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학자들과 중국 철학자들과의 인연을 살핀다. 이상은, 정인재, 김병채, 이강수, 김충렬, 김용옥 등 한국의 철학자들과 중국의 철학자 모우쫑산, 천리푸, 팡둥메이의 학맥을 살피고, 이제 인연을 넘어 철학의 본령인 비판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2025-02-06 윤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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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산
퇴락한 고가에서 묵 가는 소리와 대나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선조의 유묵을 통해 중국학을 시작했고, 태동고전연구소에서 깊이를 더했다. 한양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인민대학(人民大學) 등지에서 공부했다. 『고사성어 인문학 강의』,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한비자 스파이가 되다』 등을 썼고, 『순자 교양 강의』,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 『어린 왕자』 등을 번역했다. 또 『논어』, 『도덕경』, 『중용』을 새 한글로 옮겼다. 바둑에 관심이 많아 〈영남일보〉에 기보 칼럼을 연재했다. 대안 교육 공동체, 꽃피는 학교 등 주로 대안 교육과 관련한 곳에서 강의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칩거하며 장자와 들뢰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무의식을 탐구한다.
<등관작루(登鸛雀樓)>
새해 시 한 수 전한다. 당나라 왕지환(王之涣)의 <등관작루(登鸛雀樓)>이다.
白日依山盡 백일의산진
黃河入海流 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 욕궁천리목
更上一層樓 갱상일층루
해는 산 너머 뉘엿뉘엿
황하는 바다로 흘러가네
천 리 끝까지 보고자
한 층을 더 올라가네
연기(緣起)의 그물
우리네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인연의 그물을 얽혀 있다. 그래서 변화 혹은 혁명을 받아들이기도 주도하기도 어렵다. 날줄을 단칼에 자를 수도 없거니와, 설령 끊더라도 씨실이 득달같이 옭아맨다. 어쨌든, 자기 혁명 없이는 성공도 성장도 없다. 새해는 주변의 소란을 잠시 물리치고 한 층만 더 올라가 보자. 천 리 길도 발아래에서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千里之行, 始於足下-『도덕경』)
천학(淺學)의 부끄러움을 잊고, 주제넘은 소리를 한 까닭이 있다. 이 글을 쓰면 쓸수록 인연이라는 것이 새삼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펑유란의 『간명한 중국철학사』(마루비), 차이런호우(채인후蔡仁厚)의 『중국 철학사』(동방의 빛) 등을 번역하신 정인재(1941~2024) 선생이 작년에 작고하셨는데, 선생을 중심으로 학연(學緣)을 되짚어보니 ‘과연’이라는 말로 절로 터져 나왔다.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은 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 철학을 공부하려면 대만으로 유학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선생이 대만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중국 철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다. 또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중국어를 쉽게 배울 수도 없었던지라 유학 자체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었다. 이 무렵을 전후로 한양대학교 김병채, 연세대학교 이강수, 고려대학교 김충렬, 김용옥 선생 등 많은 분이 대만으로 유학한다. 이분들이 귀국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서야 한국에서 ‘중국 철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개막한다. 김용옥 선생을 제외하고 이제 모두 고인이 되셨다. 대만 유학 1세대가 저문 것이다. 이들 모두 고려대학교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것도 특이한 점이다. 후대 사가들이 이분들을 ‘안암학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중국 철학자를 이렇게 많이 배출한 근원이 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북경대학교에서 공부한 이상은(李相殷, 1905~1976) 선생이 고려대학교에 자리 잡은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경로 이상은(卿輅 李相殷)
어려서 한학을 수학한 이상은 선생은 일제 폭정을 피해 북경으로 유학한다. 난카이(南開) 중학을 거쳐, 1925년 북경대학교 예과에 입학, 1927년 철학과를 선택하고 1931년에 졸업한다. 수학(修學) 기간 동안, 후스(호적胡適)의 철학 강의와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로부터 직접 영향으로 받았다고 한다(펑종푸 지음, 은미영 옮김, 『나의 아버지 펑유란』에 실린 정인재의 글, '나와 펑유란의 『중국철학사』'). 이때 그는 향후 한국의 중국 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우쫑산(모종삼牟宗三, 1909~1995)을 만난다. 이때만 하더라도 이상은도 모우쫑산도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日帝)가 언제 패망할지, 또 마오쩌둥이 중국의 패권을 차지할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상은과 모우쫑산의 이러한 인연이 있어서, 당시 대만으로 간 한국 유학생은 모우쫑산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 정인재는 천리푸(진립부陈立夫)에게 학위를 받았지만, 모우쫑산의 고제(高弟) 차이런호우와 깊은 친교를 맺는다. 그래서 상기한 번역서가 나온 것이다. 천리푸라는 인물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장제스(장개석蔣介石)의 비서 출신으로 대만 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중국 공산당의 이론을 갈고 닦았던 천붜다(진백달陳伯達)가 중국을 망치는 부패한 인물로 4명을 꼽았는데 그중에 천리푸가 들어간다. 4대 주적이란 장제스, 송쯔원(송자문宋子文), 콩샹시(공상희孔祥熙), 천리푸를 말한다. 송쯔원은 장제스와 처남이고, 콩샹시는 장제스의 손위 동서이므로 이들은 송씨 가문을 중심으로 친족의 연을 맺고 있지만, 천리푸만 예외이다. 유비 휘하의 조자룡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적장이 맹공을 퍼부었겠는가! 정치적 지위만큼이나 학문적 위상도 대단했다.
팡둥메이(方東美)
모우쫑산, 천리푸 이외에 또 한 분이 중요하다. 바로 팡둥메이(방동미方東美, 1899~1977) 선생이다. 세간에 잘 알려졌듯, 팡둥메이는 김충렬, 김용옥과 사제 관계에 있다. 『중국인이 보는 세계』(팡둥메이 지음, 정인재 옮김, 이제이북스), 『원시 유가 도가 철학』(팡둥메이 지음, 남상호 옮김, 서광사) 같은 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현대 신유가를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어쨌든, 모우쫑산과 팡둥메이 두 선생이 국내 중국 철학자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1992년 이후 대륙으로 유학 간 이들도, 이들의 제자에게 먼저 배웠으므로, 재전(再傳) 제자로 학맥을 잇는 셈이다. 이들 3세대도 정년을 했거나 앞두고 있다. 한국도 이제4세대로 접어든다. 성리학이 퇴계에서 만개했듯이, 성리학의 잣대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중국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한 지 3대가 지나가고 있다. 한국인의 저력과 잠재력으로 본다면 반드시 꽃을 피우리라.
족보 같기도 한 학맥을 먼저 짚은 것은 철학의 본령과 관련이 있어서이다. 어떤 학파라도 입문하면 고유의 비전(祕傳)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때론 이것이 발목을 잡는다. 철학의 요체는 맹신과 복종이 아니라, 비판이다. 제가 속한 학파에 칼끝을 겨눌 수 있겠는가? 조선조 내내 ‘리(理)의 운동’에 관한 논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학파와 가문이 탓이 크다. 아버지를, 스승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철학은 생명을 잃는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무슨 철학인가? 이들에게 “살불살조(殺佛殺祖)” 같은 우상을 파괴하는 퍼포먼스가 없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며, 참신한 정보도 개발하지 못한다. 이 비판에서 필자도 자유롭지 못함을 미리 밝혀 둔다. 위에서 열거한 분들과 필자 역시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제 질긴 인연들을 끊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철학의 본령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
지난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