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4 박성미 기자
국내 45개 환경단체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지난 2024년 9월 26일(목) 양양군청 앞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백지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30여 분간 침묵시위가 이어졌다.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모든 생명이 공멸한다는 것과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한국환경회의는 관련 동영상을 제작해 10월 25일부터 환경단체를 비롯한 전 온라인 채널에 배포를 요청했다.
수십년간 문화재청, 환경부, 국립공원공단까지 모두가 반대했던 사업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지구에서 설악산 끝청까지 3.3km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환경보전'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며 오랜 논쟁을 이어 왔다. 이 사업은 1982년 강원도가 처음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요구하면서 시작됐으나, 환경 파괴와 자연 훼손에 대한 우려로 여러 차례 중단되었다. 1982년 강원도는 설악산에 두 번째 케이블카를 설치하려 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부결로 중단되었다. 20년간 잠잠하던 케이블까 사업은 2011년 3월 양양군이 환경부에 설악산국립공원 계획 변경안 승인을 요청하며 다시 등장했다. 당시 계획은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의 4.6km 노선이었으나, 경제성과 상부 정류장 위치 부적합성 등의 문제로 환경부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2012년 11월 상부 정류장을 관모능선으로 변경하여 재신청했으나, 2013년 국립공원위원회는 해당 지역이 산양 서식지임을 이유로 또다시 부결했다.
행정심판으로 넘어간 환경보호와 지역 경제
2015년 4월 양양군은 오색에서 끝청까지의 노선을 3.5km로 줄여 재신청했고.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는 상부 정류장 위치를 낮추고, 서식지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공사 중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승인을 해주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2016년 12월 환경과 동식물 서식에 미칠 영향을 들어 문화재 현상변경안을 부결했다. 양양군은 이에 맞섰고 2017년 문화재청 부결 처분에 대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2017년 6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양양군의 손을 들어주었고, 문화재청도 조건부 허가 결정이 해주게 된다. 2019년 9월에는 환경부가 자연 훼손을 우려해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양양군은 2019년 12월 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2020년 12월 29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이번에도 환경부의 부동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려 양양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유는 환경부가 제시한 생태계 훼손 우려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고, 경제적 이익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더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3년 2월 27일 환경부는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절차를 완료하고 조건부 협의 의견을 양양군에 통보했다. 양양군은 그해 11월에 착공식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케이블카 사업 실패는 지방 재정 악화로 이어져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케이블카는 41개다.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개통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수익이 발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광객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케이블카 사업은 속성상 초기 투자가 높고 유지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행해 불확실한 이용량으로 적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경남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는 2008년 개통해 초기 10년 동안 연간 이용객 수는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7년 141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2017년 매출은 7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관광객 수는 급감했고 2023년에는 42만명으로 줄었다. 2023년 통영 케이블카는 3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남 사천의 각산~초양도 케이블카는 2018년 개통해 그해에 17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관광객 감소로 2023년 매출이 64억원으로 급감했다. 지속적인 운영비와 관광객 감소로 인한 적자는 사천시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강원 삼척 용화~장호 해상 케이블카는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2023년에는 20만명이 이용했으며, 이는 예상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로 인해 삼척시는 예상했던 수익을 실현하지 못해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 경남 하동의 케이블카는 2022년 개통 이후 1년 만에 78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전남 해남-진도의 명량해상 케이블카는 2021년 개통했는데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했었다. 실제 이용객은 연간 20만명도 넘지 못했으며, 2023년에는 15만명에 불과했다. 3년간 누적 적자는 무려 148억원 달했다.
케이블카 사업이 성공한다는 기대가 무너지면, 지역 주민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어
지방정부는 왜 이렇게 케이블카 사업에 집착할까. 이유는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사안까지 복합적이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지역 경제 구조상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설악산을 비롯한 지역 관광 자원을 활용한 관광 인프라 개발은 지역 경제 활성화의 핵심 전략으로 여겨진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케이블카가 설치될 경우 연간 수십만명의 추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지역 내 상업, 숙박, 음식점 등의 경제 활동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지역민을 설득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 내의 일부 군 지역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가 심각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패할 경우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강원도와 양양군의 지역 정치인들에게 케이블카 설치 개발은 중요한 선거 공약 중 하나다. 케이블카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될 수 있고, 성공하면 지역 정치인의 정치적 성과로 기록될 수 있다. 전국의 케이블카 운영 사례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실패와 관광 수익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는 이러한 실패를 각 지역의 특수성으로 치부하고, 자체 케이블카 사업은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 산림을 보호하고 탄소중립을 위해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전 세계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인구소멸의 문제가 생존의 문제이고 생계의 문제다. 정치인은 임기가 지나면 사라지지만 지역 주민은 평생을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단기적 효과와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사업은 지역 주민에게는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의 바램은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케이블카가 아닌 국립산림복원센터를 유치해 산림자원을 복원하는 일이다. 탄소중립에 기여하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며, 새로운 인구가 유입될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41년을 묵혀 온 케이블카 사업 말고 새로운 사업은 없는가.
설악산을 그대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은 본질적 질문에 답해야 할 때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양양군은 1172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했다. 양양군의 한 해 예산이 약 4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사업이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재해 대응과 같은 긴급한 예산 수요 대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케이블카에 과도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주민들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설악산과 같은 자연보호 구역은 더욱 중요한 보호 대상이다. 케이블카 설치로 인해 산림 훼손과 생태계 파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위험을 더욱 높일 수 있다.
환경단체들은 케이블카가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이득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부적절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작년 2023년 10월 13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양양군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공원사업 시행 허가를 승인하자, 지난 2024년 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9월 춘천지방법원은 허가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소송에 참여한 1107명의 원고 중 다수의 환경단체 회원들이 소송을 제기할 법적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각하, 설악권 주민 30여명의 원고 자격은 인정되었으나, 사업 허가를 취소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고 보고 소송을 기각했다. 환경단체들은 항소를 통해 설악산을 지키기 위한 법적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등 추가적인 법적 절차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권리, 자연의 권리, 기후위기 시대의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지역주민들을 더이상 희망고문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