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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 신지연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 | 양곡관리법은 '남는 쌀 매수법'이 아니다

최종 수정일: 3월 24일

2025-03-20 최민욱 기자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사무총장은 25살부터 농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26년째 유기농 채소, 토종 밀, 토종 벼 등을 재배하는 여성 농민이다. 2025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전여농은 여성 농민의 법적·사회적 지위 향상, 농업·농촌 내 성평등 실현, 지속가능한 농업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하는 단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신지연 사무총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신지연 사무총장

농산물 가격 결정의 구조적 문제


일반적인 상품은 생산자가 직접 가격을 책정할 수 있지만, 농산물은 농민이 가격 결정 권한을 갖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농민이 100원을 들여 생산해도 시장에서 가격이 50원으로 형성되면 50원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생산비와 무관하게 시장가격이 가격을 좌우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양곡관리법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특히 쌀은 우리나라의 주식으로서 식량 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품목이다. 쌀 자급률이 낮아져 부족해지면, 일본이나 필리핀 등의 사례처럼 식량 위기가 폭동이나 기아로 확산될 수 있다. 또한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수출국이 쌀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쌀은 반드시 일정 수준의 자급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쌀 자급률은 100%에 못 미치고 있으며, 쌀값은 계속 폭락하는 추세다. 이는 곧 생산비조차 보전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30년 전과 지금의 쌀값이 거의 같을 정도로, 물가는 크게 올랐음에도 유독 쌀값만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농민의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


2020년 폐지된 ‘변동직불금 제도’가 있었을 때는 쌀값이 특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85% 정도를 보장해 줬다. 그러나 이 제도가 사라지면서 쌀값을 적정 수준으로 방어할 새로운 장치가 필요해졌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쌀값의 공정한 가격을 반드시 보장하는 의무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공공 비축 물량 확대다. 기후위기나 전쟁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하려면 국가가 보유하는 쌀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남는 쌀 매수법” 혹은 “농업을 망하게 하는 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쌀 자급률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마다 전체 쌀 생산량의 약 11%에 해당하는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한다. 국내 생산량과 합쳐지면 공급이 과잉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쌀값 하락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다. 정부가 의무 수입 물량을 재협상으로 조정하거나,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 쌀을 해외 원조 등으로 돌려 시장 유입을 막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 양곡관리법에서는 쌀값이 폭락해도 정부가 ‘할 수 있다’라는 임의 조항에 그치지만, 이를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농사는 대한민국 식량산업의 기둥


쌀 농사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농민들은 양파나 마늘, 딸기 등 다른 작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농산물 품목은 제한적이어서, 조금만 생산량이 늘면 가격이 급락한다. 결국 쌀 농사가 어느 정도 유지되어야 전체 농산물 가격이 급변하지 않고 안정성을 갖출 수 있다.

실제 통계에서도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거의 100%를 넘은 적이 없다. 심지어 기후가 나빠 자급률이 85%까지 떨어졌던 해도 있었다. 여기에 매년 11%의 의무 수입분까지 더해지면, 실제 자급률은 더욱 낮아지는 셈이다. 당장 쌀값 폭등이 아니라 오히려 쌀값 폭락이 현재의 심각한 문제다.

일본은 의무 수입된 쌀을 국내 시장에 푸는 대신 해외 원조 형태로 돌려 자국 쌀값을 보호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 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정부 재정에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국제 상황에 맞춰 의무 수입량을 재협상해야 한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민들의 요구를 일부 반영해 공정 가격 보장과 공공 비축량 확대를 포함했다. 다만, 농민이 가격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장치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현재는 공공 비축미 가격을 농식품부가 정하면 시장가격도 이를 따르게 되는데, 농민들은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공공 비축미 가격이 낮게 결정되면 시장 쌀값 역시 낮아지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먹거리와 농지의 공공성, 그리고 지역 소멸


의·식·주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특히 먹는 문제(식)와 사는 문제(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먹어야 살 수 있으므로, 먹거리는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지닌다. 농산물을 공공재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농사를 짓고 농지를 보전하는 일은 환경 보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농지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지역 소멸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지역이 소멸하면 결국 도시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친다. 국토가 균형 있게 발전해야 도시와 농촌 모두에 이롭다. 이러한 측면에서 농민수당, 농민소득, 농촌소득 등 다양한 소득 보장 정책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소농이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70%를 담당한다. 규모는 작지만 생산 비중이 상당히 큰 셈이다. 그러나 실제 정부 지원이나 농업 정책은 대농이나 기업농 등 대규모 농장에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


정부의 기업농·스마트팜 중심 정책, 밀려나는 소농 가치


최근 정부는 농업의 기업화를 촉진하고 법인화된 기업농과 스마트팜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농이나 스마트팜은 전통적인 농업과 방식이 크게 다르다. 스마트팜은 공장처럼 양액 재배로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많고,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의미와도 거리가 있다.

농업은 본질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농과 스마트팜은 이윤 추구 중심이라 기후위기나 기후 재난을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소농 중심 농업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되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농업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논 농사는 물을 가두는 과정에서 지구 온도를 낮추고 미생물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등 환경적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땅을 활용하는 전통적 농사 방식을 중시한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논 농사


논 농사는 기계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노동력과 비용 측면에서 쉽지 않다. 벼는 1년에 한 번만 수확이 가능하지만, 밭작물은 여러 작물을 연속으로 재배해 소득을 높일 수 있다. 또 논은 물이 일정하게 공급되고 유지되어야 하므로 가능한 땅이 제한적이다.

논을 밭으로 한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포크레인 공사 과정에서 지형이 크게 바뀌고, 다시 논으로 만들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게다가 농기계를 모든 농민이 직접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매우 비싸, 대개 기계를 보유한 사람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작업을 맡긴다.

논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친환경 방식으로 물을 유지해야 하면 매일 물을 보충하고 논둑을 점검해야 한다. 쥐나 두더지가 굴을 파거나 비로 논둑이 무너지는 등 변수가 많아, 규모가 클수록 이를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다.


농업4법 거부는 농민 존재의 거부


최근 ‘농업4법(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농안법), 농어업재해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 농어업재해대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현 정부에서 모두 거부되었다. 이는 국정 운영 기조에서 농업이 우선순위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농업재해대책법은 기후위기로 심해지는 농업 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5년 주기로 기본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농민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제도였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농업재해보험법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재해보험은 농민들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다. 일부라도 작물이 살아 있으면 보상받기 어려운 구조이거나 병해충 피해는 보상 제외 항목이다. 결국 농민은 보험료만 내고 실제 보상을 못 받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자고 했으나, 이 역시 거부됐다.

농안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수입을 통해 바로 가격을 낮추지만, 가격이 폭락할 때는 대책이 없다. 심지어 국내 수확 전에 미리 수입하여 가격 폭락이 가중되기도 한다. 농민 입장에서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수입하는 정책에 피해를 입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 마련도 거부됐다.

정부는 예산 문제를 언급하지만, 실질적으로 큰 예산이 드는 법안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농업을 배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농민들은 받고 있으며, 이렇게 법안 자체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국 농민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도시의 배달 라이더들이 없어진 세상을 상상해 보라 하면 당장 불편함에 손사래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농민이 사라진 세상을 잘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산물을 수입하면 되는 거 아니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또한 해외의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 세계가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식량 위기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농업과 농민이 사라지면, 결국 나 자신도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문제는 농민이나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문제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라져가는 토종 씨앗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농업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분야이기에, 농민이 사라지면 안 된다. 모든 직종이 소중하지만, 특히 농업은 우리의 밥상을 지탱하는 근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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