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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권의 동아시아 종과 횡 | 왜색문화를 아십니까?

 

왜색문화를 막던 시절은 지났고, 해외의 한류가 다시 유입되는 복수국적자들의 한류가 열렸음을 말한다

2024-11-14 송병권


송병권 상지대학교 교수는 2011년 일본 토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7년간 편사연구사로 일했고, 다음 7년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사연구소,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2020년에 상지대학교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주의, 지정학, 경제사, 정치사상, 국제관계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2021),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 전시기에 대한 조명』(공편저, 2014), 『근대 한국의 소수와 외부, 정치성의 역사』(공저, 2017)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공역, 2020),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2011) 등이 있다.


 

"아, 와타시노 코이와~"


저녁을 마치고 연구실로 되돌아오던 어스름한 저녁, 학교 정문 앞 어느 카페에서 익숙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와타시노 코이와~”로 시작하던 그 노래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였다. 일본 유학 시절 어느 선배에게서 들은 우스개 소리에 따르면, 마츠다 세이코는 자동차 제조회사인 마츠다와 시계 제조회사인 세이코라는 기업 이름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1980년대 초반의 J-Pop 스타였다. 그날 저녁 들었던 ‘푸른 산호초’가 마츠다 세이코가 불렀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요새 대세 가수라는 하니라는 K-Pop 스타가 불렀던 것인지는 그 카페에 들어가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그때 나는 어떤 양가적 감정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일본어 ‘선율’ 속에서 나는 일본 유학시절의 고단했던 향수와 함께 우리나라 대학가 한복판에서 당연한 듯 퍼져나가는 그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이 그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옛날 사람이다. 만약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새삼스레 알려 준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이쯤에서 이런 옛날 물음을 던져보려 한다. “왜색문화를 아십니까?”


50여 년간 우리 용어에 일본 문화는 내재화 과정을 거쳤다


개항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신도 모르게 근대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여 왔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합하면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일본 문화는 우리 것이 아닌 즉, 눈에 보이는 외국 혹은 외래문화로서 인식되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일본 문화는 우리가 새로 수립한 국가의 권력에 의해 규제되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소싯적에 부른 ‘동백아가씨’가 왜색가요라고 금지곡이 되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전면 개방하기까지 50여 년간 일본 문화는 표면적인 규제 속에서도 우리 사회 각층에서 기술용어와 전문용어로서 내재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외부에서 왔던 '원본'을 외면하고 단절했던 시절


요새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보고 있는 ‘정년이’라는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주연배우를 ‘니마이’로, 그리고 상대 악역을 ‘가다끼’라고 친절하게 자막까지 넣어서 알려 주는 것을 보면서, 판소리가 중심을 잡고 연극을 이끌어 가는 근대적 전통 예술 장르에서 ‘일본어’가 내재화되어 업계의 전문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성국극은 일본의 타카라즈카 가극단과 그 형식이 판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한편, 짐짓 학문 높으신 분들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1950년대 한국의 법전 정비 과정을 살펴보면, 국가 수립과 함께 제정된 헌법을 제외한 각종 법률이 1960년대에 온전히 우리 것이 되기 전까지 일본 법전과 그에 대한 일본 법학자의 해석과 해설의 권위에 기대어 그 ‘학문’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법전을 뒤적이거나 법률학 용어사전을 펼쳐 보면 여전히 너무 어려운 용어가 많이도 나온다. 이것은 우리가 배움이 짧아 무식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법률용어가 여전히 일본어 한자를 우리 한자 발음으로 바꾸었을 뿐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공부용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고 다시 한국의 법률용어를 보고 느꼈던 그 알기 쉬움이란 거의 경이롭기까지 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낯선 문화를 독점적으로 향유하며 성장한 그룹이 의도적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그 원본의 전거를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함으로써, 일시적 쇄국 상태에 놓인 내부의 사회에서 막강한 문화적 권위를 확보하게 됨을 목도한 순간이었다.

1914년 타카라즈카 가극단의 제1회 공연인 가극 <돈부라코>의 한 장면. 사진_위키커먼즈

외래문화로부터 우리 말글 보호에 집착하던 지난날


일본의 압도적 문화권력이 작용했던 식민지 시절을 이제 다 겪어 내고도 이제 우리가 스스로 일구어 내야 할 그 시간에 어째서 우리는 이런 식민지성을 아직도 벗어내지 못했을까 한숨을 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말 맞춤법과 우리말 사전에 등재될 말에 대한 국가 권력이 규제하는 규범적인 국어순화에 대한, 지나치다고 비판을 들을 정도의, 집착도 우리 말글 생활을 외래문화에서 ‘보호’하려는 지난날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전통문화는 외부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해 풍부하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의도는 이런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말처럼, 우리 문화를 잘 가꾸어가는 것은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것은 언제부터 우리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강릉단오제, 성균관 석전제는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2005년 강릉단오제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을 때, 중국에서는 자신의 전통문화를 훔쳤다고 이의를 제기했던 에피소드도 있었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공자를 모신 공묘에서의 제사 문화가 파괴된 후, 이를 복원하기 위해 성균관 석전제를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다. 결국에 전통문화는 그 민족문화의 시원적 탄생과 함께 형성된 것이 아니라 외부 문화와 긴 시간 동안 의도적이었든, 때로는 어쩔 수 없었든, 혹은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였든, 이를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하며 풍부하게 만들어 왔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 상징적인 장소를 하나 들 수 있다. 우리는 ‘짜장면’이란 중국 음식과 ‘우동’이라는 일본 음식을, 기본 반찬으로 ‘단무지’와 ‘김치’와 함께 ‘중국집’에서 동시에 먹고 있는데, ‘짜장면’은 더 이상 중국의 그 ‘자장멘’이 아니고, ‘우동’은 일본의 그것과 사뭇 다르며, ‘단무지’도 일본의 ‘타쿠앙’과는 상당히 다르다. 심지어 그것들을 파는 ‘중국집’과 같은 식당은 정작 중국에서는 ‘한국’ 식당에 속한다.


2022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있었던 해외문화홍보원(KOCIS)의 한국문화 큰잔치(K-WAVE FESTIVAL) 수상식. 사진_코시스 김순주, www.flickr.com/photos/koreanet/52572122912/

다른 민족이 한류를 소비해서 새롭게 생산한 문화를, 우리가 만날 때


문화는 생산자의 것인가? 소비자의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결국 문화라는 것은 그것을 누가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화를 소비할 때, 자신의 전통문화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문화의 원본이 가진 외부성을 인지하는 데서, 자신들의 문화로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문화를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민족들이 소비하는 한류의 시대에 들어온 것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제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민족들이 한류 문화를 자신의 문화로 생산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형성된 그 새로운 문화를 우리가 다시 받아들여 다시 재구성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푸른 산호초’를 일본어로 멋들어지게 불러 일본인들의 지난 향수를 자극하며 대히트를 친 우리의 K-Pop 스타 하니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 스스로도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는 베트남과 오스트레일리아 복수국적자라는 것이 우리 문화인 한류가 가진 새로운 모습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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