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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 송은영 | 식물의 라이프사이클에서 발견하는 '삶'


황희정 기자, 김진아 사진기자 2024-06-06


송은영 작가는 식물세밀화 화가다. 식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그림과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 2016년 영국 SBA 보태니컬아트 3개 부문 수상, 2017년 영국 SBA 보태니컬아트 스트라스모어상 수상, 2019년 영국 SBA 보태니컬아트 CBM을 수상했다. SBA(The Society of Botanical Artists)의 한국인 최초 정회원이며, SBA 펠로우로 활동 중이다. 저서 『식물이라는 세계』(2024), 『식물세밀화가가 사랑하는 꽃 컬러링북』(2021), 『매거진 G: 2호』(공저, 2021), 『기초 보태니컬 아트』(2019)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보태니컬 아트 대백과』(2023)가 있다. 현재 보태니컬 아티스트 ‘미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청년의 정신으로 살고 싶어

 

학부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교육학을 공부했다. 좌충우돌이 많았다. 그림은 33살에 시작했다. 그때 그냥 취미로 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20대에 연구소 생활하면서도 항상 고민했었다. 뭔가 풀리지 않고, 뭔가 이렇게 끓어오르는 게 없는 삶에 대해, 그래서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하면 행복한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굉장히 많이 물었다. 지금도 내가 가진 생각 중 가장 명확한 건, 육신의 나이는 들어도 정신의 나이는 청년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림이라면 그렇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그리기 초반 6년은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미용실도 안 갔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미친 듯이 해야 했다. 그렇게 식물세밀화를 그린 지 13년이 지났다.



식민지에서 가져온 식물의 기록, 식물세밀화


그림: <맨드라미>, 종이에 색연필, 54.8cm x 74.8cm, 그리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제공: 송은영 작가

식물세밀화의 전통이 유쾌하지는 않다. 식물세밀화는 식민지로부터 온갖 진귀한 식물, 동물들을 가져와 기록으로 남기면서 시작되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를 통해 대제국을 꾸리던 대항해 시기였다. 마리 앙뚜아네트가 살았던 시대, 프랑스의 피에르 조셉 루드테(Pierre Joseph Redoute)라는 작가가 식물의 거의 모든 걸 그렸다. 내가 영국에서 활동한 이유는 식물세밀화가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내 그림을 영국에서 한번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실력도 알고, 더 다양한 것들을 보고 싶어서 영국 보태니컬아트 협회에 가입했다. 내가 첫 번째 한국인 정회원이었다.


작은 화분에서 피어난 새순이 가르쳐 준 것


식물을 그린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다. 치유도 많이 된다. 식물 그림을 시작할 때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다. 스스로도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해 무척 방황했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서 뛰쳐나가 갑자기 공부한다, 사업한다 하니 주변 분들이 걱정이 많았다. 어머니가 식물을 진짜 많이 키우셨는데, 어느 날, 제라늄이라는 식물을 봤다. 새순이 올라올 때 잎사귀가 뭉쳐져 나온다. 잎의 가장자리가 펼쳐지며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그 어린, 아기 손 같은 그 새순이 마치 신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이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도 살기 위해 이렇게 새순을 내는데 나도 한번 더 살아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진짜 미친 듯이 한번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미친 듯이 그렸다. 지금도 거의 작업실에서 먹고 살고 있다. 이 작업이 다행히 나와 너무 잘 맞고 무척 행복해서 지금은 여한이 없다.


사진: 송은영 작가의 작업실 모습, Planet03 DB

할아버지의 기억, 그리고 책


어렸을 때부터 식물과 가까웠다. 어머니는 식물을 많이 키웠다. 내 롤모델은 친할아버지다. 할아버지께서는 분재를 워낙 좋아하셨다. 그냥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서 할아버지랑 오목 두고, 분재 닦으실 때 나도 같이 닦고, 물도 같이 주고, 서예하실 때 먹 갈고 그런 일들을 기다렸다. 어린 시절 6살 때까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여동생이랑 호스로 물 뿌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들이 내가 식물을 그림의 주제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책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대학 생활을 썩 재미있게 못했다. 그 당시에 좋았던 건 온갖 책을 다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간 리스트가 나오면 제일 먼저 신청하고 도서관에서 연락이 오면 빌려 봤다. 그때 정말 미친 듯이 많은 책을 봤다. 너무 궁금했다. 지금 뭔가 답답하고 삶이 잘 풀리지 않으면,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섰는데, 당시 그 답이 책에 있지 않을까 했다. 많은 철학서들을 봤다. 이후로도 삶의 방향을 잃을 때마다 항상 고전을 봤다. 이런 성장이 식물세밀화가, 작가로 활동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대능주 철화'에서 발견하다

 

그림: <대능주 철화>, 종이에 색연필, 36.2cm x 51.3cm, 제공: 송은영 작가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대능주 철화>다. 제주도 여미지식물원에 있다. 엄청 푸르고 길게 자라는 선인장이다. 이걸 내가 그린 이유는 하나다. 대능주 철화의 '철화'는 이 식물이 세월 따라 기억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대능주 철화 위쪽은 너무나 푸른데 아래쪽은 그렇지 않다. 세월이 지나면서 기형이 온 거다. 지금 가서 보면 저 밑부분도 다 삭아서 많이 없어졌다. 그런데도 위는 푸르다. 이 식물을 보고 ‘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주제는 '생애'


'대능주 철화'가 자라나기 위해 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계속 새 줄기를 내면서 굳건하게 자란다. 나는 이것이 세월이고 에이징(Aging)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정년을 정해 버리고, 나이가 들었다고 노인이라고 선을 그어 버리는 것에 반대한다. 나이가 들어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을 나는 이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 싶었다. 나의 주제는 ‘생애’다. 식물의 라이프사이클을 그림으로 그린다. 매 계절마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 가운데서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자연이란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한다. 식물을 보며 삶이 돌아가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배운다. 이걸 알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그냥 허비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 삶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기회인지 알게 될 테니까.


풀때기에서 시작하는 기후 위기 인식 변화


예전보다 식물에 관심을 갖고 보시는 분들이 많다. 숲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 반려식물이란 말이 나왔을 때 너무 반가웠다. 사실 내 주변에 식물이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살다가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쓰면서 식물들의 생애를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이 식물들이 지금 기후 위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구나 조금씩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사실 강아지도 그렇지 않은가. 옛날에는 우리가 식용으로 하다가 반려동물이란 말이 정착되고 인정되면서 동물들이 가진 권리, 생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식용 반대 운동도 하고 그랬다. 식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겪는 기후변화를 식물들은 더 극단적으로 겪고 있다. 꿀벌과 같은 수정 매개체를 잃는 등, 식물들이 존재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오히려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해서 반려식물이 많이 퍼지는 게 좋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자꾸 보면 애정도 생기고 공부도 하게 되고, 이 식물들이 살아가기 더 힘든 이 기후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더 빨리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식물들이 사라지면 그 위에 포식자들은 다 죽는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걸 멈출 생각은 하지 않고 달나라 갈 생각, 화성 가서 살 생각을 한다. 그게 아니라 여기서 발붙이고 살아갈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데, 저는 그게 작은 풀때기 하나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기자수첩 송은영 작가가 이번에 펴 낸 『식물이라는 세계』의 책 서문을 소개한다.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지구에 머물며 극변하는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적응해 온 놀라운 식물계에 큰 변화가 닥치고 있다. 최근 브라질의 한 대학교에 있는 생태학과 연구팀에서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의미심장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6500만 년 동안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해 온 아마존의 생태계가 2050년에 급격한 대붕괴가 예측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뤄진 기후변화에도 생태계 복원력을 유지해 온 아마존이 지구 온난화, 산림의 무분별한 벌채, 화재와 극심한 가뭄의 반복으로 현재 25% 이상 훼손되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2050년에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47%가 황폐화된다고 한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며 지구의 20%나 되는 산소를 담당해 온 아마존의 파괴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파멸되는 시작점이다. 다가오는 재앙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을 그림 속 주인공인 먹물버섯에게서 찾아본다. 버섯은 땅속으로 무수히 많은 실 모양의 균사를 퍼트려 다양한 나무뿌리와 공생관계를 맺는다. 버섯은 나무뿌리를 감염 미생물로부터 지켜내고 수분과 양분의 이동을 돕는다. 나무는 스스로 광합성을 못하는 버섯에게 당분을 제공한다. 버섯과 나무의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과연 인간과 식물은 어떤 관계인가 생각하게 된다. 저 작은 버섯도 지구상의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알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떠한지. 흔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식물의 살아 있음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치열하고 능동적인 식물의 삶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숨결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 결국 인간의 삶을 지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지구를 지켜내는 것임을 깨닫는 작지만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제목 식물이라는 세계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RHK)

책소개 하루 종일 식물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그려내는 일을 하는 식물세밀화가 송은영 작가가 그린 43가지 식물세밀화와 그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택식물원에 있는 얼레지부터 천리포수목원에서 한여름에 만난 모감주나무,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에서 마주한 호랑가시나무 이야기 등 인간의 삶과 가장 닮아 있는 43종의 사계절 식물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한 위로와 공감도 얻을 수 있다. 식물들의 생애 이야기와 함께 수록된 해당 식물의 기본 정보와 서식지, 개화 시기, 꽃말 등과 함께 펼쳐진 식물세밀화를 보다 보면 우리가 식물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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