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이야기가 가득한 메기지마, 해안 길을 따라 섬 전체가 동화 속 세계이자 생활사 박물관 같은 곳이다.
2025-02-06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남녀 관계는 없고 도깨비 이야기뿐
2022년 10월 말 화창한 어느 날, 메기지마(女木島)와 오기지마(男木島)를 하루에 방문하려고 아침 일찍 다카마쓰항으로 가면서 내내 궁금한 것 투성이였다. 우선 이름이었다. 두 섬을 왕래하는 페리를 타고 가면서 이곳저곳에서 받은 관광 안내서에는 이 두 섬의 이름에 있는 남녀 관계에 대한 설명은 없고, 도깨비 이야기뿐이었다. 안내서만 읽으면 실제 도깨비가 살았던 곳이거나 지금도 가끔 나타나는 곳이 아닌가 착각을 할 만하다. 물론 일본식 과장과 해학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역 특성으로 무엇 하나만 찾으면 그것에 집중하는 것은 아마 세계 최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메기지마는 도깨비에 열중하기로 한 것이 분명하다. 이 섬의 북쪽에 있는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해발 186m의 ‘와시가미네(鷲ケ峰)’에서 1914년에 동굴이 발견되었다. 그런 다음 동물들과 함께 괴물 ‘오니’를 물리친 영웅 ‘모모타로(桃太郎)’ 전설과 함께 세상에 발표되었다. 도깨비섬, ‘오니가시마(鬼ケ島)’의 모델이 된 섬으로 메기지마가 일약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섬 전체가 「세토나이카이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되었다.


'오오테'라는 돌담
다카마쓰항에서 배를 타면 바로 내린다고 할 정도 가깝다. 항에서 항까지 거리가 4㎞에 불과하다. 남북으로 긴 섬인데 동쪽이 평탄하여 항과 큰 마을 ‘히가시우라(東浦)’가 있고, 서쪽엔 작은 마을이 있다. 항으로 접근하다 보면 방파제 끝에 도깨비가 방망이를 들고 지킨다. 늠름하기는 하였으나 순해 보였다. 큰 마을 뒤편의 산은 높지 않고 능선이 부드러웠다. 산 정상부에 있는 도깨비 굴은 기원전 100여 년 전에 파놓았다고 추정되는데 길이는 약 400m다. 도깨비가 관광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니 동굴에 여러 도깨비를 거주하게 했다. 일본에는 이와 유사한 도깨비 관광 전략을 가진 지역이 여럿 있다. 이 섬에 또 하나의 두드러진 점은 돌담이다. 겨울엔 ‘오토시(オトツ)’라는 물을 머금은 돌풍이 자주 불어 집안까지 물방울이 날아든다. 이것을 막기 위해 만든 돌담인데 이를 ‘오오테(オオテ)’라 한다. 보기에는 해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석성 같았다.

메기지마는 야트막하고, 오기지마는 우뚝 솟았다
물론 이 섬이 다카마쓰에서는 가장 가까운 섬이고, 오기지마와도 이웃하니 당일 여행 일정으로는 최고의 지리적 여건 갖춘 것은 맞으나 계속 “왜?”가 머릴 떠나지 않았다. 귀국 후에도 계속해서 뭔가 있긴 있을 텐데 하며 여러 자료를 추적한 결과는 두 섬은 암수를 뜻하는 자웅(雌雄), 즉 일본어로 ‘시유우지마무라(雌雄島村)’이라 하여 한 행정구역이었는데 아마도 섬의 생김새가 암수를 나누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좀 더 추적해 볼 예정이다. 메기지마는 섬이 길고 상대적으로 야트막해 보이지만, 오기지마는 강한 느낌을 줄 정도로 우뚝 솟은 것이 다르다. 지금은 다카마쓰시 소속이지만 당시에는 가가와군(香川郡)에 속해 있었다. 1920년 시작할 당시에는 인구는 1500명이 넘었으며 가장 많았을 때가 1940년대 후반인데 2100여 명이었다. 1955년에 이 행정구역은 폐지되어 별도가 되었다. 메기지마만 볼 때 근년까지 인구는 150명에 가까웠으나 2023년 기록에 따르면 81세대 124명이었으며, 80세 이상의 고령자가 다수다.

1㎞ 내 모여 있는 작품들, "어, 재미있네"
마을 길은 대부분 평탄하고 경사가 있는 동굴 가는 길로 버스가 오간다. 작품이 집중해 있는 큰 마을의 길은 걷기나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다. 해안따라 길을 걷다 보면 이웃한 여러 작품을 만나게 된다. 멀리 걷지 않아도 바로바로 이어서 볼 수 있는 이곳만의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작품들도 이해하기가 평이하고 “어, 재미있네!” 또는 “이런 것도 작품인가?”라고 할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또 수집한 것을 전시한 것이나, 옛날 건물의 내부를 전시 공간으로 이용한 것까지, 또한 너무나 평범한 것인데 작품인 것도 있다. 아기자기하다 못해 우리가 사는 동네도 이렇게 꾸며볼까 하는 욕심이 생기도록 과하지 않고 경비를 크게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동굴을 제외하면 항에서 반경 약 1㎞ 내에 다 있으니 감상하는 데 부담이 거의 없었다.


평화로운 해안 풍경
그래도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작품이 펴져 있어서 우린 두 팀으로 나누어 움직였다. 나는 우겨서 평탄한 해안 길을 선택해 가로축으로 걸었다. 선들바람과 따스한 햇볕 그리고 빛나는 모래 해안을 한꺼번에 안고 걸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길가의 숙소나 식당 등도 꾸밈 없고, 수수해서 바닷물이 잔잔하게 밀려왔다가 나가는 해안 풍경과 잘 어울렸고, 걷다 보면 느리게 움직이는 깨끗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 좋아 내년엔 꼭 와서 며칠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에게 한 약조를 지키지지는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올 6월쯤에라도 가 봐야 하나 망설이다 보니 도무지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억지로 억지로 한 자씩 적어 나간다.
섬 전체가 바닷가 마을의 생활사 박물관
예술제 작품들은 차례차례 찾아보니 집들, 식당들, 펜션 모두가 나름대로 작품이어서 마을 자체가 작품인 게 아닌가 하고 헷갈렸다. 전체가 바다와 바닷가 마을의 생활사 박물관이었다. 메기지마에서는 이렇게 티를 내지 않고 마을 자체가 한 박물관으로 여겨지도록 “기획을 누가했을까?” 속으로 읊조리며 내내 추리까지 해보았다. 작품 가운데 몇 개를 살펴보자. 연재 네 번째 글에서 소개했던 메기지마 대표 일 번 작품(mg 01)인 ‘키무라 타카히로(木村崇人)의 갈매기의 주차장(カモメの駐車場)’의 갈매기는 바람에 따라 바라보는 곳이 바뀐 방문객을 싣고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지 않고 뒤돌아선 갈매기 모습이 여전히 쓸쓸하다.

해안 길에서 산 쪽으로 골목길을 걸어 오르다 보면 금방 마을의 일반 집보다 훨씬 큰 건물이 나온다. 오래된 창고를 활용하여 뉴욕 42번가 극장을 흉내냈다. 작가는 일본의 ‘요다 요이치로(依田洋一朗)’으로 작품번호 mg14에 ‘메기지마명화관(Island Theatre Megi, 女木島名畵座)’이다. 작가가 만든 다큐멘터리나 오래된 단편영화를 실제로 상영하였는데 2022년에는 ‘키타가와 프람’이 안내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극장은 또 도시의 뒷모습이 되어 쓸쓸함을 배가하였다.
예술의 비일상과 섬의 일상이 교차
해안에 가까운 마을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일종의 상점가가 나오는데 섬의 번화가다. 본디 상점들이 있었던 곳은 아니고 예전의 민박집과 빈집을 활용하여 2019년 ‘섬 속의 작은 가게 프로젝트’로 시작한 것이 마치 몰 같은 형태의 상점가가 되어 섬 주민들도 이용할 수 명소가 되었다. 이곳을 ‘메기지마 메이텐가이 몰(Megijima Meitengai Mall, 女木島名店街)’라 했다. 카페(mg05)와 맛집, 재미있는 탁구장(mg08), 빨래방(mg09), 미용실(mg06) 등이 있었다. 표시한 것처럼 다수가 작품이었다. 2022년 예술제 보고서는 이를 “예술의 비일상과 섬의 일상이 교차한 새로운 섬의 풍경이 생겨나고 있다.”라고 했다. 몰의 관리는 자원 봉사단체인 ‘세토우치 코에비 네트워크(Setouchi Koebi Network)’가 맡고 있었다.


동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작품들
또 아이들이 보면 좋은 동화의 세계를 구현하는 작품(mg11, mg20, mg27 등)도 있어 가족과 함께 상상력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인 작가인 ‘아키빙고(あさびんご)’의 설치 그림 작품인 ‘세토우치 카니발(mg23)’이 참 좋았다. 병풍이나 패널에 부착된 대형 그림들은 세토우치의 생태와 문화를 잘 보여 주었고, 세계의 도깨비 그림도 있었다. 한편에는 이 고장에 관한 참고문헌을 잘 진열해 놓고 있어서 세토우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최고 장소가 되었다. 더 머물고 싶었고, 또 일부 책들은 내가 꼭 가지고 싶은 책이어서 제명을 다 적어 오느라고 전체 일정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고 싶은 곳
해안은 얕은 수심에 모래가 다 들여다보이지만, 모래가 자꾸 쓸려나가는지 포락을 막는 석재 방조제를 해안으로부터 수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해안은 여러 개의 작은 해안으로 나누어지는데 여름철 해수욕객들에게 더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 해안을 따라 작고 소박한 펜션들이 여럿 있었는데 오래된 건물들을 통해서 최전성기는 지난 듯하였다. 그렇지만 가가와현 주민들에겐 최고의 여름 휴가지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여름엔 분명 붐빌 것이다. 잠시 여행객이 되어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산에 올라 도깨비가 머무는 동굴을 들렀다가 땀이 나면 바닷물 속에 발을 담그고 쉬고 싶은 꿈을 꾸어 보았다.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한국의 섬들도 다채로운 매력을 가질수 있길 희망합니다.
마을을 가득 채운 작품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세토우치에 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것 같아요. 영감이 가득한 마을에 저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주말에 뒹굴 하다가 글을 읽으며 저도 따스한 햇살에 메기지마의 해안가를 걷고 팅거벨의공장을 자세히 살펴보는 상상을 하게됩니다 저도 꼭 가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