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2024-05-16
기후 위기는 세계적이고, 국가적이며, 전 지구에 걸친 총체적이고 거대한 난제라고 한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생길 것이라는 공포감도 존재한다. 그러나 각자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각자의 직업 속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기후 위기를 극복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후 위기의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어 절망은 희망이 될 것이고,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조금 덜 미안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이번 주는 기후 위기의 시대, 3인의 선택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1999년 사제로 서품받은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는 현재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으로 생태환경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농민사목위원회의 위원장이다. 2008년 미리내 성지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을 계기로 내부 부패를 넘어 환경 사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생태 감수성이 생기고 환경 이해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무분별한 소비 생활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돌고 돌아 나의 고통이 된다
우리 일상을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이다. 그런데 서울, 인천, 경기도와 같은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소각장 정도를 제외하면 수도권에서는 거의 에너지 생산이 이뤄지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정작 이러한 에너지는 인구도 적고, 에너지 사용도 크지 않은 곳에서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가 건설된 지역 주민들은 생존권을 침해받는다. 화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진폐증을 앓고,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방사능 위험에 노출된다. 발전소가 세워진 땅에서는 다른 사업을 할 수 없으므로, 본래의 생업을 이어 나갈 권리까지 박탈당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고 보니 발전소가 지어진 땅의 주인은 대부분 수도권 주민들이었다. 발전소 입지에 따른 이익은 수도권 지주들이 갖고, 경작권을 잃은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의 침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이런 문제는 재생 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할 때도 동일하다.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와 대도시의 사람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이런 희생을 당연시한다. 지금의 구조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나의 무분별한 소비 생활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결국 돌고 돌아 나의 고통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대응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특이하게도 환경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받아들이곤 한다.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기후 문제를 수용하는 태도가 차이난다. 탄소중립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로 탄소중립을 위한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렀다가 최종적으로 후퇴해야 했던 사안도 있었다. 환경 의식을 제고하는 여러 활동과 캠페인을 오랜 시간 병행해야 함을 계속 느낀다. 기후 위기는 인류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재앙이다. 처음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는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제안했으나,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며 2050년까지였던 탄소중립의 시간표가 더욱 짧아졌다. 실제로 2021년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청년단체 10곳에서는 파리 협정의 1.5℃ 제한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 한국은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기후중립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독일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며 엄청난 예산 투자와 함께 3500개의 성당과 기관, 학교 등의 건물 부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중이다. 이들이 인간성이 더 좋아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후 위기 대응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있었을 뿐이다. 천주교 수원 교구에서는 2040 탄소중립을 선언하여 40개 이상의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현 정권에서는 재생 에너지 정책이 후퇴하면서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던 과거보다는 협조해 주는 분들이 많아졌고 나름의 성과가 늘고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앞으로 수원 교구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태양광 발전소를 최대한 많이 짓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생각보다는 느리지만 2년 전에 비하면 꽤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어느 순간 물꼬가 트이듯, 가치관이 변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사회 전체의 실천에 굉장한 속도가 붙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감당 불가능한 부담을 주는 시설과 방식이 사라지길 바란다. 그런 관심과 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성경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황금률이라는 게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라는 말씀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고,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성경의 근본 정신이다.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 작은 것까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알았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를 해치거나 하는 것보다 오히려 살리고 성장시키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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