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시대라는 인식을 갖고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2024-11-07 박성미 총괄
안병진 교수는 현재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뉴스쿨 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교한 박사 논문으로 '한나아렌트상'을 받았다. '지구와 사람'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지구와사람'의 세미나 그룹인 '바이오크라시(Biocracy)'를 운영하고 있다. KBS, SBS 등에서 미국 대선 특집 방송의 패널로 참여했고, KBS TV 프로그램 〈세계는 지금〉에 미국 정치 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 생태 정치 질서 구상 아테네 민주주의 포럼, 유럽 평의회 등에 초대받아 발표했다. 『한겨레』, 『경향신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미국과 한국 정치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노무현과 클린튼의 탄핵 정치학』(2004),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보수주의 위기의 뿌리』(2008), 『다시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2012),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2016), 『예정된 위기: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것인가』(2018),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2019),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2021) 등이 있다.
신냉전 시대,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놓여 있는 시기는 어떤 시기일까? 미국 학계에서는 ‘냉전의 부활’, ‘신냉전’, ‘차가운 평화’ 등 다양한 용어가 논의되고 있지만, 나는 그것들이 모두 일면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직전과 매우 유사하다.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에 백악관에서 고민했던 핵심 문제는 ‘어떻게 전체주의로부터 자유주의를 지킬 것인가’였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전간기 동안 파시즘이 대두되었고, 지금은 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다. 당시 일부는 히틀러의 사상에 동조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공개적으로 히틀러를 찬양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상황은 냉전기와도 유사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체제 경쟁이 있었고, 그 경쟁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반도체, AI, 우주 경쟁에서 누가 더 높은 체제 탄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TSMC는 중국과 미국 모두가 의존하는 중요한 기업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상호 의존성이다. 이처럼 상호 의존성과 대립이 동시에 존재하는 예측 불가능한 시기이다.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가치로, 나는 ‘생명공화주의’를 제안한다.
국가 리더들이 신냉전을 유발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AI의 티핑 포인트는 지구 차원의 새로운 위기이다. 최근에는 매우 심각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JP모건 회장은 "3차 대전이 이미 시작됐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핵무기만으로도 인류는 몇 차례 전멸할 수 있을 정도인데, 미국 내에서는 핵무기 증산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기후대사를 역임한 존 캐리 의원조차 최근에는 좌절감을 토로했다. 미국 대선 승리를 위해 기후위기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지구적 리더십을 이끄는 가치들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미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조차 평화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신냉전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신냉전이라는 개념이 결합된 상황이다. 트럼프는 그 누구도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다. 푸틴은 과거의 짜르가 되기를 꿈꾼다. 그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봉건 시대의 복귀를 원한다. 푸틴의 대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는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고유의 강대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진핑은 '천하주의'를 꿈꾼다. 자국의 주도권을 중심으로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이러한 의도는 전 세계적 문제 해결보다는 ‘대립’을 심화시키는 긴장을 유발한다.
이제 국제 사회는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가진 지구적 리더가 필요하다.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도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전 인류는 운명공동체, '공화주의'가 필요하다
안보는 생명의 문제이다. 안보 문제만큼은 진영을 넘어서서 해결해야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전 인류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케네디 대통령이 냉전 갈등을 겪으며 3차 대전 직전까지 가면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다. 그가 후루시초프에게 "우리는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신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지금 우리도 같은 처지에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미국의 자유주의 질서를 넘어서서 제시할 수 있는 가치가 필요하다. 이 가치는 미국 내의 훌륭한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가 이미 주장하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공화국'의 가치다. '공화'는 쉽게 말해 '공존하며 함께 번영하는 것'이다. 상호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쟁의 위기를 촉발하지 않아야 한다.만약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면, 미국 내 일부와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핵무장론과 자주 국방, 평화 구축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
미국 내에서도 신냉전이라는 개념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신냉전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한국의 정치 소용돌이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이 어디로 향할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대선에서는 한국의 대선 주자들이 '공화주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함께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공화주의' 가치에, 생명의 관점이 더해질 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생태민주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미 제기한 화두이다. 보수든 진보든, 과거 세대든 미래 세대든, 우리는 함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대한민국과 전 세계 시민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생명공화주의'를 주창하다
AI와 기후 위기를 포괄하는 가치를 찾아야 한. 그 가치는 바로 '생태'와 '생명'이다. 지구가 생존해야 인간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네트워크를 전면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특히, 젊은 미래 세대가 그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공동체의 감각을 갖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방정부나 국회에서, 심지어 대학의 이사회나 대기업 이사회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작은 실험부터 시작한다면 점차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와 재난 관련 어젠다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다. 트럼프가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이전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의 많은 주 정부들은 기후 변화와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특히, 파주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공화주의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