년 제련소는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일본 산업근대화 유산 33개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일 년 후인 2008년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이하 아트 사이트)’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개관하면서 독특한 ‘예술의 섬, 이누지마’의 상징이 되었다. 친환경적인 운영방식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티켓 센터와 미술관 그리고 예술제 작품들 모두를 아트 사이트에서 관리한다.
무릉도원의 생명력,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
어두운 곳에 익숙해질 때쯤 미술관 밖으로 나오면 세상이 밝고 화려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바로 이런 세상임을 알리려고 우리가 사는 곳을 특이하게 표현한 여러 작품을 줄지어 보게 된다. 그러니 미술관이 먼저다. 밖으로 나와서 조금 걷다가 왼편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F 저택'이 나오고, 옆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따라가자면 알파벳 S, A, C, I 저택이라고 하는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 작품들이 나타난다. 앞의 세 집은 2010년 그리고 다른 두 개는 2013년 설치되었다. 다섯 개를 다 보고 나면 포구 앞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된다. 나오시마의 ‘이에 프로젝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나오시마가 더욱 진중하고 학술적으로 보인다면 이누지마는 더욱 자유롭고 활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을의 빈 외부공간에 설치했는데 주변 주택과는 매우 이질적인 형태와 색상을 가진 현대 미술품이었다. 투명한 아크릴 사이의 렌즈, 화려한 색감의 꽃, 바닥에 그려진 문양, 알루미늄 등이 조용한 동네에 생명력을 넘치게 하려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 프로젝트의 아트 디렉터인 ‘하세가와 유코(長谷川裕子)’는 2022년 예술제 보고서에서 섬의 풍경과 작품을 둘러보는 것이 선경이나 무릉도원을 말하는 ‘토겐쿄(桃源鄕)’처럼 여겨진다고 빗대어 말했다. 전체 집 프로젝트에 건축 자문이면서 개인 작품(in08B) ‘나카노타니아즈마야(中の谷東屋, 정자 전망대로 주변의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오게 만듦)’를 출품한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의 이름이 보인다. 세지마는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두 번째 여성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데시마 미술관을 건축한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SANAA를 공동 운영한다. 니시자와도 역시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야생화가 평화로운 마을 길
이누지마의 마을 길은 평탄하여 가볍게 걸으며 주변 경관과 작품들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주민들이 적어서 그런지 야외 공원을 걷는 것처럼 인위적인 시설물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집들도 자연 일부처럼 보인다. 길가에는 야생화들이 평화롭게 피어 있고, 일부 화단은 주민들이 키운 것도 있었는데 모두 자연스러웠고 서로 잘 어울렸다. 'I 저택'과 주변 다른 작품을 보고 돌아 올라와 서쪽 산길을 넘어서면 또 다른 해변이 나오고 바다에 인접한 하얀 집에는 엄청나게 큰 개의 조각품이 보인다. 수많은 타일로 만든 개인데 ‘이누시마의 시마 이누(犬島の島犬)’이다. 섬의 충견으로 이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이것은 예술제 참여 작품은 아니나 꼭 볼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자립과 체험의 공간, ‘이누지마 섬 식물원’
세지마가 공동 주관한 작품(in09B)인 ‘이누지마 쿠치시노 쇼쿠부츠엔(犬島くちしの植物園)’이 있었다. 개가 있는 하얀 집에서 좌측으로 해안을 따라가면 약 4500㎡의 그리 크지 않은 부지가 나온다. 오랫동안 버려진 유리 온실을 활용해 이누지마의 자연 풍토나 문화에 뿌리내린 식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누지마 섬 식물원’인 것이다. 얼핏 보기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곳처럼 엉성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성을 가득 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방문객들에겐 부담이 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동참을 끌어내게도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였다. 자립과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니 멋진 꿈이라는 생각이 들고, 건축가의 철학을 존중하게 되었다.
새로운 소통과 순환을 체험하게 하는 작품들
섬마을에서는 역동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과 작품들과 사이에 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소통과 순환을 체험하게 하려는 작품들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힘든 노동과 삶을 하고 살아왔던 주민들과 노동자에게 주는 헌사로 보였다.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이누지마 마을을 돌아본다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이누지마 티켓 센터에서 간단한 식사와 기념품 구경만으로도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센터 뒤편 해안을 따라 놓여 있는 화강암에 걸터앉아 세토나이카이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리라!
맛난커피와함께 산책하고싶은곳이네요~^^
소박하면서도 예술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작은 섬이 아름다워요
글속에 표현되고 묘사된 공간을 둘러보느라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한편의 수채화같은 영화를 감상하고 나온 느낌입니다.
이렇게 좋은 여행 글을 읽게되어 감사드립니다.
꼭 다시한번 방문해서 글속의 주인공이되는 순간을 기대해봅니다.
저 미술관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섬 라퓨타의 모티브란 이야기를 얼핏들었습니다. 재미난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