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잡이가 잘 되던 시절을 염원하는 섬, 오기지마. 산비탈 마을 골목과 해안 길을 돌아보며 예술제가 주민들에게 불러일으킨 감성을 살핀다.
2025-02-14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생선 비늘 겹치듯 들어선 산비탈 집들
오기지마(男木島)의 남단은 메기지마의 북단과 불과 1km 거리에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바다에 가로막혀 만나기가 싶지 않은 애달픈 사이처럼 보인다. 차라리 멀리 있다면 잊어버리기라도 할 텐데. 그래서 암수, ‘좌웅행정동’이 되었나 보다. 오기지마로 다가가면서 바라보니 섬의 길이는 짧아 보이지만 오뚝 솟은 봉우리가 보였다. 항에 들어서자 세 가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첫째는 산비탈에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마을인데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관광 안내서에서는 생선 비늘이 겹쳐 있는 듯하다고 했는데 어촌에서 나올 만한 표현이다. 지형으로 볼 때 메기지마와는 다르게 어촌의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오기항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별도의 어항도 갖고 있다.



바다에 떠 있는 조개껍데기
두 번째가 좁은 해안가에 있는 특이한 구조물, ‘오기지마노타마시(男木島の魂, 오기지마의 혼)’이다. 작품 번호는 ‘og01’이고, 2010년 스페인 작가 ‘자우메 피엔사(Jaume Piensa)’의 작품이다. 한눈에 저곳이 오기지마의 입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류관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물은 가둔 수면 위에 여덟 나라의 문자로 만든 흰색 지붕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고, 신선했다. 색깔도 물색과 대비되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런데도 낡고 쇠락해 보이는 마을과도 잘 어울렸다. “예술의 힘인가?” 예술제의 해설문에는 바다에 떠 있는 조개껍데기가 연상된다고 적혀 있었다.


문어잡이가 되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놀이시설
세 번째는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장면이 인상적인 ‘팀 오기(TEAM 男氣)’(og02)의 커다란 ‘문어단지’인데, 교류관이 마을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다면 이곳은 오른쪽에 있어서 전시에 균형을 맞춘 것 같았다. 마을에서 만든 것으로 특히 아이들에게 문어와 문어잡이를 친근하게 하려는 일종의 놀이시설이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에겐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하지만 여러 울긋불긋한 여러 깃발을 보면서 사라진 문어 자원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자루 모양 지형, 산자락이 해안까지
일본이 여러 개의 나라로 되어 있을 때, 87국의 지도인 ‘텐포쿠니에즈(天保国絵図, 천보국회도)’는 1838년에 만든 것이다. 이 지도 중에 ‘사누끼구니(讃岐国)’는 가가와현의 옛 이름으로 구역도 같다. 그러니까 사누끼 우동의 ‘사누끼’도 옛 나라 이름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지도를 보자. 다시 강조하지만 오기지마와 메기지마, 두 섬이 아주 가깝고 생김새도 확연히 다르다. 오기지마는 자루가 달린 덩어리 모양인데 현지에서 보니 중심부에 솟은 212m의 ‘코미야마(コミ山)’의 산자락이 해안까지 이어져 편평한 땅이 거의 없었다. 길을 제외하면 자루 부분에 일부 평지가 있을 정도라 농사를 지을 만한 토지가 없었다. 마을도 항 주변 산의 경사면뿐이었다. 그나마 서쪽 해안 길은 ‘걷는 방주(og16)’가 있는 방파제 바로 옆 해수욕장인 ‘오이카이수이요쿠바(大井海水浴場)’에서 조금 더 가면 끊겨 있다. 걸어서 일주는 불가능했다. 반면에 서쪽 해안은 자루 반대편에 있는 등대까지 길이 있다.


골목은 많고 길은 흩어지고 오르내리고
방주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찬찬히 다녀 부두로 가면 시간이 잘 맞겠다고 했다가 낭패당했다. 우선 다카마쓰항에서 ‘오시마(大島)’로 가는 배가 없었는데 오기항에서 왕복하는 작은 선박이 있어 잠깐 둘러보고 오자고 한 것이 실수였다. 막상 가보니, 볼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여행에서 종종 있는 일인데 계획하지 않은 일정 변경 때문에 본래 계획이 틀어졌다. 오기지마를 돌아와 ‘걷는 방주’로 갔다오면서 마을의 높은 곳으로 먼저 가려고 했다. 그런 다음 내려가면서 차차 이곳저곳을 보면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착각이었다. 골목이 많고 반듯하지 않을뿐더러 작품의 위치를 찾기 쉽지 않았고 길이 모였다 흩어지고 막히고 오르내리니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오죽하면 관광객들의 여행기에도 ‘혼미’하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단순하게 바다를 보며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항에 다다를 것으로 생각했었다. 약도를 자세히 보고, 골목 갈림길에 있는 안내 팻말을 살피면서 긴장을 풀지 않아야 했다. 결국 부두에 도착하면 찾아가려고 찍어 놓았던 식당에서 지역 해산물 식사를 하려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밀조밀, 동네 주민들의 예술작품들
걷다가 만나는 아기자기한 디자인이나 간판 또는 벽화 그리고 집 현관이나 담장에 놓인 해양생물 장식들까지 발길을 잡았다. 나오시마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시골의 수수함과 주민들 스스로 만든 오기지마만의 것으로 보이니 사진을 찍고 또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종종걸음. 서두르다 보니 땀도 나고 약간 지치던 차에 눈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예술제로 자극받아 주민들의 창의성이 곳곳에 발현되었음을 엿보게 되어 왠지 기분이 좋았다. 분위기가 세련된 카페인 ‘다몬테쇼카이(ダモンテ商会)’에 들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베이커리 카페였다. 독창적인 빵과 음료수 메뉴가 있었고, 인구 150여 명의 섬마을 카페라고 보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멋이 있었다. 마을 중턱에 있어서 마을과 항 일대 그리고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도 그만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주스 한 잔씩 하자며 아주 잠시 머물렀다.
자매로 보이는 두 여성의 친절함에 한 시간 정도를 쉬고 싶었지만, 배를 타기 위해 지름길을 물어보고 서둘러 떠났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일행 중 막내가 “이곳의 땅값은 얼마나 할까요?”라고 궁금해 하는데 나는 “여기 와서 살고 싶네요.”로 들렸다. 오밀조밀한 동네에 거부감이 없이 평안하고 사람들이 다 친절했다. 경치도 좋고, 편안한 쉼터까지 있으니. 막내의 엉뚱한 질문으로 빠른 걸음을 걸으면서도 다들 이곳에서 며칠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섬의 비탈에 있는 마을의 매력에 세 사나이가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카페와 식당을 안내하는 간판인데 개성이 강하고 나름대로 조형미를 갖추었다. 사진_제종길

주민들 일자리는 3차 산업이 60% 이상
위의 글에서 이 섬의 주력 수산물이 문어겠다고 짐작했을 터이다. 어선의 크기와 어구 등으로 볼 때 마을 어업은 주로 문어 채취였던 것 같았다. 이 점은 어민과 마을 협동조합에서 문어밥을 판매하는 여성 주민으로부터도 확인되었다. 두 사람 다 자원이 크게 소멸하고 있어 큰 걱정이라 했다. 홋카이도대학교 ‘맹큐(Meng Qu)’의 2021년도 박사학위 논문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지방예술제 관광이 세토나이카이 섬들의 재활성화(The Influence of Setouchi Triennale's Rural Art Festival Tourism on the Revitalization of Islands in the Seto Inland Sea)」에 따르면 오기지마는 코로라 이전 2019년 예술제에서 메기지마보다 약간 적은 약 7만2천여 명이 방문했다. 주민들이 고용된 일자리 구성을 보면 3차 산업이 60%가 넘었고, 1차 산업은 31% 정도였다. 메기지마는 3차가 42%이고 1차는 52%였다. 이렇게 볼 때 오기지마는 어업의 비중보다는 펜션이나 식당과 카페가 주민들의 주된 일거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술제 이후 학교가 재개교했다
12개 섬 중에 인구수가 늘고 있는 섬은 오기지마와 쇼도지마뿐이다. 그래야 150여 명이지만. 2014년 그러니까 예술제를 두 번 치르고 나서는 폐교가 되었던 초중등학교가 재개교를 했다. 비록 어업이 힘들어지고 주민들이 떠났지만, 예술제 이후에 관광객이 늘자 마을에 자영업들이 생겨나면서 도시에서 귀촌하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증가하고 있음을 알았다. 과정과 이유가 눈에 보였다. 미래 세대가 만족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 다른 섬과는 달리 보였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배를 타고 떠나올 때 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문어단지 놀이터에 꽂혀있는 깃발을 뽑아서 열심히 흔들어 주었다. “꼭 다시 오세요!” 하고.


이 섬은 한때 고양이 섬으로 유명했다. 2019년 거세와 중성화 수술 이후 그 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그래도 고양이를 간간이 보았다. 오기시마등대 주변 산언덕에 1월부터 3월까지 수선화 1100만 송이가 핀다고 하니 참 이쁠 것 같다. 좋은 여행 정보다. 바다와 어떻게 어울릴지 궁금하다. 2월이 절정이라고 하니 ‘삼사일 살이’를 위해서 훌쩍 떠나고 싶다.
배에 그려진 문어의 낯설음, 여행객들에게 혼미를 주는 골목길, 일상의 삶을 예술제로 승화시켜 문화가 되고... 1100만송이의 수선화가 핀 바다도 보고 싶고... 떠나고 싶다..^^
언덕의 가옥들이 입항하는 배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환영해 주는 듯 하여 정감이 갑니다. 이런 마을과 예술을 조화라니.. 참으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한국의 작은 시골 마을이나 섬들도 오기지마와 같이 엄청난 프로젝트나 대규모 사업이 아니라 각 지역의 특색을 살려 자기 동네만의 정취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