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토우치지방은 비가 적은 온난한 해양성 기후이고, 반농반어로 밀 재배가 유명하며, 연안습지를 매립한 중공업지대이다.
2024-11-21 제종길, 고은정, 이응철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内’자를 ‘우치’로도 읽고, ‘나이’로도 읽는다
재작년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이하 예술제)를 찾아가면서 ‘세토우치’라는 말이 도무지 와닿지 않아서 여행 내내 찜찜했다. 이번 11월 초에 네 번째 나오시마 여행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고, 예술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나처럼 아쉬움을 가지지 않게 하려고 세토우치라는 지방명과 그 사이에 있는 지중해인 세토나이카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싶었다. 우선 지방 이름인 세토우치 ‘瀬戸内’와 그 사이에 있는 바다 이름 세토나이카이 ‘瀬戸内海’부터 시작하자. 세토우치 지역을 아울러 일컫는 이름은 ‘세토우치 치오(瀬戸内地方)’다. 이 공부를 하면서 재미있어했던 것은 바다를 그냥 ‘세토우치카이’로 하던가 지방명을 ‘세토나이’로 왜 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서다. 물론 일본에서는 같은 문자를 그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발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자 뜻을 알고 있는 나로선 ‘안 내 内’자를 ‘uchi’로도 읽고, ‘nai’로도 읽는다는 것을 알고는 신기했지만, 엄청난 지식을 쌓은 것처럼 즐거웠다. 이젠 잘 기억하고, 적당히 이해하고 더 자세히 알려고 따지지 말고 그대로 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예술제에 ‘세토우치’라는 지방명을 사용했으니 이 지방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자.
세토우치는 아카시세토와 나루토세토 사이에 있는 바다의 연안 지방
‘세토瀬戸’는 폭이 좁은 수로, 즉 해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토우치는 ‘세토의 안쪽’이라 풀어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세토나이카이는 이곳의 두 해협—히로시마 현의 아카시세토(明石瀬戸)와 도쿠시마 현의 나루토세토(鳴門瀬戸)의 사이에 있는 바다를 말하며, 자연스럽게 세토우치는 그 바다의 연안 지방을 말한다. 그러니까 혼슈의 서남쪽, 시코쿠의 북쪽 그리고 규슈의 북동쪽 해안 지역이다. 여기에는 다섯 개—야마구치, 히로시마, 오카야마, 에히메, 가가와 현이 있는데 ‘정령지정도시(지방자치법에 의거 「인구 50만 명 이상으로 정령으로 지정하는 시」라고 규정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지정 상황을 보면 인구 100만 명 이상, 또는 가까운 장래에 80만 명 이상이 될 만한 도시가 지정되었다.)’인 히로시마 시(広島市, 인구 약 120만)와 오카야마 시(岡山市, 인구 약 72만)를 비롯한 아홉 개의 주요 시가 있다. 다섯 개의 현에 사는 인구는 약 832만 명이다. 지리적 범위는 일반적으로는 위의 다섯 개 현만 지칭하지만, 광의로는 두 세토를 벗어나 혼슈, 큐슈, 시코쿠로 둘러싸인 전체 바다와 인접한 모든 현 10개와 오사카 부를 다 포괄하여 쓰기도 한다. 그 밖의 다섯 개 현은 효고현, 오카야마현, 도쿠시마현, 오이타현, 후쿠오카현 등이다. 이 모든 지역을 다 포함하면 인구수는 약 3005만 명이나 된다. 이 수치는 전체 일본 인구의 1/4 정도이니 이 일대 면적이 전국의 12%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살기 좋은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온난하고 비가 적으며, 파도가 온화하다
혼슈의 최남단 지역을 ‘주고쿠(中国)’라 하는데 그 남쪽의 세 현은 세토우치지방에 속하고 다른 북쪽의 두 현—돗토리현(鳥取県)과 시네마현(島根県)은 우리나라의 동해와 연해 있다. 남쪽과 북쪽 현들 사이에는 높은 산지가 있어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주고 있다. 마찬가지고 시코쿠에서도 산지가 남북 지역 사이에 놓여 있어 여름철 계절풍을 차단한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온난하고 비가 적어 맑은 날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연간 약 1000㎜로 전국 평균의 절반 정도다. 바로 세토나이카이식 기후다. 눈도 일 년에 1∼2회 정도는 내리지만, 산간부를 제외하고는 쌓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니 파도도 온화하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 사이에는 때때로 온도 차가 생겨 국지적인 ‘해륙풍’이 부는데, 이 바람은 공기를 더 건조하게 한다.
반농반어, 작물 재배와 계단밭
세토우치 동쪽의 오카야마현과 가가와현은 상대적으로 더 건조한 지대이라서 이곳에는 건조한 환경에 강한 식물들이 더 많다. 가가와현의 쇼도시마(小豆島)에서는 올리브가 잘 자란다. 서쪽 지역인 히로시마현에서는 레몬이나 귤 등 과일의 재배가 잘되는데 독특한 해양성 기후로 레몬의 재배 최적지로 전국 제일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해안 지역이라서 어업이 활발하지만, 많은 연안 지역이나 섬에서는 ‘반농반어’하는 주민들이 많다.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한 것 같다. 농업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세토우치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반농반어’가 있는 것 같다. 연안 지역은 간척이나 매립으로 새로운 토지를 얻지만, 적지 않는 해수의 영향으로 벼농사보다는 밀이나 콩 등의 다른 작물을 재배한다. 작물 재배가 벼농사에 필적할 정도의 수익이 나면, 다른 지역에서 쌀을 수입했다고 한다. 또한 이모작도 어려운 지역에서는 고구마 등의 곡물을 만들기 위해 산지를 밭으로 개간했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밭은 산의 경사면을 따라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계단밭’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경관이 만들어졌다.
밀 재배와 염전이 받쳐 준, 최고의 ‘우동 문화’
가가와현에서 유명한 사누키 우동은 밀 농사를 중심으로 한 이모작 속에서 태어난 음식문화다. 광활한 평야는 없어도 다양한 형태의 농지와 서로 조금씩 다른 해안과 수백 개의 섬의 미소환경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은 이 지역만의 특별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 우동이다. 그 상황을 재현하자면 건조한 기후 환경과 토양 특성 등이 밀 재배에 적합하여 품질이 뛰어난 품종을 재배할 수 있었던 것과 더불어 우수한 소금을 생산한 세토우치 쥬슈(十州) 염전이 있었기에 최고의 ‘우동 문화’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토우치는 식재료의 보고인 것이다. 지금도 많은 포구마다 독특한 어패류를 비롯한 지역 요리를 제공하는 맛집들이 있다. 더군다나 해안 경관도 우수하고, 연중 관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니 일본 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수산물 요리 소개는 다음 연재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중화학공업이 중심인 임해 공업지대
기후도 좋고 바다도 거칠지 않은 환경은 사람 살기에 좋지만, 기업하거나 해안개발에도 적지이다. 세토우치에는 해안을 따라 제조업 단지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을 ‘세토우치 고우쿄치이끼(瀬戸内工業地域)’라 한다. 일본의 산업이 크게 발전할 때는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업이나 섬유 공업으로 특색이 있었으나 2차대전 후에는 수심이 얕은 바다의 매립과 간척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고, 대다수가 중화학과 기계 공업단지의 입지가 되었다. 세토우치 연안에는 한때 군함이나 전투기 등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기에 기계 공업이 발달했다. 1970년 무렵부터 중화학공업이 중심이 되어 임해 공업단지가 만들어졌다. 세토우치의 현들은 이런 공업 도시가 중심이 되어 발전했다. 일본의 임해 공업지대 중에서 전국 생산액으로 볼 때 약 30%를 차지할 정도였다.
연안습지를 매립해 시가지와 산업단지를 조성
해안 개발도 양면성이 있는 것이라 해안 습지는 사라지고 수질도 급격히 나빠졌다. 이 내용도 별도로 다루겠다. 네 번째 나오시마 방문에서 다카마쓰의 잘 알려진 사찰이 있는 관광지이자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두 가문 간에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야시마(屋島)를 찾았다. 이곳의 정상 전망대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주변은 수많은 공장이 빽빽이 들어선 산업단지였다. 과거에 연안습지를 매립해 개발한 것으로 보였다. 다카마쓰 고지도 여럿을 찾아보니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지도에는 다카마쓰항(야시마 서쪽에 위치)과 야시마 사이에는 여러 개의 하천이 모이는 하구이자 제법 큰 만이 있었다. 또 1923년에 제작된 ‘다카마쓰시 신지도(新地圖)’의 한쪽에 강조해 표시한 ‘야시마 고야바쿠로(屋島古戰場圖)’에는, 항 쪽으로는 시가지를 조성하기 위한 매립이 완성되었지만 야시마 근처에는 염전과 습지와 강의 하구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세토우치의 전 해안이 이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개발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술을 발생시킨 세토우치의 자연사회환경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어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