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격리 시설이었던 오시마에 세토우치 예술제 작품들이 그들의 외로움과 분노, 그리고 도피 욕구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2025-02-21 제종길, 이응철, 고은정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한 개의 섬이 문제였다
2022년 예술제에서 가장 큰 딜레마는 제한된 일정 내에서 12개 섬을 다 방문하고 그곳에 있는 주요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동쪽 섬들에서는 다카마쓰에서 가깝고 직접 배만 타도 갈 수 있는 편한 곳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섬이 문제였다. 오시마(大島)였다. 당시에는 직접 가는 배가 있었지만 시간대가 이른 아침이 아니어서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는데, 오기시마에 가면 하루에 두 번 가는 작은 배가 있음을 팸플릿에서 보았다. 두 시간 반을 머물다 되돌아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짜야 하고, 오기시마에서도 찬찬히 볼 여유가 생길지 좌불안석이었다. 이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일정을 하루를 더 연장해야 하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직항로가 줄어 항공 노선과 공항까지의 접근 방식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어서 불안했다.

여객선 요금이 무료?
이름 자체는 큰 섬, 대도여서 크고 웅장한 무엇이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지만, 오시마로 가는 방문객이 아주 적다는 점과 다카마쓰에서 들어가는 배는 무료라는 점에서 “왜지?” 궁금했었다. 오기지마에서 오시마까지 15분 거리에 있었다. 점심 시간대에만 들어가는 유료 선박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시마가 나병 환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있는 섬이라는 사실은 섬에 도착 후 도로 입구에서 주의 사항 등을 설명하는 아마 자원봉사자들과 다른 섬과는 완전히 다른 건물 외형 등 분위기를 통해 알았다. 출입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항 주변에 작지만 조용한 작은 모래 해안과 오래된 소나무가 우릴 반겨 주었지만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장소임을 알고 나서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섬에는 14개의 예술제 작품이 있었다.

국립요양소와 역사 유적지
섬은 메기지마와 오지기마의 동쪽으로 거의 등거리에 있었으며 두 섬보다는 작았다. 다카마쓰항으로부터는 메기지만보다는 멀고 오기지만보다는 조금 가까웠다. 섬의 크기는 약 0.62㎢이며, 모양은 군화처럼 생겼다. 본래 두 개의 섬이 있는데, 섬은 현재 센터 주변인 발목 부분의 모랫바닥으로 이어져 있었다. 짐작건대 수용시설인 국립요양소 ‘오시마 세이쇼엔(大島靑松園)’을 지으면서 두 섬을 연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0여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유적이 섬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를 학습하려는 학생들이 간혹 들린다. 다카마쓰의 ‘야지마(屋島)’에서 일어난 ‘겐페이 카츠센(源平合戰)’에서 히라(平) 세력이 겐씨에게 패해 도피한 섬으로 동료들을 묻었던 자리에는 소나무들이 자라 800년 넘게 유지하고 있어서 역사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한센병 환자가 격리되었던 곳에 예술제가 열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한센병 일명 나병에 걸린 환자들을 일반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추진했었다. 그 격리 장소 중 하나가 오시마였는데, 수용자가 많았던 1950년대 후반에는 700여명이 공동생활을 했다. 당시 간호 직원이 한 사람뿐이어서 치료를 전제로 한 돌봄이 애초에 불가능했다. 2022년 RSK 산요호소(山陽放送)에서 방영된 내용과 현재 생존한 거주자의 말에 의하면 생활환경은 너무나 열악함 그 자체였으며, 결혼한 부부가 2평 남짓한 그것도 개방된 공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생활환경이었다고 한다. 이 글은 예술제를 다루므로 환자들의 생활을 더 상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상상보다 훨씬 고통스런 생활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1996년 법에 따라 제재가 풀렸지만, 여전히 편견과 차별이 남아서 완치된 사람들조차도 고향을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입소자 평균 80세가 넘은 40여명과 직원들만 살고 있다. 이젠 수용시설도 낙후되었고 대부분 집들이 비어 있었다. 2010년 예술제가 진행되고 오시마도 예술제에 참여하는 섬이 되면서 일반인들의 방문이 손쉬워지고 외부와 소통의 길도 열렸다.
작품에 담긴 외로움, 분노, 간절함
섬의 남쪽 발바닥 지역의 언덕 아래에는 건물이 많으나 출입이 제한되었고, 발목 위쪽에 있는 사회교류센터를 지나,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일자로 늘어선 작품이 있는 곳(지도 참조)은 모두 오래된 연립주택이었다. 작품을 설치한다고 실내를 고치거나 개선하지도 않았다. 주택 내의 작품들을 보고 북쪽 언덕 위를 한 바퀴 돌고 내려와서 센터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했다. 센터에 전시된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품들에서 처절한 외로움과 분노 그리고 도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슴 아팠다. 작가들이 환자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작품에서 그때의 그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더 놀랐다. 독자들에게 보여 준 사진들은 그런 감정이 상대적으로 덜 느껴지게 골랐다. 그런데도 충격받을 수 있고, 어쩌면 곧바로 전율이 일어날지 모른다.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괴기스러움
예술제 보고서에서는 이동 동선보다는 작가별로 설명해 놓았는데 세 작가가 두 편 이상씩 전시했고 서로 공통점이 있었다. 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했는데 정형화하지 않았고 일본 특유의 괴기스러움을 지녔다. 그래서 오시마와 어울리는 작가들을 잘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먼저 ‘다시마 세이조(田島征三)’를 보자. 이 작가는 삽화가이고 그림책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 2009년 ‘대지의 예술제, 에치고 쯔마리 예술제’에 참여했고, 그곳에 ‘하치와 타시마 세이조 그림책과 나무 열매의 미술관(鉢&田島征三 絵本と木の実の美術館)’을 만들었다. 섬 중앙에 있는 사회교류센터를 지나 맨 먼저 만나는 작품이 ‘아오조라 수이조쿠칸(靑空水族館, Blue Sky Aquarium, os01)’인데 얼기설기 철봉에 상어와 문어가 다정스럽게 안고 있는 입구 간판이 작품을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라도 서로”라고 말하는 것 같아 왠지 짠했다. 수족관은 입소자들이 살던 연립주택에다 만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창살로 가로막혀 눈물을 흘리는 인어가 보였다. 물론 수족관에는 다른 전시물도 있었다.(사진 참고) 말은 없었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작품 os03인 ‘N상노진세이 오시마 나나주넨(Nさんの人生·大島七十年, N씨의 인생·오시마 칠십 년)’은 바라보기도 힘든 광경이었고, 벽에 적힌 글자도 한평생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설명했다. 예술이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일들, 한 많은 시간,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한센병 환자들을 추적한 작품
‘야마카와 후유키(山川冬樹)’는 작품 os06 ‘걸음걸이를 따라(步みきたりて)’와 os07 ‘카이쿄노 우타(海峽の歌, 해협의 노래)’의 작가다. 공연 예술가이자 현대미술작가이면서 멀티미디어를 잘 이용한다. 두 작품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잘 나타난다. 작가는 두 사람을 추적해 작품을 만들었다. 오시마에 거주하던 사람이 만주로 출정하고, 환자임이 밝혀져 억류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또 한 사람을 다룬 작품은 오시마에서 헤엄쳐 시코쿠 해안으로 도망친 환자의 긴 여정을 담았다.
도피를 소망하다
예술제의 오시마 작품군에 담긴 의미나, 보고서에 담긴 편집 구성으로 볼 때 대표작가는 ‘코노이케 토모코(鴻池朋子)’였다. 일본에서 왕성하게 현대미술을 하는 멀티미디어 작가이다. 대규모 설치 작업과 일본화 스타일의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예술제 출품 작품 os08(두 작품), os11, os12 등, 네 작품을 설치하면서 섬의 여러 공간을 활용했다. 사진 설명에도 언급했듯이 산책길 작품 os11의 제목은 ‘링반데룽(Ringwanderung)’인데 산행 중 길을 잃어 쳇바퀴를 도는 현상을 말한다. 설명 내용 중 스케치한 작품의 제목은 ‘토소 카이단(逃走階段, 도주 계단)’인데 이 제목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흥미로운 그림을 만날 것이다. 이곳에 있는 환자라면 누구나 도피를 꿈꾸었다. 원형 산책길을 걸으며 그 소망이 이뤄지길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이제 그 꿈이 이루어졌지만, 대다수가 사망하고 남은 사람도 고향에 갈 수가 없다.



예술제에서도 물리적 이동과 제도적 제약은 해소되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섬에 머물렀던 환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섬의 자연과 역사적 유적을 살펴보려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이를 맞이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준비되고 있다. 예술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시작하기 3년 전부터 그러니까 2007년부터 이 섬을 방문해 이곳 주민들과 대화했다. 주민들은 이 섬과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작품을 부탁하며 작품 전시를 수락했다고 한다. 2025년 예술제에서 어떤 새 작품들이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앞 연재에서 인용한 논문에 따르면 방문객 수는 다른 섬과 비교해 너무나 적다. 2010년에 나오시마 29만이 넘었고 이누지마는 8만이 넘었는데 이곳 방문객은 고작 5천여명에 불과했다. 단, 고무적인 것은 2019년에 이전 회차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점이다.
예술섬으로 승화한 부분은 참 신기하지만 슬픈 내막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으론 먹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