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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티 | 시민정치 현장을 가다 | 공동체 운동 | 울산 소호마을 유영순

 

김우성 객원기자 2024-03-05


내가 행복해야 공동체가 행복하다


유영순씨는 1967년생, 올해 56세, 양띠다. 23년 전 귀산촌해서 울주군 상북면 소호마을에 살고 있다. 마을공동체를 일구어온 1세대 마을활동가다. 4년전부터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시골 언니로 살고 있다.



노동운동가에서 마을활동가로

울산이 고향인 그녀는 노동운동을 하며 나일론 공장에서 5년간 일했다. 진보정당에서 글쓰기, 공부모임을 이끌며 뜨겁게 살았다. 그러다 둘째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가 까다로워서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소호마을의 암자에 머무르던 선배를 찾았는데, 엄마의 껌딱지로 붙어 다니던 두 살, 네 살 꼬마들이 자기들끼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때 아이들을 숲에서 키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처음에는 귀촌이었다. 2년 정도 쉬고 싶었다. 쉬면서 농사일을 거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10여년 농사를 지으면서 소호마을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고 싶었다. 나아가 소호마을이 좀 더 지속가능한, 그리고 즐거운 곳이 되기를 바랬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마을을 떠났다가도,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반겨줄 아늑한 고향 마을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졌다. 당시에 마을공동체는 이념이나 종교가 같은 사람들끼리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땅도 몇 만평씩 구입하고, 열에서 스무 가구가 시골로 들어와 집을 짓는 방식이었다. 자원의 투자가 많이 드는 모델이었다. 유영순씨는 당장 가진 자원들로도 재미있고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같은 또래 마을 사람 몇이 모였다.


학교가 마을의 중심이다


처음에 그들이 주목한 것은 소호분교였다. 소호분교는 마을의 중앙에 터를 잡은 작은 학교였는데, 주민들이 도시로 떠나고 학생 수가 8명까지 줄어서 폐교 위기에 처에 있었다. 학교가 없어진다면, 마을에 아이들이 사라질 것이고 그들보다 더 젊은 사람은 이사 오지 않을 게 뻔했다.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학교를 지키는 일이었다.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다. 마을에 아이들이 뛰놀게 하자, 우리 어른들도 이 아이들의 교육에 함께하자. 이러면 마을 생활이 좀 더 흥미로울 듯했다. 인디언들의 마을처럼 여러 세대가 소통하는 마을을 꿈꿨다. 농촌유학을 진행해야 하니 주민들을 조직해야 했고, 주민들도 재미있어 할 만한 일들을 찾아야 했다. 일이 잘 될 때는, ‘이런 게 마을공동체로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마을 원주민과 귀촌인 간에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갈등이 드러나면, 다들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10년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을 위한 농촌유학센터를 세우고, 소호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도 만들었다. 귀촌인과 원주민들이 함께하는 경제공동체 소호산촌협동조합도 설립했다. 원주민의 자식들이 귀향을 해서 돌아와 사과협동조합을 조직하는 과정에도 함께했다. 마을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 마을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체험휴양마을을 꾸렸다. 이 밖에도 정말 많은 구조들이 마을 안에 세워지고 조직되었다. 관심사가 다른 세대들끼리로 함께 어울려 색다른 일도 만들어졌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마을과 관련한 조직과 구조를 만들었다. 유영순씨는 "구조를 만드는 재미로 달려왔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내가 바라던 마을이 맞나?


뜨겁게 활동하면서 다양한 살림살이 구조를 만들어 왔는데, 10년이 지날 쯤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유영순씨의 이상은 80년대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사람들과 비슷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거라고 봤다. 그런데 그동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람들을 따라왔던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다. 시스템이 미비해서라고 여겼는데, 시스템을 어느 정도 짜 놓고 보니 문제가 분명했다. 특히, 소통이 부족해서 온 갈등이 컸다. 마을공동체의 초기에는 문제가 외부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외부의 이해 부족, 예산의 부족 등 바깥에서 온 문제로 내부의 결속이 강했다. 시스템이 돌아가고, 예산이 커지자 분배의 문제가 발생했다. 투자를 줄이고 더 많이 나누자라든지, 공정한 분배에 대한 구성원간의 이견이 발생했다. 돌아보면 그 해결 과정도 지혜롭지 못했다. 유영순씨는 "우리는 경험이 없는 채로 닥쳐오는 고민을 그때그때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을 했다. 당시에 활동가들이 장기적인 전망을 내기는 어려웠다"고 말한다.


마을과 교육은 분리할 수 없다


핵심적인 문제는 활동가들 사이 소통이었다. 여기서는 활동가 몇 명이 마을로 들어가서 농촌유학에 필요한 건물을 한 채 짓고, 학교로 살리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마을 자원을 있는 그대로 운영하는 마을형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추구했다. 먼저 지역아동센터를 만들고, 지역 아이들이 농촌유학에 참여하고, 마을 주민들도 농촌유학에 함께해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작지만 어른들에게 강사비를 주고, 마을 주민이 식사를 담당하게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가 아니고, 전문가가 아니며,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다. 운영에 허술한 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1세대 활동가들은 이 방식이 의미 있다고 봤다. 그러나 농촌유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교육적 전문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농촌유학과 마을의 연결을 중단하고, 농촌유학센터가 단독으로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2년이 지나고 보니, 농촌유학은 마을에서 배척받았다. 전문성을 살리고자 했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겨버렸다. '농촌유학은 마을과 분리해서 운영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많은 연결과 협력이 필요했다. 또 상북면 소호마을 하나만으로는 마을공동체가 온전히 유지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상북면 읍내로 내려가 공동체를 확대하고 더 많은 마을을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확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활동가들은 소통과 갈등의 조정에 미숙했다. 각자가 살아온 방식, 대화하는 방식, 각자의 경험과 트라우마가 다른데, 늘 활동가 자신의 경험에 기준을 두고 이야기했으며, 다른 경험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부족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정토회 불교대학에 가고, 마음수련을 하고, 108배를 하고,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래도 관계는 늘 서툴렀다.


시골 언니의 삶


지금은 직함들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꾸리면서 마음 건강을 돌보고, 연결성을 회복하려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늙고 한가한 이모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배우고, 여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청년들은 이러한 시골 언니의 삶을 부러워한다. 요즘 시골 언니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뭔가 만들고 해보려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다. 퇴직하는 언니들을 모아 '늙은 언니들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좋은 시골 언니가 되려고 한다.


개인의 삶이 행복해야, 공동체도 행복하다


유영순씨는 같은 내용의 꿈을 반복해서 꾼다고 한다. 아주 중요한, 놓치면 안 되는 기차를 타러 가는 꿈이란다. "기차를 타러 급히 가는 나에게 지하도에서 누군가 갓난아기를 부탁했다. 나는 아이를 보느라 기차를 놓칠 수 없다며 기차를 탔다." 유영순씨는 그게 내 삶이었다고 말한다. 얼마 전부터 꿈의 내용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를 보느라 기차를 떠나보냈다. 삶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나는 공동체가 좋고, 공동체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가치를 쫓지 않고 개인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며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니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상대를 미워하거나, 나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화를 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라고 돌아본다. 개인의 일상이 없으면, 일상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가치를 내려놓고 일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개인의 삶이 행복해야 공동체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라고 유영순씨는 마무리하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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