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5
이상린 / 고양찬우물농장 농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 인근에 있는 고양찬우물농장에서 농사합니다. 늦깍기 농부로 직거래로 도심 인근 채소이웃과 노지 채소를 나눕니다. 민간시민농장에서 대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폭염 더위로 밭을 돌볼 절대 시간이 부족해졌다
14년을 농사졌던 밭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농사는 시설 없이 노지를 기반하고 있다. 방식 역시, 가급적이며 손 농기구를 중심으로 한다. 삽과 호미는 기본이지만, 때론 작은 손 관리기와 예초기를 쓴다. 가급적이면 농부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농사이다보니, 올해 여름과 같이 이상고온이 지속될 때 어려움이 있다. 폭염에 버거워 ‘정말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더위를 피해 새벽일을 부지런히 한다고 했지만, 한낮 무더위를 피하다 보니 절대적으로 밭을 돌볼 시간이 적었다. 처음 경험했던 그 여름의 폭염 기간이 너무 길었다.
다양한 채소를 조금씩 재배하는 도시농부
농학을 전공했지만, 중년을 훌쩍 넘겨 농사를 본격 배우게 되었다. 시작은 정확히 농사라기보다 텃밭 가꾸는 정도였고, 동네의 지역 강좌를 통해서였다. 이른바 도시농부학교 강좌. 2010년 초부터 시작되었던 도시농업은 식량 위기 등과 맞물려 도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수료하고 어찌어찌 지금의 고양에서 농부로 전업하게 되었다. 농사 방법은 당시 농부학교에서 추구했던 ‘생태적 가치를 존중하며 먹거리 자립한다’라는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먹거리 자급이란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먹거리를 생산하되, 여기에 필요한 다양한 채소를 조금씩 재배하는 것이었다. 또 가급적이면 도심에서 순환할 수 있는 유기물로 밭에 되돌려 주기, 화학적 조합인 화학비료와 농약은 사용하지 않기, 그리고 풀을 억제하기 위해 검은 비닐덮개를 사용하지 않기를 원칙으로 세웠다.
도심에서 직접 제철 농산물을 거래하는 장터를 만나다
그리하여 무모하지만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농사. 돌아보면 14년 동안 사연도 많았다. 지독한 가뭄에 고생도 하고, 장마와 병충해 등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때론 지인 찬스를 활용해 판매도 했고, 회원을 모아 여러 해 동안 꾸러미채소도 날라보았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농부 직거래 장터. 아마도 여기의 판로를 통해 농사의 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고, 안정성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도시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상상력이 밑바탕이 된 기획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로 도시농부, 요리사, 디자이너, 아티스트 들이 함께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의 중심에서 농부가 직접 소비자와 만나 거래하는 농부시장을 마르쉐라는 이름으로 열게 되었다, 물론 고양에서 도시농 네크워크로 활동했던 우리 농장에게도 접속의 기회가 주어졌다.
소규모 도시농에게 열린 새로운 형식의 시장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 농민들은 한두 품목의 작물을 대량 재배해 유통망을 통해 판매한다. 이게 보통의 산업농의 판매 구조이다. 그러나 여기와 대비되는 소규모 도시농에게도 새로운 형식의 시장으로 그 길이 열렸다. 지금은 생협이나 지역 로컬푸드와 연계된 소농들이 점점 확대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도심 공간에서 농부와 소비자가 직접 대화하며 직거래할 수 있는 시장의 출발은 생소했다. 따지자면 이런 거래와 소농들의 출현은 반드시 새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옛날부터 집터 앞마당 밭에서 다양한 제철 먹거리를 스스로 키워 왔고, 시장 한켠에는 이들이 지은 잉여농산물들이 있었기에 말이다.
특별히 대박도 쪽박도 없는 농사지만
흥미로운 것은 대규모 단일 품목의 농사가 시기를 잘 맞추면 꽤 좋은 수입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단번에 실패가 되기도 한다. 외부의 변수가 많은 농사일이 좀 그렇다. ‘모 아니면 도’식이다. 이와 달리 여러 품종을 다루며 소규모로 재배하는 농업은 특별히 대박도 없고 쪽박도 없다. 가물면 가뭄에 강한 채소(가령, 고추나 토마토)가 잘 되고, 비가 많이 오면 물 좋아하는 작물들(토란이나 공심채 등)이 잘된다. 올해의 경우 무더위에 아열대 채소의 수확량이 좋았다. 물론 가을은 무척 짧아져 그에 따른 가을 채소들은 힘든 시간이었다.
기후변화, 농부들의 경험치를 뛰어넘고 있다
사실 이런 급작스런 기후변화는 경험을 자산으로 여기는 농부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정말 그간의 모든 경험치를 뛰어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생각건대, 농사도 무언가 시대적 가치와 책임을 져야 한다.
돌아보면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님 세대는 그저 배고픔에서 해방이 우선이었다. 무엇보다도 양적 생산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후 세대는 질적으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지지 않았나 싶다.(아마도 생협이 대표적인 사례일 듯) 나아가 최근의 세대는 가치소비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 특히, 자연을 해치지 않는 지속가능한 환경적 농산물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 아무리 현대적 농업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다량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방식의 농사다. 친환경 유기농도 석유화학 부산물인 시설 농자재를 통해 다량의 화석연료를 소모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때론 산출보다도 투입된 에너지가 더 많아서 오히려 기후재앙 가속화에 일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 않거나 덜하는 방식의 농사
올해와 같은 폭염 더위가 내년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스스로에게도 동일한 규모의 농사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수월한 기계적 장비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지 않거나 덜 사용하기로 맘먹은 이상 아무래도 규모를 줄이는 게 맞겠다 싶다.
다양한 품목을 재배하거나 소규모 농사의 형태를 지속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유일한 대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는 작금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싶지 않다. 무엇 탓 혹은 누구 탓으로 돌려버리기는 매우 쉽다. 하지만 원인이 외부에서 비롯된다면, 그 문제의 해결도 외부에 있을 것이다. 도심 인근에서 소농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채소이웃들과 교류하며, 가급적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덜하는 방식을 지키는 것이, 어쩌면 급속히 망가져 가는 지구를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농사가 또 다른 내일의 사과나무를 심는 용기있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고양찬우물농장은 고양시 화정 인근에 3천여평의 밭과 논이 있습니다. 농장 일부 공간은 인근 이웃들과 시민농장으로 운영하며, 절기에 맞춰 다양한 행사와 공동체 농사 프로그램으로 회원들과 제철을 즐깁니다. 농약 화학비료, 검은 비닐 멀칭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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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도 쪽박도 없는 다품종 도시 소농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