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어스파머 | 이지현 뭐하농 농부 | 작물, 동물, 사람, 그 모두의 밭

 

자연과 농작물, 동물과 사람이 함께 모여 '농라이프'를 만들어가는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 이야기

2024-11-07 이지현



이지현 / 뭐하농 대표


농업회사법인 ㈜뭐하농의 대표이자 농부. 조경학을 전공하고 현재 박사과정 중이다. 대학원 졸업 후 연구원으로 살다가 갑자기 살고 싶은 인생을 찾아보겠다며 농촌으로 내려갔다. 농촌으로 내려와 인생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 그 즐거움을 혼자만 알고 있기 미안해서 농업의 즐거움과 농부의 철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한 분씩 괴산 뭐하농에 도착한다


아침 10시, 서울에서, 부산에서 한 분씩 도착한다. 한 달에 한 번, 뭐하농 멤버십이 모여 모두의 밭에서 활동하는 날이다. 어른들은 하우스에 깔아 놓은 돗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은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준비해 온 츄르를 먹이느라 정신없다. 오늘은 1년간 열심히 열매를 맺어 준 밭을 정리하는 날이다. 지난달까지도 아침 볕이 뜨거워 힘들었는데,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벌써 겨울이 오고 있고, 이제 1년이 끝나가는 실감이 든다.

2023 모두의 밭 전경. 사진_뭐하농
2024 모두의 밭 전경. 사진_뭐하농
왼쪽부터 동반작물 모듈, 갓 수확한 콜라비, 모두의 밭 정원에 핀 수레국화. 사진_뭐하농

작물 간 상생, 작물과 동물, 자연 속에서 사람의 역할을 찾는다


작년부터 뭐하농 멤버십과 함께 모두의 밭을 가꾸고 있다. 모두의 밭은 내 구역을 정해서 채소를 기르고 수확하는 밭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밭이다. 여기서 “모두”는 사람과 사람을 포함하여 식생 간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함께함도 포함한다. 작물 간의 상생 기작과 작물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사람의 역할을 찾으며 함께한다. 자연 순환 생태계가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또한 그 속에서 우리도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감사한 열매를 얻는 공간. 생산 공원으로서의 모두의 밭 안에서 우리는 자연을 피부로 온전히 느끼며 오늘의 시간을 살아가고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동반작물 모듈-옥수수와 호박. 사진_뭐하농

토마토와 바질이 함께 자라고, 민트 잎에서 향을 맡고, 토마토 몇 알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줄기를 정리하기 전, 찬 바람이 불 때까지 끝까지 맺어준 열매들을 수확한다. 팔뚝만한 가지는 맛이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풋풋한 향기가 좋다. 가지 옆에는 토마토와 고추가 함께 심겨 있다. 모두 가지과 친구들이다. 고추를 따며 잎도 따본다. 고추 잎은 알싸한 고추 향기 느껴져 향채소로 곁들여 먹으면 매력적이다. 토마토를 딸 때면 우리들은 토마토 잎을 한참 만지며 향기를 느낀다. 토마토 잎을 만지고 나면 하루 종일 내 몸에 초록이 덮인 듯한 기분을 만들어 준다. 토마토와 고추를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준 바질도 마지막으로 줄기까지 수확해 준다. 오늘 게스트로 함께 온 친구에게 토마토와 바질이 함께 자라면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아이들에게 민트 잎의 향을 맡게 해 주는 모습, 예쁘게 익은 토마토 몇 알을 꼬맹이들에게 나눠 주는 조금 큰 형아의 모습. 단순히 “밭일”을 하는 것이 아닌, 함께함을 통해 우린 많은 걸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모종 심는 날, 비가 와도 아무도 쉬지 않는다. 오른쪽 사진은 동반작물 모듈-딸기와 타임. 사진_뭐하농

함께 "맛있는 걸 먹는 것"


그래도, 일은 일이다. 아침부터 일어나 시골에 내려오고 흙냄새 물씬 맡으며 몸을 움직이면 배가 엄청 고프다. 그래서 나(뭐하농 대표)는 멤버십이 있는 날 하루 종일 공유주방에서 밥만 한다. 사람이 모였을 때 제일 중요한 건 “맛있는 걸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최선을 다해 밥을 짓는다. “맛”은 방금 따온 채소가 책임져 준다. 때문에 매달 새참 메뉴가 달라진다. 이른 봄은 아직 춥고 밭에 아무것도 없어서, 작년 겨울에 담가둔 김치로 뜨끈한 김치 국수를 하고, 5월부터는 그야말로 밭에 있는 아무거나 뜯어서 요리해도 “맛”이 난다. 막 자라나고 있는 채소들을 잘 뜯어와 쓱쓱 비벼 먹거나, 채소들을 작게 썰어서 튀기거나 볶으면, 집에서는 안 먹던 가지나 당근도 여기서는 잘 먹는다고 엄마들은 신기해 하고, 아이들은 서로 더 먹는다고 난리다. 거기에 종종, 다른 지역 출장 가셨다가 사 온 지역 디저트나, 지역 술들(그렇다, 우리는 낮술을 자주 먹는다), 또는 요즘 릴스에서 핫한—그러나 시골에서 구하기 힘든—그런 디저트를 가져오셔서 밥상에 함께 차려 놓는다.

멤버십 날은 배 터지는 날, 제철채소로 차린 밥상. 사진_뭐하농

다른 이유로 모인 남남이 1년 만에 손발이 척척


서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 함께 땀을 흘리고 함께 밥을 나누고, 그러다 보니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첫날부터 친구가 되었다. 뭐하농에 도착하면 자기들끼리 모여 막대기를 들고 쭉 탐방을 다니고, 곤충을 채집하고, 개구리를 잡는다. 아이들 옆에는 청소년 언니, 형아가 함께한다. 사춘기 친구들은 꼬맹이 동생들을 살뜰히 챙겨 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춘이 아이들의 따뜻함에 부모님들이 가장 놀라워하신다. 부모님들은 흙을 만지며 힐링하시는 것 같다. 제발 열심히 하지 말자고 얘기해도 너무 열심히 하신다. 청년 친구들은 귀여운 바람개비를 사와서 밭 사이에 꽂아 두기도 하고, 2년 차인 친구들은 거의 농부 수준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다들 잡초 뽑기에 몰입하며 “잡초”만을 주제로 30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지금의 순간에 몰입하며 함께 땀 흘리고 웃는다. 단지 시골이 좋아서, 귀농 생활이 궁금해서, 아이들과 자연에서 활동하고 싶어서, 고향이 없는데 시골에 가고 싶어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 각자 다른 이유로 모인 남남인 우리가 1년 만에 손발이 척척 맞는 사이가 되었다.

흙놀이터에 땅을 파고 물을 채운 아이들, 혼나는 건 나중에 하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사진_뭐하농

농부의 삶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행복하고 즐거울 줄 몰랐다. 그저 우리가 사는 농부의 삶이 좋고 재미있어서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게 농부의 삶이라고. 채소를 길러내는 게 농부의 일이 아니라, 땅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는 함께 농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땅을, 작물을 사랑으로 돌보며, 함께함을 감사히 여기고, 자연이 선사한 오늘의 시간을 즐겁게 누리고 있다.

밭에 쌀겨를 덮어 준다. 모두가 쌀겨를 처음 만져 봤던 날. 사진_뭐하농

밭에서 숨 쉬는 모든 것은 필요한 것


다음 달 김장에 쓸 배추와 무, 파 정도만 남기고 밭을 깨끗이 정리했다. 뽑은 줄기들로 밭을 잘 덮어준다. 줄기와 잎, 남은 열매들이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분해되어 땅에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덕분에 미생물 친구들도 엄청 신나게 흙 속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우리 멤버십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밭에서 숨 쉬는 모든 것 중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함께 살아가는 데 모두가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걸.

2023 뭐하농 김장. 올해는 식구가 늘어서 보쌈 준비를 더 해야겠다. 사진_뭐하농

오늘 새참은 가지튀김과 달달한 배추전, 그리고 튀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떡볶이와 어묵탕.

가마솥에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고 있고, 배추전과 가지튀김 냄새가 사방에 퍼진다.

오늘도 농부라서 행복한 순간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주)뭐하농은 자연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온전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인 농라이프를 제안합니다. 괴산에 있는 농라이프의 경험 공간인 '뭐하농 그라운드'에서는 제철채소 디저트 카페인 '뭐화농하우스', 자연순환형 생산공원인 '모두의밭', 공유주방 '팜키친', 공유창작공간, 숙박공간인 '뭐하농스테이'를 운영합니다. 농라이프 프로그램으로 월 1회 모이는 '라이프 파머', 축제로 즐기는 '농페스타', 농업의 가치를 공유하는 '농게더링', 채소+허브의 관계와 기작을 공부하는 '농밭 큐레이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인스타 @mohanong_official, 뭐하농하우스@mohanong_house, 농라이프디자인브랜드@evernmoment

페이스북 (14) Facebook

노을을 바라보며 하늘을 보는 아이들. 행복한 아이들을 보며 눈물 나게 행복한 순간. 사진_뭐하농
반딧불을 보는 날. 먼저 반딧불 농부의 강의를 듣는 시간. 사진_뭐하농
날씨 좋은 가을에 일만 하지 말고, 기분 좋게 다 같이 한잔. 사진_뭐하농
동반작물이 함께 심겨진 밭은 그림 같이 아름답다. 모두 다른 향과 다른 색을 지니고 함께 살아간다. 사진_뭐하농

댓글 1개

1 Comment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Guest
Nov 12

젊은 농부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Lik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