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평화네트워크 대표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혀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전쟁과 군비경쟁이 냉전시대보다 더 격렬해져
인류 사회가 이른바 ‘글로벌 복합 위기’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기후위기와 전쟁·군비경쟁은 그 두 축에 해당된다. 이미 기후위기가 인류를 포함한 지구촌 생명체에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경종이 여러 차례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들은 기후위기 대처를 뒷전으로 미루고 편협하고도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매몰돼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과 군비경쟁도 나날이 격화되고 있다. 비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세계적 차원의 군비경쟁 역시 냉전 시대보다 더 격렬해지고 있다. 글로벌 국방비의 추이를 보더라도 이러한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세계 군사비의 흐름을 보면, 2020년 화폐 가치 기준으로 2000년대 후반에 1980년대 후반기의 군사비를 넘어섰고, 2021년에는 사상 최초로 2조달러를 돌파했다. 또 2022년 세계 군사비는 2조240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세계 군비 지출이 가장 컸던 1980년대 후반보다 약 6000억달러가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세계 군사비 상승 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세계 양대 군비 지출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고, 주요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쟁과 군비경쟁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
문제는 기후위기와 전쟁·군비경쟁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글로벌 복합 위기를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과 군비경쟁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와 국제 협력의 저해를 초래하고 있다. 또 악화된 기후위기는 분쟁의 주된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 위기는 식량과 보건 문제, 불평등, 저성장, 대규모 난민 발생 등 다른 위기로도 이어진다. 이는 거꾸로 기후위기와 군사 활동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인류가 갈수록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군사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또 133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은 0.85도 올랐는데 한반도는 1981~2010년 30년 동안 연평균 1.2도 상승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반도 역시 기후위기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촌의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흔히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서는 비상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국가안보와 군사 분야는 예외로 남아 있는가? 지구는 갈수록 거주 불능이 되고 있는데, 지구를 둘러싼 허망하고 위험한 대결과 경쟁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이 기후위기 완화에 크게 기여 할 수 있다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요구된다. 하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최대한 ‘완화’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변화되는 기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평화군축은 이러한 기후위기 대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우선 군사 활동의 축소는 탄소 배출의 감축으로 이어져 기후위기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2022년 기준으로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이 전체 탄소 배출의 5.5%를 차지한다면, 이는 연간 약 27.5억톤에 해당된다. 이에 반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얼마 남지 않았다. 탄소예산은 상승하는 지구의 기온을 특정 온도 이내로 붙잡아두기 위해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의미하는데, ‘1.5도 이하’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예산은 2500억톤밖에 남지 않았다. 매년 380억톤을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7년 이내에 바닥나는 셈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의 군사 활동은 증가 추세에 있다. 이를 감안해 2023년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30억톤이라고 가정해보자. 또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간 군사 부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2023년 가정치(30억톤)에서 10%를 줄인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하면 7년 동안 군사 부문에서만 21억톤을 줄일 수 있다. 20%를 줄이면 감축량은 42억톤이 된다. 42억톤은 전체 탄소예산 2500억톤의 6%에 근접한다. 또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이 2023년 9월 공개한 종합 보고서는 당사국들이 지금까지 제출한 2030년까지의 감축계획(NDC)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이 1.5도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배출량보다 203억~239억톤이 많다고 하는데, 42억톤은 이 초과분의 약 20%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이 기후위기 완화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군비 축소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군사 활동은 국방비 책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만큼, 국방비 감축과 감축한 예산의 기후위기 대처 투입은 ‘완화’와 ‘적응’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 국방비 감축은 해당국의 탄소 배출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 예산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또 개발도상국들에게 지원하는 기후금융 규모를 늘릴 수 있어 이들 나라의 탄소 배출 저감형 산업구조로의 재편 및 기후변화 적응에 기여할 수 있다. 가령 세계 국방비를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 동안 연 2조달러 수준으로 묶어두고, 이를 예상되는 국방비 증액과 비교해보자. 2022년 세계 국방비가 2조2400억달러였고 올해 세계 국방비 증액을 감안하면 2023년 세계 국방비 총액은 최소로 잡아도 2조30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이다. 또 2024~2027년 세계 국방비 연평균 증가율을 2%로 가정해보면, 늘어나는 총 액수는 7년간 합계는 17조4410억 달러가 되고 7년간 순 증가분은 3420억 달러가 된다. 이에 반해 2024년부터 7년 동안 세계 연 국방비가 2조 달러로 동결된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7년 동안 절약할 수 있는 재원은 3조4410억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절약한 재원의 절반을 기후위기 대응에 사용한다면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 수 있다. 특히 올해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회의의 핵심 의제가 되고 있는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이 그러하다. 가령 2차 기후재원의 적용 기간을 2025~2030년 6년간으로 잡고 매년 2000억달러를 기후재원으로 상정한다면 총 재원은 1조2000억 달러가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세계 국방비 축소를 통해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과거 사례를 복기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후반 세계 군사비는 1조6000억달러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조1000억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기 때문이다. 군비 축소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와 기후위기는 인류를 파멸시길 수 있고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공통점
인류는 전쟁과 신냉전, 그리고 이 와중에 격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상호간 경쟁심, 적대감, 배타성을 품고 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다투다가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친다고 한다. 오늘날 외계인의 침공에 해당하는 실존적 위협은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기후위기이다. 실마리는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이기에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흐름과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 무기’로 불리는 핵무기를 호출해본다. 핵무기와 기후위기는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공통점이 이를 대표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도 있다. 핵전쟁은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반면 기후위기는 ‘1.5도’를 넘어서는 순간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없다. 하여 이제는 서로를 겨냥한 각종 무기를 내려놓고 1.5도라는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군축의 종말 시대를 딛고 군축을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장정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한반도에 ‘쌍중단’, 혹은 ‘쌍축소’를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기회
끝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함의도 언급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반도는 기후변화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이자 군비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또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군사 문제에 있고 그 비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남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도 매우 희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한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군비경쟁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지구적 차원의 각성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이 힘을 얻으면, 한반도에서도 대규모 한미연합훈련과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의미하는 ‘쌍중단’, 혹은 ‘쌍축소’를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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