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권의 동아시아 종과 횡 | 한반도의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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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03 송병권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패권 경쟁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한반도를 '칼날', '교두보', '각축장', '완충지대', '밴드왜건'으로 인식했던 역사 사례를 살핀다. 한반도와 그 거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벨기에, 스위스와 같은 강대국 간의 "협상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본다.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처럼 다자간 협의체를 많이 유치하여 동아시아 평화와 공존을 논의 하는 장소로 한반도의 지정학을 모색한다.

송병권 상지대학교 교수는 2011년 일본 토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7년간 편사연구사로 일했고, 다음 7년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사연구소,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2020년에 상지대학교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주의, 지정학, 경제사, 정치사상, 국제관계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2021),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 전시기에 대한 조명』(공편저, 2014), 『근대 한국의 소수와 외부, 정치성의 역사』(공저, 2017)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공역, 2020),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2011) 등이 있다.
한반도 지정학적 표현, 토끼 모양 또는 호랑이 모양
한반도의 형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익숙한 이미지는 토끼와 호랑이일 것이다. 1908년에 발간된 『소년』이란 잡지 창간호에는 ‘대한의 외위형체(外圍形體)’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반도의 형상으로 토끼와 호랑이 형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이 지리학자인 코토 분지로(小藤文次郎)에 따르면, 한반도는 그 형상이 마치 네 발을 모으고 일어서 있는 토끼가 중국 대륙을 향해 뛰어가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남선은 한반도를 맹호가 발을 들고 헐떡거리면서 동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나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 묘사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의 진취적, 팽창적 소년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아울러 왕성한 원기를 드러내는 것이 좋다면서 최남선의 도안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지도의 외곽선 형상으로 유약한 토끼보다 용맹한 호랑이가 더 좋다고 한 들, 그저 지도의 모양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한반도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주 초보적인 것이지만 땅과 거기에 발붙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사실은 관련되어 있다는 지정학적 사고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수세적 상황일 때, '칼날'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표현들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먼저, 일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에 대한 인상은 대륙에서 일본을 겨냥한 칼날(dagger)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대륙세력이 한반도를 굴복시키면 이제 한반도는 일본을 향한 침략의 칼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의 동맹국이었던 왜는 군대를 보내 원조하였으나, 결국 백제가 멸망하였고, 이제 왜국은 침략에 대비해 큐슈 북부에 미즈키(水城)를 건설했던 이야기나, 오랫동안 몽고의 침략에 저항했던 고려의 항복 이후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침략할 때 한반도가 중요한 칼날의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소환된다. 한반도가 칼날의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수세적 상황에 있던 일본에게는 중요한 지정학적 고려 사항이 된다.
일본이 공세적 상황일 때, '교두보'
그렇다면 일본이 공세적인 상황이라면, 한반도는 이제 칼날이 아니라 교두보(bridgehead)로서 지정학적으로 자리매김된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에게 길을 내어 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조선을 교두보로 고려했던 지정학적 인식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실제 근대 일본이 걸었던 길은 결국 한반도를 교두보로 만주로, 그리고 중국으로 침략을 확대해 갔던 역사적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
사실 칼날이냐, 교두보냐 하는 이야기는 결국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arena of competition)으로서 한반도를 사고한다는 것이고, 한반도에 관련된 많은 지정학적 언설들은 결국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낀 고달픈 인생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지정학자 마한(Alfred Mahan)이 북위 30도와 40도 사이의 평행선 사이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패권 경쟁의 대상이 되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으로 파악한 것을 그대로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문제 제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대륙세력 혹은 해양세력에게 한반도가 칼날이냐 교두보냐, 그리고 각축장이냐 이야기할 때, 한반도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완충지대'
칼날이나 교두보, 그리고 각축장이란 해석이 아닌, 즉 한반도와 그 거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지정학적 사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먼저 지정학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으로 완충지대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만드는 방안이다. 하지만 완충지대의 설정 과정에서 한반도는 분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 시기에도, 러일전쟁 시기에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완충지대로서 분단의 대상으로 거론되었던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분단의 완충지대는 한반도와 그 거주민들에게 전혀 행복한 조건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는 '중립의 완충지대'
이와 관련해서 유길준은 중립국론을 제기했는데, 이는 한반도에 중립의 완충지대를 상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립이란 대립하는 양대 세력 어디에도 더 많은 원조나 지원을 하지 않는 것임과 동시에, 대립하는 양자를 모두 동등하게 원조하거나, 원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텐데, 이에 대해서는 중립을 자처하는 나라의 외교적, 군사적 실력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러일전쟁 시기 조선에서 중립을 표명했으나, 중립을 유지할 실력이 없는 국가는 중립을 주장할 수 없다며, 결국 일본에 끌려 들어갔던 과거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강한 쪽에 편승한 '밴드왜건'
다른 방법으로는 밴드왜건(bandwagon)의 방식이다. 대륙세력이든 해양세력이든 강한 한쪽에 편승하여, 약간의 굴욕을 감수하겠지만 패권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고종의 정신 없었던 친청, 친미, 친러, 친일의 외교정책은 이런 밴드왜건의 방식과 대단히 유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냉전 이후 한국이 해양세력 미국과의 한미동맹 속에서 대륙세력의 침략 가능성을 억제했던 것을 들 수 있겠지만, 이미 한반도는 두 개로 쪼개져 하나는 대륙세력에, 다른 하나는 해양세력에 밴드왜건한 상태라서 별 의미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한반도는 '패권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공간'
그렇다면,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패권 경쟁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한반도를 패권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강대국 간 협상을 위한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을 어떨까? 유럽연합을 포함한 다양한 다국간 협의체의 사무국들을 보유하고 있는 벨기에와 스위스의 경우는 상정해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가여서 패권경쟁의 객체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런 다국간 협의체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패권경쟁의 객체가 아니라 협상의 공간으로서 트랜스내셔널한 공간으로서 지정학적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서울에 자리 잡은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이 그것이다. 이런 다자간 협의체를 다수 유치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경쟁이 아닌 평화와 공존을 논의하는 장소로서 한반도가 자리매김되기를 기원하면서, 동아시아의 종과 횡 이야기를 맺어볼까 한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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