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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권의 동아시아 종과 횡 | 동아시아 평화의 조건과 ‘대동아지정학’적 사유의 충돌

 

2024-10-18



송병권 / 상지대학교 교수


2011년 일본 토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7년간 편사연구사로 일했고, 다음 7년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사연구소,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2020년에 상지대학교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주의, 지정학, 경제사, 정치사상, 국제관계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2021),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 전시기에 대한 조명』(공편저, 2014), 『근대 한국의 소수와 외부, 정치성의 역사』(공저, 2017)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공역, 2020),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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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년, 그중 동아시아는 45년이나 전쟁을 겪었다


봉직하는 대학에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라는 교양 과목을 몇 년간 강의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1840년, 1856년에 발발한 두 번에 걸친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1950년 한국전쟁, 1955년 베트남전쟁 등 정말로 많은 전쟁이 발발했음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여기에 미처 포함하지 못한 다른 국지전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아편전쟁이 발발한 1840년부터 베트남전쟁이 종결된 1975년까지 135년 중 대략 45년간 동아시아 지역 어디에서는 난리를 겪고 있었는데, 이는 전체 기간 중 대략 33.3%에 해당한다. 전체 기간 중 3분의 1이 전쟁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 기간이 너무 긴 듯하여, 이를 2024년을 기준으로 한 184년으로 다시 계산해도 대략 24.4%에 해당하는 기간이 난리 중이었으니, 지금 우리가 평화 속에 있는 것 아니냐고 정신 승리를 하려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전쟁에 한반도 지역이나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전쟁은 최대 28년간이므로, 1975년과 2024년을 기준으로 하면 각각 20.7%와 15.2%에 해당하므로, 더더욱 남의 이야기가 아니겠다. 이렇게 장황하게 전쟁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조건을 생각해보고자하기 때문이었다.


독일과 일본의 ‘유기체 국가론’, 영국과 미국의 ‘지리적 전략론’


전쟁이 왜 발발했는가에 대한 많은 설명들 중 지리와 정치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지정학적 설명이 많이 거론되기도 한다. 지정학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로는 국가의 성장에 따른 생활공간(Lebensraum)의 확대를 정당화하는 유기체 국가론을 들 수 있다. 독일을 주무대로 등장한 이 논의는 국가를 나무와 같은 일종의 유기체로 상정하고 유기체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양분을 공급할 토양이 더욱 필요해진다는 직관적인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기체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토양 즉 영토 팽창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다. 유기체 국가론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대외침략 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를 지정학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리적 전략론을 들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처음에는 독일 제국의 팽창에 대응하여, 이어서는 러시아 제국의 팽창에 대한 대응으로, 이들 대륙세력의 팽창을 억제하려는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이 자국의 세계적 수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에서 등장했던 논리였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 대륙세력으로 규정된 소련을 해양과 연안에서 포위하여 그 팽창을 막기 위한 미국의 봉쇄정책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 경향: 스털링 블록(영), 유럽-아프리카 블록(나치), 먼로주의(미), 아시아 먼로주의(일)


한편, 이러한 지정학 논리는 일국의 성장과 확장과 이에 대한 억제라는 국익을 기반으로 한 논의에 더해서,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지역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시아 태평양전쟁기에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설정하고 이를 ‘대동아지정학’이라는 논리로 자기정당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 국제주의적 정치, 경제체제를 복원하려던 시도가 세계대공황의 충격과 함께 붕괴하면서, 세계열강은 자국의 식민지나 영향권 내에 들어와 있는 지역을 지역 단위로 재편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영국은 스털링 블록을 만들어 자국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국의 식민지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려 하였고, 나치 독일은 유럽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한 유럽-아프리카 대륙 블록을 설정하려 하였다. 미국은 먼로주의를 주창하며 아메리카 대륙을 자신의 지역적 영향권에 붙잡아 두려 하였고, 소련은 주변의 공산권 국가들과 사회주의 블록을 만들었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은 아시아 먼로주의를 주창하며 ‘대동아공영권’을 설정하기 위해 분주했던 것이다. 세계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수립된 국제연맹이란 조직의 허망한 결말 속에서 각자도생하던 강대국들은 각자 지역 단위의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 지역과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이것이 세계적 수준의 평화를 보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상상했던 것 같다. 이렇게 4개의 세력으로 세계가 분할되었지만, 각 지역이 폐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는 어려울 터였다.


혈연이 지연으로 확장한, 일본의 ‘대동아민족’


이것은 ‘대동아지정학’의 대상 중 공간과 관련된 논의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더해서 새로운 민족의 창출과 관련된 논의가 덧붙여져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일본은, 자국을 넘어서 아시아 지역으로 공간이 확대되자, 혈연을 기반으로 해서는 아시아 여러 민족을 통합하여 하나의 지역 공동체로 통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혈연은 지연으로 확장되었고, 종국에는 동양문화로 확장되면서, 아시아 여러 민족을 통합한 ‘대동아민족’을 상상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일본의 ‘대동아지정학’적 논리의 지향점은 지역 내 평화를 확보하고 유지하면서, 다른 열강들과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한때 유행했던 ‘동아시아공동체’와 관련된 여러 논의와 놀랍게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잘 보여 주는 만주국 선전 포스터로 아시아인 뿐 아니라 유럽인도 보인다.1930~1945년 사이에 제작. (위키커먼즈)

지역 지도국으로서 일본이란, ‘상대적 국가평등론’


지난 역사는 지역주의에 대한 보편적인 논의 속에서 평화의 조건을 찾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놓치고 있는 부분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 내 각 민족과 지역, 그리고 국가의 공존공영과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그것을 ‘지도’할 주체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지역 내 불균등 발전을 전제로 지역 개발을 추동할 주체로 지역 내에서 가장 발전을 이룬 일본이 지도국으로서 등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즉, 강대국의 ‘패권’ 문제는 지역주의 논의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이는 국가평등에 관한 논의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전시기 일본이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를 ‘해방’하여 형성될 ‘대동아공영권’ 지역에 포함된 여러 나라들의 주권에 대한 국제법적 논의는, 역시 ‘대동아국제법질서’라는 논리 속에서 국내법에 대한 국제법 우위론을 전제로 ‘상대적 국가평등론’을 제시하면서 지도국으로서의 일본의 우위를 재확인하고 있었다.


미국을 지도국으로 인정한 지역주의, 강대국의 국익과 봉쇄정책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이 ‘상대적 국가 평등론’과 국제법 우위론에 입각하여,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인정하여, 이제는 미국을 지도국으로 인정하는 지역주의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소련을 지도국으로 둔 사회주의 체제와 미국을 지도국으로 둔 자본주의 체제로 동아시아 지역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 심지어 한반도는 두 개로 쪼개지기까지 했던 동아시아 냉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역 수준에서의 분단 상황은 지정학의 두 번째 흐름인 지리적 정책론에 입각한 봉쇄정책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초월한 강대국의 ‘국익’의 대립, 그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전개된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이미 ‘이데올로기의 종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그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그들의 지역주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만 할 것인지


최근 들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더욱 거세지는 미중 간 대립과 갈등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의 지역주의적 분할 상황을 보며, 지역주의적 논의가 평화의 조건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지도국이 되려는 강대국을 포함한 한미일 동맹의 강화와 북중러 동맹의 강화를 가져올 뿐은 아니었는지, 결국은 지도국의 우위를 전제로 한 지역주의적 분단 상황이 이 지역 평화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는지, 여기에서 한반도의 두 지역은 지금과 같은 지역주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만 할 것인지 다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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