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는 세토내해의 작은 섬으로, 현대 미술관과 건축물로 유명하다. 천황의 명명으로 시작된 나오시마는 제련소 마을에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변화했다. 지역 주민들의 강한 의지와 아름다운 자연이 나오시마 예술제의 성공 비결이다.
2025-1-3 이응철, 제종길, 고은정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나오시마는 문화마을의 최고 학습 장소
나오시마(直島)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장을 찾다가 두 관광단체 – 재판 가이드 닷컴(japan_guide.com)과 일본 관광청(JNTO, Japan National Tourism Organization)에서 설명한 것을 찾아 소개한다. 먼저 전자인 민단 단체의 소개다. “나오시마는 세토내해에 있는 섬으로 현대 미술관, 건축물, 조각품으로 유명합니다. 가가와현에 속해 있는 이 섬은 지중해 분위기, 모래사장, 화창한 날씨와 여유로운 시골 분위기가 어우러져 일본의 대도시 지역에서 벗어난 편안한 휴양지입니다.” 그리고 후자인 정부 기관의 소개를 보자. “세토나이카이에 흩어져 있는 섬들 가운데 작은 섬 나오시마는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이 섬은 한때 제련소 마을로 번성했지만, 오늘날에는 현대 미술의 국제적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두 개가 나오시마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나오시마에 대한 것을 정리해서 쓰려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정글과 같이 살벌한 도시를 벗어나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곳인 데다가 현대 미술을 마음 놓고 감상할 수 있으니 방문객 처지에서 보면 가성비 최고의 관광지가 된다. 특히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문화 마을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최고의 학습 장소이다.
나오시마쵸는 무려 27개의 섬으로 구성
일본에서 선거로 지역 대표를 뽑는 가장 작은 행정 단위가 ‘쵸(町)’이다. 나오시마쵸(直島町)는 세토우치 내 여러 섬의 중심이 되어 예술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이 조는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가가와현 가가와군(香川郡)에 속한다. 오카야마현 타마노시(玉野市)에서 남쪽으로 불과 약 3km 거리인데, 가가와현의 최단 지역인 다카마츠시(高松市)에서는 북쪽으로 약 13km나 떨어져 있다. 나오시마쵸에는 섬이 나오시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려 27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 유인도는 나오시마, 무카에지마(向島), 에지마(家島), 우시가쿠비지마(牛ケ首島), 뵤부지마(屏風島)의 5개 섬이고, 나머지 22개 섬은 무인도이다.
지형적으로는, 해발 123.3m의 ‘지조야마(地蔵山)’를 최고봉으로, 북부와 남부에는 기복이 많은 산 풍경이 이어져 있으며, 산을 둘러싸듯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크고 작은 연못이 약 100여개가 있고 북부에 해키·사이노카미(ヘキ・才ノ神) 댐, 중앙부에 나오시마 댐이 있는데, 연못의 물은 농경용으로, 댐의 물은 주로 공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기후는 세토우치 기후에 속한다. 기온 차이가 완만하고 비교적 맑은 날이 많으며 연간 강우량은 약 1000㎜이다.
75대 천황 스토쿠조코가 '나오시마'라고 명명
옛날에는 나오시마를 카모메지마(加茂女島)·카모츠쿠시마(加茂津久島)·마치시마(真知島) 등으로 불렸지만, 황위 계승 문제로 1156년에 생긴 내란 ‘호겐노 난(保元の乱)’에 패해 ‘사누키(讃岐)’로 유배 중에 들렀던 75대 천황인 ‘스토쿠조코(崇徳上皇)’는 순진하고 소박한 섬 주민들을 보고 상으로 ‘나오시마’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대부터 나오시마 서쪽 해역의 있는 ‘혼지마(本島)’ 주변의 여러 섬인 ‘시와쿠쇼토(塩飽諸島)’ 도민과 함께, 수군으로서 활약한 역사가 있다. 17세기에서 19세기인 도쿠가와(徳川) 시대에는 ‘에도바쿠후(江戸幕府)’ 직할의 천황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번성했다. 1955년, 오카야마(岡山) 대학의 연구진에 의해 북쪽의 부속 섬인 ‘키헤에지마(喜兵衛島)’에서 고대 제염 토기가 발굴되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나오시마는, 메이지 원년(1868년) 1월 시코쿠 남쪽에 위치한 고치번(高知藩)에 편입되었으며, 같은 해 7월 구라시키현(倉敷県: 현재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에 속하게 되었고, 1872년 10월에는 마루가메현(丸亀県)이 되었으나, 같은 해 11월에 가가와현에 합병되었다. 그리고 1879년 12월 에히메현(愛媛県) 가가와군 나오시마였는데, 1888년 12월 에히메현에서 분리되어 다시 가가와현이 되었으며, 1889년 12월엔 시정촌 제도에 의해 ‘나오시마무라(直島村)’가 발족했다. 그리고 1954년 4월 1일 ‘쵸제(町制)’ 시행으로 나오시마쵸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순진하고 순박한 섬 주민들과는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섬의 행정 구역은 변화무쌍한 변화를 많이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65세 노인 인구 34%
나오시마쵸의 인구는 2024년 1월 현재 외국인을 포함 2945명인데 제련소가 가장 활발하게 가동되던 전성기인 1950년대에는 80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었다. 이후 한번도 증가한 적이 없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다만 예술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시작되던 2005년 이후에는 감소 폭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노인 인구의 비중이 증가해 바람직한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65년의 6.1%부터 1990년에는 16.4%로, 2015년에는 34.3%가 되었다. 현재에도 34%가 넘는다. 연령별 비중으로 볼 때 앞으로도 인구 감소 추세를 반전시킬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일부 자료에는 나오시마는 예술제의 영향으로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과는 다른 것 같다.
경제적 거리는 오카야마현에 가깝다
나오시마쵸는 가가와현에 속해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거리가 가까운 오카야마현에 의존하고 있다. 전력과 수도를 물론이고 생활이나 산업에 필요한 자재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도 대부분 타마노시의 학교로 통학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수산업인데 방어, 도미, 김 등의 양식어업이 번성하는데 ‘나오시마 방어’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나오시마의 북쪽 V형 내만의 해안에는 산업단지가 있다. 이곳에는 금, 은, 구리 등을 생산하는 ㈜미츠미시 머티리얼(三菱マテリアル株式会社)의 나오시마 제련소와 관련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지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오시마 제련소는 1896년에 운영을 개시하였으니 1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양소금
나오시마쵸는 옛날 에도시대(1603~1868)에는 천황이 다스리는 지역인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해운업이나 제염업의 섬으로서 번창했지만, 메이지(1868~1912) 시대에는 농업·어업이 부진하여, 섬의 재정이 파탄난 적도 있었다. 제염업은 2, 3세기부터 시작해, 30여년 전까지 계속되어 온 나오시마의 주요 산업의 하나였다. 나오시마에서 만들어지는 「SOLASHIO: 태양소금」는 해수를 태양열만으로 소금을 만들고 있다. 수입 소금에 의지하지 않고 그와 같은 제염법으로 만드는 지역은 일본에서도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그러한 소금과 김을 활용한 기념품이 미야우라항에 있는 ‘우미노에키(海の駅) 나오시마’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련소가 있는 민둥산의 섬에서 에코 아일랜드로
재정 상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오시마무라’는 1916년 ‘미츠비시 광업(현재의 ㈜미츠비시 머티리얼)’의 설립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렸다. 규모가 커진 제련소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는 오염을 일으키고 산을 황폐화한다는 것을 알고도 내린 결정이었다. 회사가 커지자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이주해 왔고, 회사는 나오시마의 경제 성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구리 제련 산업은 부정적인 유산도 많이 초래하였다. 유독 가스를 배출하여 심각한 피해를 유발했다. 그 영향으로 나오시마 북부 내만과 그 전면의 섬 ‘데라지마(寺島)’의 나무들이 시들어 죽어서 한때 '제철소가 있는 민둥산의 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에코 아일랜드(Eco- island) 나오시마 플랜'이라는 이 새로운 도전으로, 산업폐기물 중간처리 시설에서 나오는 비산재를 처리해 금속 등의 자원으로 재생시켜 새로운 소득을 얻어 내고 있다. 그 결과 예술의 섬 프로젝트와 에코 아일랜드 프로젝트가 시행된 후 나오시마의 1인당 평균소득은 2015년에 가가와현 내 35개 지자체 중 1위로 올라섰다.
예술제의 중심 섬이 된 이유
나오시마는 몇 가지 이유로 예술제의 중심 섬이 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후원자의 활동 본거지인 오카야마시와 가깝고, 오카야마현의 우노항에서 가장 가까운 예술제 섬이다. 둘째, 평탄한 지형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섬의 남쪽에 존재했고, 남쪽에서는 북쪽의 산업단지가 보이지 않는다. 섬의 크기도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셋째, 지역 리더와 주민들이 섬을 재생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오시마에는 환경적, 문화적, 사회적 서사가 있다. 다분히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이 관점을 유지하고 확인하면서 글을 써나가려고 한다.
국내에는 나오시마처럼 예술을 테마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적합한 지역이 어디일지 생각해봄과 동시에 다음 글이 더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