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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1타 중국 철학자 |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중국 철학사에서 ‘추상의 의미’를 계승하고자 했던 풍우란은 문화혁명 과정에서 ‘추상’이 유물론에 반한다며 얼토당토않는 모욕과 치욕을 당한다. 이 시기 풍우란은 수신(修身)하며, 즉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모든 기운’을 닦으며 때를 기다린다.


2025-1-3 윤지산

윤지산

퇴락한 고가에서 묵 가는 소리와 대나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선조의 유묵을 통해 중국학을 시작했고, 태동고전연구소에서 깊이를 더했다. 한양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인민대학교 등지에서 공부했다. 『고사성어 인문학 강의』,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한비자 스파이가 되다』 등을 썼고, 『순자 교양 강의』,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 『어린 왕자』 등을 번역했다. 또 『논어』, 『도덕경』, 『중용』을 새 한글로 옮겼다. 바둑에 관심이 많아 〈영남일보〉에 기보 칼럼을 연재했다. 대안 교육 공동체, 꽃피는 학교 등 주로 대안 교육과 관련한 곳에서 강의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칩거하며 장자와 들뢰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무의식을 탐구한다.

 

복잡한 인물,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복잡한 인물이다. 명민하고 민첩할 때도 있고, 단순하고 우직할 때도 있다. 이 상반된 성격이 위기 때마다 절묘하게 빛을 발한다. 상황을 파악해 대체를 잘한다는 뜻이다. 적이 강하고 많으면 재빠르게 치고 빠지고, 적이 군세를 믿고 성급하게 달려들면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완급 조절할 줄 알아야 명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마오쩌둥은 자질은 천부적(天賦的)이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난세의 영웅이 치세의 성군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말을 타야만 천하를 쟁취할 수 있지만, 말 안장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는 법(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 사슴 사냥이 끝나고 가면 갈수록 헛발질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역사의 명언이 그냥 흘러가는 말만 아닌 것 같다. 마오쩌둥도 “대약진운동” 이전까지 나름대로 성군(聖君)의 자질을 보인다. 전장의 포연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취미는 독서(我一生最大的愛好是讀書), 하루 밥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지만, 책은 하루도 읽지 않으면 안 된다(可以一日不吃, 可以一日不睡, 書不可以一日不讀-『毛澤東選集』 )” 같은 격언을 남겼다.


추상계승법, 시련의 시작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소위 쌍백(雙百) 방침도 나름의 통찰에서 나왔다.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지식인의 적극적, 능동적 참여가 절실했다. 입을 잘못 열면 목숨이 담보할 수 없는 시국이라, 모두 붓을 꺾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굳이 ‘사슴과 말을 구별해야 하는 모욕을 감내하면서(指鹿爲馬)’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질 필요가 있겠는가? 때로는 눈은 감고 귀를 닫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에 “학파는 189개, 서적은 4322종”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치열하고 자유로웠다. 쌍백 방침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자 그동안 정국을 살피던 풍우란은 1957년 1월 8일 광명일보(光明日報)에 「중국 철학 유산의 계승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한다.  “과거 나는 중국철학사의 철학적 명제 중 추상적 의의만 주목해 왔다. 최근 몇십 년 비로소 나는 구체적 의의에 살펴보게 되었다. … 그러나 구체적 의의만 집중한 것은 옳지 않다. … 추상적 의의도 눈여겨보아야 한다.”(『三松堂文集』)


인간을 깊이 신뢰했든지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몰랐든지, 풍우란은 상대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한다. 보스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라’라고 했을 때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내 심기를 건들지 마라’라는 묵계이다. 국내 모 굴지의 대기업 임원 회의에서, 회장이 ‘자기를 비판하는 말이 없고 아부만 한다’라고 불같이 화를 내자, 직언했다가 다음 날 책상이 없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세상에 전한다.


이후, “추상(抽象)”이라는 표현 자체가 문제가 된다. “유물론(唯物論)”과 반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物質)”이라고 할 때, 이 ‘물질’을 어떻게 정의할지 절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철학, 문학, 회화, 음악 모두 인간의 손끝에서 나온다. 도구도, 기계도 손으로 만든다. 그런데도 전자는 추상적이고 후자는 구체적인가? 정신과 육체는 둘인가? 아니면 하나인가? 정신은 육체의 주인인가? 아니면 육체가 정신을 이끄는가? 철학사에서 이런 질문은 낡고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이다. 이러한 철학적, 역사적 배경은 무시된 채, 오직 ‘추상’이라는 말만 꼬투리 삼아 문혁(文革) 내내 풍우란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자산 계급의 관점, 수정주의’이라고 홍위병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북경대 교정을 빗질해야 했다. 풍우란는 얼토당토않은 이 시련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지뢰복괘


지뢰복(地雷復)괘

각 월(月) 상징하는 괘를 ‘벽괘(辟卦)’라고 하는데, 음력 11월 즉 양력 1월은 ‘지뢰복괘’이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찬 기운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다. 그러나 세상이 온통 ‘음(陰)’일 수는 없다. 모든 생명이 얼어붙은 시기에도 ‘양(陽)’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 땅속에 우레가 때를 기다리고 있는 형상이다(雷在地中).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서 희망의 끈이 살아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괘상(卦象)을 보면, 맨 아래가 양효이고, 위가 모두 음효이다. 음효 다섯 개가 양효 하나를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시기에는 몸과 정신을 가다듬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소위 “수신(脩身)”을 해야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身)’을 속류(俗流) 유물론처럼 ‘물질(物質)’로 읽지 마시길 바란다. 또한 심신(心身) 이원론의 한 줄기인 ‘육체(body)’로도 독해하지 마시라! 차라리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모든 기운’이라고 읽는 편이 좋겠다. 양의 기운이 차차 자라나 곧 봄이 온다. 풍우란은 철학자이다. 어찌 『주역』을, 우주의 질서(cosmos)를 몰랐겠는가! 은인자중(隱忍自重), 삿된 기운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오직 『중국철학사』를 고쳐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모욕과 치욕도 감내한다.


왕을 쫓아내는 것만으로 참된 혁명이 도래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3일은 음력으로 11월 3일에 해당한다. 묘한 일이다. 그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진정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맹자 주장처럼 ‘왕을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참된 혁명이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혁(革)’과 ‘표변(豹變)’ 대해서 다루겠다. 을사년(乙巳年) 한 해, 복된 기운이 가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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