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던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왜 한국 정부는 동의하고, 왜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하위 파트너를 두고 한일은 생각이 다르다
2024-11-28 송병권
송병권 상지대학교 교수는 2011년 일본 토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7년간 편사연구사로 일했고, 다음 7년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사연구소,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2020년에 상지대학교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주의, 지정학, 경제사, 정치사상, 국제관계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2021),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 전시기에 대한 조명』(공편저, 2014), 『근대 한국의 소수와 외부, 정치성의 역사』(공저, 2017)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공역, 2020),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2011) 등이 있다.
윤석열 정부, ‘조선인 강제노역’을 드러낸다는 조건하에 동의?
올해 첫눈임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교통체증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이 눈이 모든 분들에게 서설이기를. 일본에서도 눈이 많은 오는 동네는 역시 동해를 바라보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일본 니가타시는 눈이 많이 내려 스키장은 물론 눈 녹은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맑은 물에서 자란 맛난 쌀과 그 쌀로 빚은 맛난 술로 유명하다. 이 니가타시에서 동해 쪽을 바라보면 따오기로 유명했던 사도섬이 있다. 최근에 우리에게는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었던 사도광산이 그곳에 있다. 이 광산은 일본에서도 유명했던 금광이었다. 우리에게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서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제대로 받지 못한 미불 임금마저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일본 국고로 환수된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그동안 등재에 반대해 왔으나, 일본이 사도광산의 역사를 전시할 때,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도 드러낸다는 조건하에서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해 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 강제노역’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성’을 드러낼 강제동원 혹은 강제노역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세계유산 등재가 이뤄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는 것으로 항의했는데, 그 표면적인 이유 중 하나로 사도광산 추모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일본 참의원 의원이자 외무성 정무관인 이쿠이나 아키코 씨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라는 점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 11월 26일자 일본 산케이신문에서는 한국의 반일병이 지긋지긋하다는 논설까지 실으며,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참의원 의원이 된 이후에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았으므로, 한국 정부가 항의한 야스쿠니 참배에 관련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참의원 당선 이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는 외무성 정무관의 진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는 마치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법리 논쟁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히려 산케이신문의 논조는 자국 정부 관리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들이 잠든 야스쿠니 참배를 자제했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뒤통수? 한국 정부의 양해가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본이 뒤통수를 친 듯한 인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7월 28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국과 일본 양 정부가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와 관련하여 현지 전시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의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강제노동’ 기재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양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일이 이렇게 될 것임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마음’이 중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국 정부는 이런 동의를 해준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한국의 이번 정부에서 내놓은 여러 이야기들을 반추해 본다. 한국 정부는 절반을 따른 잔을 일본 정부에 내놓았고, 이를 일본 정부가 마저 채울 것이라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한국 정부의 요직에 있는 한 관료는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까지 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과거사에 얽매여 현재를 괴롭히지 말자는 이야기를 일본 측에 내놓기도 했더랬다. 어째서 이렇게 한국 정부는 ‘일본의 마음’을 중히 여기면서, 빈 잔에 절반의 물을 따라 놓았던 것일까? 이것을 햇볕정책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었다. 현재는 되돌이표가 된 듯도 하지만 일정 정도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햇볕정책은 상대방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면서 추진해야 할 사항이다. 현 정부도 같은 논리구조를 가지고 일본을 대하며 손을 내밀었던 것일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보수주의의 논리는 택도 없는 대상에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바로 현 정부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과 일본 간 ‘동맹’ 수준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
아마도 한국 정부는 두 가지를 기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일본의 성의이다. 한국이 과거사에 대해 유화적 손길을 보내면 이에 화답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한국에 화답하도록 미국이 우회적으로 압박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 기저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집착에 더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일정 정도의 대응이 필요했다는 인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속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연결할 ‘한일동맹’이 결성되어야 할 것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해야 아시아태평양, 나아가 인도태평양 전략이 완성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동맹’ 수준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에게 한국과 동급으로 취급받기 싫어해
지역 단위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볼 때, 일본은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즉, 역외 패권국인 미국과 함께 지역 내에서 자신의 경제력에 부응하는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해야 할 자국 내 명분도 필요하다. 일본으로서는 미국에게 한국과 동급으로 취급받으면 곤란한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동북아시아 지역 내에서 하위 파트너는 일본 자신이 해야 한다는 권력 욕망 속에서, 한국의 도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하위 파트너로서의 권력 욕망 정도로는 일본이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거사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더 필요한 이유이다. 절반의 잔을 채우는 것은 물론, 새로운 잔에 맛난 니가타 술을 가득 채워 한국에 대접한다면 더욱 좋겠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의 과거사 해결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한미일 ‘동맹’을 완성하는 첩경일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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