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가 문명개화기이고, 친일파가 선각자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이, 왜 '역사 쿠데타'인지 그 근거를 제시한다
2024-11-07 박한용
편집자 주
우리는 매일 참혹한 전쟁의 소식을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전쟁 당사자들의 첨예한 선전전을 그대로 보도한다. 그 누구의 말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주장들이 혼미하다. 이럴 때 우리는 지나 온 인간의 역사에 기대어 진실을 가늠한다. 현상을 드러내는 최접점의 기록들을 살펴 실상을 밝히고, 언설과 행위가 의도한 바를 반추해 시비를 가린다. 이를 통해 공동체가 나아갈 관점을 곧추세우기도 한다. 일제와 맞섰던 우리 근현대사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해 우리가 나아갈 관점으로 세웠다. 그런데, 다른 목소리가 권력과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일제가 조선을 문명개화시켰고, 대한민국 근대화의 물적, 인적 기반을 형성했으며, 더하여 해방 후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하자고 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개인의 영역으로 비하한다. 그 주장의 중심에 '뉴라이트'가 있다. 이들의 주장은 타당하고 마땅할까? 우리가 쌓아온 관점에 변화를 줘야 할까? 그래서 뉴라이트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집중 살핀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역사의 실상에 부합한지를 검토한다. 오랫동안 일제강점기를 연구해 온 필자는 다섯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펼친다.
박한용 | 역사평론가, 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반제동맹 조직운동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순천향대·한성대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대학원 강사,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교육홍보실장 등을 거쳤다. 주요 논저로 「1920년대 후반 국제반제동맹의 출범과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의 대응」, 『일제강점기 친일세력 연구』(공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공저),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변준호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영주독립운동사』(공저), 『시와 이야기가 있는 우리 역사 1, 2』(공저) 등 다수가 있다.
역사 쿠데타의 주범들, 뉴라이트
최근 윤석열 정부의 ‘친일’과 독재 미화는 도를 넘어섰다. 반공과 경제성장을 앞세우고 박정희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것은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 세력의 오랜 단골 주장이기에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래 윤석열 정부에 이르는 역대 수구 정권은 여기에 더해 ‘친일 매국행위’에 가까운 역사 왜곡마저 서슴지 않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역사 쿠데타의 주범들이 바로 ‘뉴라이트’들이다. 윤석열 정부와 일체가 된 이들의 주요 주장의 한국 근현대 백 년의 역사 전체에 걸쳐 있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만 들어보자.
조선을 문명개화시켰다?
먼저 이들은 일제 덕분에 한국이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 문명개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뉴라이트 세력의 대부격인 이영훈이 집필한 공무원 교육교재인 『경기도 현대사』(2013)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조선을 "문명개화"시켰는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요컨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는 동안 한국 사회는 슬슬 근대문명의 사회로 바뀌었다. …… 그(서유럽_인용자) 근대문명의 법과 제도가 일본의 지배를 통해 한국으로 이식되었다. 근대문명의 핵심 요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이다. …… 대한민국은 그러한 ‘문명사의 대전환 과정에서 생겨난 국가이다.”(『경기도 현대사』, 49쪽)
대한민국 근대화의 물적 기반을 남겼다?
이와 함께 오늘날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은 일제강점기 일제 식민 통치 당국의 ‘근대화’ 정책 덕분이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전면에 들고나왔다. 즉 일제가 각종 근대제도를 도입하고 철도·도로·항만·공업화·농지 정비 등 물적 인프라스트럭처를 확충해 해방 후 대한민국 근대화의 물적 기반은 남겨 주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는 비하, 친일파는 선각자?
이들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자연스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비하로 이어졌다. 이들은 임시정부 주석인 김구를 ‘테러 활동에 종사한’ 인물로 비하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주역 중 한 명인 홍범도 장군을 느닷없이 ‘빨갱이’라고 몰아세워,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던 그의 흉상마저 철거했다.
반면 조선총독부 등 일제 식민 통치에 적극 부역한 친일파들에 대해서는 뉴라이트 세력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고 있다. 이들은 친일파들이 조선총독부 등에 참여하면서 근대국가 운영 경험을 체득했고, 해방 후 이승만 정부가 이들을 중용한 덕분에 대한민국은 빠르게 효율적인 근대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친일파는 민족반역자가 아니라 근대화의 선각자이자 건국의 아버지들인 것이다.
임시정부는 국가를 운영한 적 없다?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과 친일파 찬양은 범정부적인 ‘건국절 제정’ 음모로 나아갔다. 이명박 정부 집권 시작인 2008년부터 본격화한 ‘건국절 제정’의 내용은,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절을 없애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새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발행한 『건국 60년』(2008년)이라는 건국절 홍보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을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실효적 지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임시정부 법통성 부정)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광복절을 폐지하고 건국절 제정 시도)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건국의 아버지?
이 주장에 따르자면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간이 ‘대한민국 건국운동기’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하고 관계없으며, 해방 후 3년간의 좌우갈등에서 신탁통치 반대와 반공 투쟁을 통해 건국되었다고 해,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을 분리시켰다. 대신 해방 3년 동안 반공을 앞세운 우익과 극우 세력(서북청년단) 그리고 친미·반공에 빌붙은 친일파와 친일 군·경찰 출신자들이 건국공로자라는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둔갑시켜 포상하자는 것이 건국절 음모이다.(참조: <건국공로자예우에 관한 법률안>, 2008. 12, 한나라당 안)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의 법통성을 계승한 것?
참으로 고약하게도 건국절 제정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해 뉴라이트 세력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마저 합법화하고 있다. 뉴라이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와 영토와 국민 그리고 국제적 승인이라는 네 가지 국가의 성립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고 하면서 사실상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했다. 또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복지부 장관은 일제강점기 한국인은 국제법상 일본 국적자들이었다고 해, 사실상 일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당시 한국인의 독립운동은 국제법상 반국가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법일 수밖에 없다. 원천적으로 독립운동을 부정한 것이며, 현재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대일본제국)의 ‘법통성’을 계승한 것이 된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국부?
나아가 뉴라이트 세력들은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송하면서, 우상화에 나서고 있다. 2024년 광복절을 앞두고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은 정부의 지원으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용산가족공원에 이승만기념관을 세우기로 했다. 국민의 피의 심판을 받고 하와이로 도망친 독재자이자 민간인 학살자인 이승만을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가 손잡고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신화화에 나서고 있다.
친일매국, 신친일파 정권이 역사 쿠데타를 일으키다
문제는 현 윤석열 정부가 뉴라이트 세력을 자신의 정권 기반으로 품에 안으면서, 이 황당한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뉴라이트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이들의 주장을 공권력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매국 정권. 신친일파 정권이 본격적인 역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 다음 회에서는 뉴라이트가 장악한 윤석열 정부의 역사 매국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겠다.
의미 있는 연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