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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파머 | 농상로 마음을 풀어주는 '온유원'의 김민주 대표

 

여자들 4대가 함께 모여, 농사로 마음을 풀어 주는 치유농업을 하는 '온유원'의 김민주 대표 이야기

2024-11-21 김민주

치유농장 온유원 식구들, 미소가 아름답다. 뒤줄 왼쪽이 필자.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김민주 / 치유농장 온유원 농부


심리학을 전공하고, 상담 및 임상심리 석사를 마쳤다. 2018년 초보 농사꾼으로 농업을 시작하고 2022년 고양시에서 귀농을 했다. 농협대학교에서 치유농업사 양성과정 1기를 수료하고 치유농업사 2급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치유농장 온유원을 운영하며 고려대학교 원예생명공학과 석사과정에서 원예와 치유농업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치유농업사로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및 농장에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하고 있다.

 

어쩌다, 4대가 함께 농사짓고 있습니다


치유농장 온유원에는 5명의 여자들이 모여서 땅을 꾸립니다. 먼저 1대 왕할머니 이지양, 프로 농사꾼이자 우리의 농(農)신적 지주이십니다. 2대 할머니이자 저에게는 시어머니 박지효, 친정엄마 정화순 그리고 3대 며느리이자 딸 그리고 엄마인 김민주, 마지막으로 4대 우리집의 귀염둥이 백서빈입니다. 여자 5명이서 모여 북적북적한 온유원, 어쩌다 4대가 함께 흙에서 놀고 먹고 있습니다.

3월의 시작 경칩이 오면 감자를 심고, 하지감자를 수확하지요.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2018년, 장거리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가 어느 날 평생을 함께하자며 약속했습니다. 그리하여 학교를 졸업하고 남편만을 바라보며 무턱대고 시어머니와 왕할머니와 한가족 한지붕이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시 식당을 운영하며 사용하는 식재료를 직접 농사지은 야채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야채, 채소 그리고 과일은 시장과 마트에서 사서 먹던 저에게는 밭에서 막 따와서 먹던 채소들은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나와 가족이 먹기 위해서 필요한 채소를 자급자족으로 직접 땅을 일궈 농사지어 심고 수확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신선한 세상이었습니다. 심지어 마트에 가기 귀찮아서 아침에 배달 오는 인터넷 마켓을 사용해서 식료품을 주문하고 살아가던, 뭐든지 빠른 게 좋은 줄만 알았던 저에게, 농사라는 것이 무척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인 줄만 알았습니다.

선유동 서릿골길에 초 겨울 서리 맞은 배추, 아삭아삭하니 맛있다. .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하지만, 땅에 파종한 씨앗이 어느 날 흙을 들어올리는 새싹으로 움튼다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 절기에 따라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식물의 한살이 그리고 그 순간순간 느껴지는 여름 새벽녘의 아침이슬, 비 오고 난 뒤에 물에 젖은 흙의 비릿한 내음 그리고 초겨울의 서리 내린 배추잎을 통해서 내 마음속에 어느 날 몽글몽글 간지러운 녹색의 씨앗이 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댁에서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시댁에서 시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거 힘들지 않아?라고 우려스러운 말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참 덤덤한 며느리였는지 시어르신을 모시고 산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냥 우리는 어르신들과 함께 공동체로서 공동육아, 공동농사 그리고 간병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땅은 배를 채우는 양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채운다, 귀농의 결심


제가 시집오기 8년 전 시아버지는 뇌출혈로 인해 쓰러지신 후 인지도 거동도 못하는 1급 장애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근 8년간 경제활동을 위해서 식당일을 병행하면서 시아버지를 집에서 간병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 계시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식사도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3~4시간마다 석션(가래를 흡입하는 기계)을 하지 않으면 호흡이 힘든 시아버지를 시어머니는 오직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병하셨습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나아질 기약 없이 오랜 병환으로 말라가는 시아버지의 모습에 시어머니의 지친 마음과 육체적 힘듦은 아무도 섣부르게 이해하지도 위로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땅이 꽁꽁 언 겨울에 첫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리고 봄이 왔을 때 갓난아이를 안고 밭에 나와서 시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불 같은 추진력을 가진 시어머니에게 봄은 가장 활활 타오르는 시기입니다, 농사꾼에게 제일 바쁜 시기는 봄입니다. 한 해의 작물을 계획하고 겨울내 묵은 땅을 깨워 주고 일구고 할 일이 참 많지요. 시어머니는 겨울내 꽁꽁 얼었던 땅과 8년이라는 긴 세월 속 자신의 마음을 흙놀이를 통해서 녹입니다. 본인 입으로 “민주야, 나는 토목이 전공이야. 나는 흙놀이를 한단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본인의 지친 마음과 힘든 상황을 어느 날 씨앗을 심고, 땅을 일구고 그리고 꽃을 심으면서 풀어냅니다. 그리고 싹이 틔워지기를, 우리 가족이 먹을 채소가 풍성하게 자라나기를,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아, 흙은 우리 배를 채워주는 양식뿐만 아니라 마음도 채우는구나.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1대 정신적 지주 왕할머니와 2대 시어머니를 보조하던 초보농사꾼은 용기를 내어 2022년에 고양시에서 청년창업형후계농으로 귀농을 하게 됩니다. 귀농을 하고 내게 맞는 농법, 우리가 지속가능하고, 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농업과 작물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농사의 가치를 나누기 위해서 치유농업을 꿈꾸게 됩니다.


치유농장 온유원


치유농업은 농촌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자원과 자연을 기반으로 삼아 이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과 휴양,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일체의 농업적 활동을 일컫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부터 치유농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며 ‘치유농업’이라는 용어를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치유농업의 본격적인 산업화를 위해서 치유농업의 실천 사례와 효과를 분석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왔고, 2020년 3월 6일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며 2021년 3월 25일부터 치유농업을 활성화시켜 치유농업사 자격증 제도가 생겼습니다.

온유원 모습.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귀농을 결심하고 노지에서 1차 관행농법을 진행하던 장소에서 다양한 대상자에게 맞는 치유농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업 시설을 준비하기까지 우여곡절의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농장에는 계절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식용꽃과 허브를 심었습니다. 3월엔 팬지, 6월엔 메리골드, 8월에는 장미, 10월에는 국화 그리고 사이사이 다양한 허브들을 심고, 최소한의 비닐멀칭과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친정엄마까지 합세해 사돈까지 4대가 모여, 온유원에 방문하는 이용자들이 오감을 이용해 꽃을 보며 느끼는 기쁨,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과 향기로 기억되는 싱그러움 그리고 수확해 먹고 나누는 행복을 함께하길 바라면서 가꾸었습니다.

메리골드.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나와 닮은 팬지를 찾고 있습니다.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3월에 피는 팬지, 삼색제비꽃이라고도 불립니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주세요. 나를 바라봐주오.’ 팬지가 가지고 있는 문양과 색깔을 보면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 같다고 해 붙여진 의미입니다. 수많은 색색의 팬지가 피어 있는 꽃밭 속에서 나를 닮은 팬지를 찾고 있습니다. 나와 닮은 팬지를 통해서 떠올리는 의미를 나누고 맛있는 팬지 비빔밥을 먹으며 마음을 나눕니다.

아이들이 허브 향기를 맡아보고 흙을 밟으며 맨발로 놀고 있다.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아이들이 농장에 방문해 직접 텃밭을 가꾸어 보거나, 농장에 심겨져 있는 다양한 허브들을 만져 보고 향기와 쓰임을 살펴본 뒤 수확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식물을 만나지 않아도 흙을 밟고 맨발로 뛰어놀아도 재미납니다. 다 같은 흙인데도 신발을 벗고 땅과 내 몸을 접촉하며 어씽(earthing)하며 이곳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수확한 꽃과 허브를 말아서 꽃다발을 만들었다.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농장에서 예쁜 꽃과 향기를 직접 보고 수확하며, 향기를 맡으니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직접 수확한 꽃과 허브를 겹겹이 뭉치고 말아서 직접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20여년 전 하얀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들고 입장하던 저처럼, 또 누군가의 신부에게 선물할 꽃다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 왔던 지나온 시간은 앞으로 이 허브가 말라서 피어낼 훈연 향기까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겨울 오기 직전에 볼 수 있는 꽃, 동국으로 차를 냈다. 사진_치유농장 온유원

동국(冬菊)은 온유원에서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볼 수 있는 꽃입니다. 동글동글한 노란색의 귀여운 꽃망울과는 대비되는 무척 지고지순한 절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꽃들이 이미 시들시들할 때인 겨울을 시작을 알리는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 개화하지 않고 피어날 듯 안 피어날 듯 기다립니다. 첫서리와 함께 쌀쌀한 겨울 바람을 느낄 때쯤 동국을 활짝 피어 진한 국화향을 뽐냅니다. 직접 수확한 동국을 손으로 덖어내어 구수한 국화차를 마시며 프로그램을 함께해 온 온유원과 텃밭식구들에게 남기는 시를 써봅니다.


온유원은 나의 텃밭 !

나의 꽃밭 !

나의 찻집 !

On Your Want


처음 시작은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함께하며 내 마음속에 피어난 작은 녹색씨앗을 키우고, 우리 가족 공동체가 마음을 가꾸는 공간이었습니다. 내 손으로 땅을 가꾸고 씨앗을 뿌려 자연스럽게 나는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나누며 느꼈던 작업들과 그 속에서 먹는 것 외에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채우는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농업·농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나누고 농장에 방문하는 이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가슴 속 하나의 초록빛 싹을 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치유농장 온유원은 고양시 선유동에서 식용꽃과 허브를 재배하며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유(仙遊)동의 지명은 ‘신선 선’에 ‘놀 유’자를 써서 신선도 놀다 갈 정도로 경치가 좋다는 뜻에서 유래되어, 자연취락구 농촌마을의 모습을 유지하며 옛 정취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온유원(溫遊園)은 이러한 선유동의 품속에서 방문하시는 모든 분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으로 ‘온(溫)’ 우리 전통의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따뜻한 마음으로 ‘유(遊)’ 놀면서 머물러 갈 수 있는 ‘원(園)’ 정원이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인스타 @onyourwant

홈페이지 온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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