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 제종길, 고은정, 이응철
제종길 13대 안산시장, 17대 국회의원, 해양학 박사
이응철 전 일본 국립사가대학교 교수, 농학박사·보건학 박사
고은정 전 수원시 디자인기획관, 도시공학박사
12개 섬이 있음을 다 알면서도
일본의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이하 예술제)를 보러 가자고 하면 나오시마로 여행 가는 것으로 안다. 간혹 예술제를 알지 못하고 나오시마가 여행지로 좋은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방문하기도 한다. 예술제를 잘 모르는 경우다. 그러다 보니 예술제를 보는 것과 나오시마의 마을과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안내문이나 예술제 홈페이지만 봐도 12개 섬에서 펼쳐지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방문객들은 속으로는 다 알면서 나오시마를 제외한 다른 섬을 애써 무시한다. 우리가 연재 처음에서 세토나이카이와 세토우치 지방부터 차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도왔던 것도 전체 섬들을 바라다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말하고 싶어서다. 더 봐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오시마와 한두 개의 섬을 더 찾는데, 같이 아트 프로젝트가 있었던 두 개 섬—이누지마와 테시마를 같이 보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동수단이 선박뿐이라서 한번 여행으로 전체 섬을 다 가보기는 어려움이 있다.
섬들은 서로 다르다
결국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예술제를 바라다보면 워낙 명성을 얻은 전시물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데 이때 ‘다른 섬도 그러려니’ 하거나 ‘턱없이 부족하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오시마와 한두 개 섬만 보면 되지’라는 생각에 이르면 나머지 섬들은 ‘기타’가 되어버린다. 이 지점에서 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섬은 나름대로 독립적 특성을 가지고 해양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해 왔다. 바로 옆의 섬이라도 바다 환경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마련이고 또 섬의 크기와 전체 면적에서 평탄 지역의 비중에 따라 생활 여건이 달라진다. 육지와 거리도 차이가 있어서 각 섬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는다. 보기와는 달리 육지와 격리된 섬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유사성이 낮아 문화 정체성과 산업 기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세토나이카이의 다른 유인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한 섬이 전체 섬 12개를 대표할 수 없다. 우리는 나오시마의 비중은 인정하더라도 각 섬이 갖는 중요성도 글에 부각하려고 한다. 어쩌면 주민들도 예술제를 통해 자신들의 섬이 다른 섬과는 다르고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오시마의 첫인상, 깨끗함
이번 연재부터는 각 섬에 설치된 작품들을 소개하고 해당 섬과의 연계성을 찾아 알려주고 싶다. 물론 우리가 바라본 시각으로 말이다. 각 섬에서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니므로 실제로 감상했거나 사진 영상자료를 확보해 둔 것을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앞의 연재에서 소개된 작품은 다시 언급하지 않으며, 앞의 연재에서 ‘지추미술관’, ‘이우환미술관’ 그리고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에서 간략하게 다뤘으므로 연재 끝에 별도로 설명 추가하고자 한다.
나오시마의 첫인상은 깨끗함이었다. 오염에서 벗어난 하늘과 바다의 맑고 청명함이 한몫한 것이지만, 확인하지 않고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촉이다. 이런 인상은 네 번이나 방문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항에서는 다들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에 주목하는데 호박 앞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보다는 빨리 동네 골목에 뛰어들고 싶었다. 다 아는 것처럼 미야노우라항이 섬의 출입구이다. 배 위에서 내려다보면 별 치장을 하지 않은 상점이 다 깔끔하고 예뻐 보였다.
나오시마에는 세 지역—미야노우라 지구, 혼무라 지구, 베네세하우스 뮤지엄 주변에 작품들이 전시 또는 설치되었다. 2022년 현재 시점으로 서술하겠다. 선박이 출입하는 미야노우라항 주변에는 작품이 7개가 있다. 이곳도 마을이 작은 것은 아니나 중심지는 혼마루이다. 항구 전면 도로 건너 건물 뒤편 골목에 들어서면 요란하게 장식된 건물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오오타케 신로(大竹伸朗)’의 ‘나오시마 츄유(直島錢湯)’ “I♥湯”(na05B)가 있다. ‘湯(탕)’은 목욕탕이나 일본어 발음 ‘유’가 되니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것으로 읽히길 기대하고 붙인 이름이지만 “나는 목욕을 좋아한다”로 봐야 한다. 여러 가지 폐기물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촌스러움과 춘화 요소를 섞어 해학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즉 온몸을 다 보여야 할 곳에서조차 가리려는 현대인을 묘사한 것은 아닐까?
목욕탕에서 왼쪽으로 나가면 사각형 건물이 서 있는데 전면이 온통 사각형 창으로 되어있어 어찌 보면 관광서 같은 느낌을 준다. ‘시타미치 모토유키(下道基行)’의 작품인 ‘세토우치 자료관’(na06B)인데 공식 작품 이름은 ‘미야노우라 갤러리 6’이다. 2013년 여름에 오픈하였다. 섬 주민들이 즐겨 찾던 ‘파칭코 999’와 인근 공원을 방문객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침 작가가 있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는데 세토우치에 관한 희귀한 자료들도 있어서 작품을 기준으로 보면 시간을 제일 많이 소모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삼부이치 히로시(三分一博志)’의 ‘The Naoshima Plan, 「JU(住)」’(na23B)를 감명 깊게 보았다. 일본의 전형적인 전통 양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티끌 하나 없이 정밀하고 깔끔하게 지어진 목조 건축에 물, 바람, 빛 등을 움직이는 소재를 병합한 연립주택을 추구한 작품이라고 한다. 혼무라에도 이 작가의 유사한 작품이 있다.
품위 있는 마을, 혼무라
혼무라는 마을에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수수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마을이다. 2015년 처음 방문했을 때 일본의 섬이 이런 정도의 품격을 가지고 있다니 하며 속으로 놀랐었다. 어촌인데 그 기원은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전통 가옥들의 특징은 200년 이상 된 집으로 살짝 태운 삼나무 판자벽(야키히타, 焼板)과 전통 기와에 석고 마무리로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구석구석에 오래된 문화유산처럼 잘 보전되어 있으며 중간중간 현대적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술가들이 집을 개선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을이 정비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1998년에 미야지마 타츠오(宮島達男)의 작품인 ‘카도야(角屋)’(na11B)로 시작된 것이 7곳에 추진되었다. 바로 그 유명한 '이에(家 집) 프로젝트'다.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유리블록 계단을 올라 천상의 경험을 갖게 하는 독특한 ‘고오진자(護王神社)’(na12B)가 있다. 그리고 미국 작가 제임스 트렐(James Turrell)의 작품 ‘달의 이면(Backside of the Moon)’이 있는 건물 ‘미나미데라(南社)’(na13B)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섬의 여러 곳에 건축물을 만든 나오시마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안도는 혼무라 지역에 자신만의 작은 박물관인 ‘안도 뮤지엄(Ando Museum)’을 만들었다. 자신이 구축한 대표적인 기법인 노출콘크리트를 100년 된 집에 결합했다. 미나미데라 옆 골목을 따라 끝까지 가면 인기 기념품과 다양한 정보를 구하고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게가 있다. 옛 농업협동조합 슈퍼마켓이었던 곳인데 허술해 보이나 이름은 거창하다. ‘혼무라 라운지 앤 아카이브(Honmura Lounge & Archive)’
“골목 안 작은 디자인이 더 재미있어요.”
두 마을에서 온종일 편하게 걸고 싶어질 정도로 편안하고 골목들이 아늑했다. 골목 이곳저곳에 보이는 소소한 디자인이 작품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지난해 방문 시에 가이드가 “골목 안 작은 디자인이 더 재미있어요.” 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것이다. 분명 의도된 것은 아닐 테지만 섬에서 예술 이벤트를 보고 각종 작품을 보면서 주민들의 창의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차현호 건축가는 책 『나오시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2017)에서 골목과 옛집에서 평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전용성 등 3인이 쓰고 그린 책 『나오시마 삼인삼색』(2010)에서 “정작 ‘이에 프로젝트’보다 동네를 구경하는 게 훨씬 더 즐겁다.”라고 했다. 또 한 책, 『나오시마 디자인 여행』(2011)에서 저자인 정희정 디자인학 박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마을은 청결하고 정돈되어 있었고, 조그마한 간판들은 작은 목소리로 손짓했다.”라고 썼다. 고민이 된다. 도시와 마을을 재생할 때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다시 가보고싶은 곳이네요. 올해 트리엔날레 기회가 된다면 방문하고 싶네요.
혼무라에 대해 소소하고 품위있다는 표현이 참신하면서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말끔히 정돈되어있으면서도 정감이 가는게 일본 소도시들의 매력이자 특징같아요.
와우!! 깔끔하고 담백하게 설명해주셔서 제가 직접 방문해서 보는것처럼 생생합니다. 감사합니다. 균형잡힌 시각이 느껴집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있습니다~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