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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가자 ⑦ 안도 다다오가 펼친 예술의 세계

 

안도 다다오가 자신의 고향인 세토우치의 섬 나오시마에 지은 예술 건축물들을 살피고 노출콘트리트와 자연의 조화, 서양 미니멀리즘과 동양적 경험에 바탕을 둔 그의 예술과 세토우치의 관계를 말하다.


2024-12-19 고은정,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나오시마를 이끈 운명적 만남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거론하면서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을 든다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다. 특이한 인생역정과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런 그의 일생 중에서 나오시마는 개인 건축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안도의 일대기를 다룬 ‘미야케 리이치(三宅理一)의 책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에서 그의 일생을 21장으로 나누어 썼는데, 12번째 장이 ‘공해의 섬을 재생시키다: 나오시마에서의 실험’으로 책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나오시마에서 박물관과 오래된 집 프로젝트, 자연과 건축의 조화, 노출콘크리트 등에 대한 많은 실험은 그가 걸출한 업적을 남긴 대가로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위 책의 뒤표지에 있는 그의 사진에서 범상치 않은 인상과 고집스러움,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안도 다다오의 아마 40대 모습. 『안도 다다오, 건축에 살다』의 뒤표지. 안도 다다오가 40대일 때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여러 사진을 비교해 본 결과 나오시마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활동할 즈음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개성이 가장 잘 나타난 좋은 사진 같다. 제공_사람의책 출판사

안도는 어떻게 나오시마 재생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앞의 연재에서 설명한 것처럼 부친의 죽음으로 도쿄 생활을 마치고 고향 오카야마로 돌아온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세토나이카이와 섬 나오시마 등을 보면서 번잡한 도쿄 생활에 깨달은 무상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수도에서 활동하는 유명 건축가들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세토우치 고장 출신이면서 오사카에서 활동하고 있던 안도 다다오를 찾아냈다. 소이치로도 안도 못지않은 뚝심과 독특한 시각(특히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예술품 등을 통해)을 가져서 일본 사회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살던 두 사람의 결합이 오늘날 나오시마가 변신을 선도하게 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35년이 흐른 지금의 아트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민간 사업가 소이치로와 단단한 실력과 새롭고 독특한 감각을 가진 건축가의 만남으로 이뤄진 환상적인 궁합을 알아야 한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는 18개의 박물관, 갤러리, 설치미술을 총칭한다. 한국에도 그의 작품이 여럿 있다.


건축 영웅의 탄생


다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1995년에 수상했다. 건축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으로 사람과 건축 환경에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 건축가에게 수여된다. 혁신성, 훌륭한 건축적 사고, 건설기술에 대한 기여가 있었기에 수상이 가능했다. 프리츠커상 외에도 많은 건축상을 받았다.

세계 건축계 스타가 된 안도 다다오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건축가가 되기 전 권투선수였으며, 특이한 점은 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운동을 그만두고 건축을 시작한 그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집을 발견하고 깊이 매료되어 그를 만나러 갔지만 도착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때가 1965년이고, 그가 고작 스물네 살 때였다. 이후 러시아를 거쳐 유럽을 돌고 아프리카와 인도까지 본 후 일본에 돌아왔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을 베껴가며 독학으로 건축을 배워 나갔다. 영웅 탄생 서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행을 마친 다다오는 1969년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주택, 교회, 절을 많이 지었다. 비록 소규모 작품들이지만 세계적인 반향을 얻기에 충분했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 도서관에서 빛의 교회와 물의 절—잔잔한 물 가운데로 점점 들어가며 사라지는 스님 사진—을 본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오시마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일부러 아와지시마(淡路島)에 연못 아래에 있는 절 ‘혼푸쿠지 미즈미도(本福寺水御堂)’ 일명 ‘물의 절(water temple)’에도 갔었다. 또 같은 섬에 세상에서 제일 큰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인 ‘유메부타이(夢舞台)’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꿈에 무대’가 된다. ‘안도 다다오 월드’라고 할 만큼 대표적인 작품인 리조트인데, 건설 도중에 고베 대지진이 발생해 그 희생자들의 추모도 담았다고 한다. 다다오의 고향인 이 섬은 고베와도 가까운 세토나이카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시코쿠와 고베 쪽 양방향으로 방조제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물의 절은 건축물, 물, 주변 환경의 조화가 극적이다. 노출콘크리트의 간결한 디자인으로, 가운데 계단을 통해 물의 반사와 흐름을 점점 더 눈높이에서 보며 지하로 진입하게 된다. 내부 공간에도 자연광이 들어와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명상 공간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_고은정

섬의 숲과 세토나이카이 경관을 고려한 건축


안도 다다오 건축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첫째 ‘빛과 노출콘크리트 건축가’라 불릴 만큼 인공 재료인 콘크리트와 자연의 빛을 절묘하게 조화가 일어나도록 공간에 이용한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콘크리트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건축을 만들고 싶어 했다. 노출콘크리트는 구조체이면서 그 자체로 마감재가 되었다. 자신의 건축으로 가장 원초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훗날 원형 위에 다른 사람의 예술적 터치가 부가되어 완전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의 무명 시절 적은 예산으로 작품을 완성해야 했기에 마감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둘째 자연과의 조화이다. 물, 빛, 바람, 나무, 하늘 등은 그의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노출콘크리트가 차가운 질감을 주는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에서 따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자연의 요소들을 잘 활용해서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나오시마 아트 사이트 프로젝트를 ‘자연, 예술, 건축의 공존’이라는 콘셉트로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다다오의 이런 건축 철학이 자리 잡은 덕분이다.

셋째 유현준의 책 『인문건축』의 지적대로 동양과 서양의 결합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전통 건축의 공간 시퀀스와 서양 전통 건축의 기하학적 특성을 융합한 건축이다. 다다오의 건축은 서양의 현대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미니멀리즘을 보여 주지만,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중요시하는 것은 동양의 감성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과의 조화 역시 동양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의 절은 건축물, 물, 주변 환경의 조화가 극적이다. 노출콘크리트의 간결한 디자인으로, 가운데 계단을 통해 물의 반사와 흐름을 점점 더 눈높이에서 보며 지하로 진입하게 된다. 내부 공간에도 자연광이 들어와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명상공간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_고은정
꿈의 무대라는 뜻의 유메부타이는 효고현 아와지 섬에 위치한 문화 시설이다. 간사이 국제공항 등 오사카 지역을 메우기 위해 이곳에서 흙을 채취했고 파괴된 땅을 다시 자연과 공생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불필요한 모든 장식이 배제된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보여 준다. 안도 다다오의 다른 작품처럼, 주변 산과 바다 경관이 건물과 통합적으로 인지된다. 외부의 물이 흐르는 공간이 특징적인데 바닥을 하얀 조개껍데기로 포장해 압도적인 시각과 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_고은정

나오시마에서 만나는 안도 다다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에서 안도의 프로젝트는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베네세 하우스 오벌, 베네세 하우스 파크, 베네세 하우스 비치, 지추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안도 뮤지엄, 미나미데라(南寺, 이에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과 협업), 2022년 봄 개관한 ‘밸리 갤러이Valley Gallery’,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 타임 코리도Hiroshi Sugimoto Gallery: Time Corrider’ 가 있다. 현재 2025년 트리엔날레에 맞춰 개관할 다음 미술관이 공사 중이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숲'은 나오시마 건축의 주제어이다. 이곳 세토우치 출신의 두 사람인 후쿠다케 소이치로와 안도 다다오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요소이고 이 주제어가 모든 건축 작품에 배여 있다. 사진_제종길

좋은 건축, 좋은 디자인의 배경에는 창조적 디자이너 못지않게 똑같이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있다. 나오시마가 다시 살아난 데에는 베네세라는 자본과 안도 다다오라는 크리에이터, 두 축이 있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예술적 성과를 내는 데 너무나 중요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오시마뿐 아니라 12개의 섬이 다시 살아나려고 한다. 안도 다다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5년 후쿠다케 회장과 같이 나오시마에 갔을 때, 그는 ‘이곳을 세계 제일의 예술 섬으로 같이 만들자’라고 했다. 그때 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사람들이 나오시마의 변화를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환상적인 파트너십이 부러웠다. 최근 다다오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모두 안타까워했는데 장기 다섯 개를 들어내고도 다시 활동을 이어가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에 있는 '뮤지엄 산'의 한 곳이다. 높은 산 위에 지어진 미술관인데도 여러 곳에 물을 담아 놓았다. 이곳에서도 안도 다다오의 예술 세계에서 자연, 물, 빛이 핵심 주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_제아라실
이우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이우환 미술관도 일종의 지중 미술관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높은 벽 사이를 걸어 들어가는 동안 빛의 소중함과 구조물의 단순함을 통해 이우환의 예술 세계를 만나는 준비를 하게 된다. 사진_제종길





댓글 7개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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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15시간 전
Rated 5 out of 5 stars.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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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15시간 전
Rated 5 out of 5 stars.

좋은 건축, 좋은 디자인의 배경에는 창조적 디자이너 못지않게 똑같이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있다. 는 문장이 와닿는 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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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18시간 전
Rated 4 out of 5 stars.

안도 타다오 건축가 좋아하는 건축가라 글 잘 읽었습니가. 그런데 옥의 티네요. ’뮤지엄 산‘ 이 있는 곳이 경기도 원주시라니요.. 강원특별자치도 아닌가요? 정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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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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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중대한 결함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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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하루 전
Rated 5 out of 5 stars.

다다오의 물의 절 너무 멋진걸요. 자연을 담은 공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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