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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동아시아 종과 횡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일본 보수주의의 두 얼굴

 

2024-10-04



송병권 / 상지대학교 교수


2011년 일본 토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7년간 편사연구사로 일했고, 다음 7년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사연구소,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2020년에 상지대학교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주의, 지정학, 경제사, 정치사상, 국제관계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2021),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 전시기에 대한 조명』(공편저, 2014), 『근대 한국의 소수와 외부, 정치성의 역사』(공저, 2017)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공역, 2020),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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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장기 집권, 파벌 정치의 틈새에서


이번에 새로 일본 총리가 이시바 시게루는 ‘4전5기’의 불굴의 인물이다. 이시바는 9월 27일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새로운 총재를 뽑는 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치르며 역전에 성공했고, 마침내 총재 자리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비록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선거로 이뤄졌지만, 일본 정치의 특징 중 하나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은 건재했다. 자민당의 ‘일당 독재’ 상황은 1980년대 이래 그 아성이 일정 정도 흔들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야당의 견제보다는 만년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 여러 파벌 간 경쟁과 상호 견제가 일본 정치에서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확보했던 이시바도 자민당 내 다수 유력 파벌의 지지를 받지 못해 오랫동안 총재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자민당 파벌 비자금 조성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20%로 떨어진 키시다 후미오 수상이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자민당 내부의 파벌 해소 요구에 대응해야 했던 상황에서, 여전히 파벌 정치의 구속력은 존재했지만, 그 틈새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월 1일에 개최된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제102대 일본 총리가 된 이시바가 이끄는 새로운 내각은 단번에 무려 50.7%의 지지율을 확보했다. 정권 초기의 기대감을 반영한 이러한 허니문 기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조기 총선에 돌입하여, 정치적 지반을 다지려는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


10월 1일,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총리 지명 투표가 실시되었고, 이시바 시게루 의원이 제102대 일본 내각총리로 지명되었다. (사진_수상관저首相官邸 홈페이지)

과거사는 '비둘기파', 안보관은 '매파'?


이시바는 일본의 한국 침략이 한국 국민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상처를 주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일 간의 진실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며, 일본의 패전 이후 전쟁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이는 등 역사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자민당 내에서도 이색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일본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상황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다른 한편, 이시바의 또 하나의 지론이란 할 수 있는 안보정책에 대해서는 불신에 가득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시바가 주창하는 ‘아시아판 NATO’의 창설론, 원자력 잠수함 보유론, 미국과의 핵공유론, 일본 자위대의 국군화와 이를 위한 헌법 개정 추진론 등과 같은 점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바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모습을 통해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모습과 함께, 제국주의 시기에 과거사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던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려는 모습이 서로 상충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과거사 인식과 관련해서는 ‘비둘기파’로, 안보관과 관련해서는 ‘매파’로 분류하여 이해하는 것은 보수주의 정치인 이시바를 이해하는데 오히려 곤란함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습은 사실은 이시바가 가진 내셔널리즘의 양 측면이며, 곧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일본 보수주의의 모습이기도 하다.


군사력을 보유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보수주의의 흐름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보통국가’ 즉 군대를 보유한 강대국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신뢰 관계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가 안보 문제에서 일본에 대한 의구심이 들고 있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였던 시기에 발생했던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호도하려는 모습 속에서 보여 준 일본의 군사 강국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과 공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보수주의의 내셔널리즘적 해석에서는 일반적으로 구미 제국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었던 일본 제국주의가 유독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분노’나 ‘억울함’을 강조하거나, 당시 국제질서나 지역질서에서 일본이 주장했던 ‘대동아공영권’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방식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제기했던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따라서 일본의 ‘보통국가’ 추진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시바의 ‘전향적인 태도’는 패전 이후 독일이 유럽에서 전쟁 책임을 인정하며 유럽 여러 나라의 신뢰를 얻게 되었던 모멘텀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과거사를 직시하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와 신뢰 관계를 획득할 수 있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이 확보할 수 없었던 마지막 부분인 ‘군사력’을 보유한 ‘보통국가’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시바의 생각은 결국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보수주의의 흐름과 일치한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흐름


이시바의 내셔널리즘 속에는 대미종속적 상황에서의 탈피라는 일본 보수주의의 또 하나의 얼굴이 존재한다. 패전 이후 미국에 의한 일본 점령,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미국의 편무적인 안전보장 제공과 이에 대한 수동적인 기지 제공을 주 내용으로 하는 미일안보조약, 그리고 미일지위협정의 불평등성을 통해서 나타난 대미종속의 굴레를 벗어나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일본 보수주의의 얼굴이 그것이다.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위대의 국군화와 이를 위한 헌법 개정이 필요할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미국이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미국이 일본에 요구했던 헌법 개정과 일본의 군대 창설은 경제부흥을 중심에 두고 있었던 당시의 요시다 정권에 의해 거절되었지만, 그것은 당시 일본의 역대 보수 정권에게 확고한 원칙이라기보다는 잠정적인 유보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일본의 경제성장 이후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국군화는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일본 보수주의자들에게 끊임없이 논의되었던 주제이기도 했다. 이시바의 논의는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두 흐름을 보여 주는, 이시바의 '아시아판 NATO' 구상


이시바의 ‘아시아판 NATO’ 구상은 이 두 가지 흐름을 모두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냉전 시기에서도 미국의 역내 하위파트너로서 성장했던 일본과 이에 대해 불신과 경계심을 가진 아시아 반공 국가들은 유럽의 NATO와 같은 지역 단위의 다자적 군사동맹으로 묶일 수 없었다. 미국 주도의 아시아 집단안보 시스템에 묶어놓기 위해서, 미국은 아시아 개별 국가들과 양자 안보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미국이 총체적으로 제어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에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일본도 ‘보통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이런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시바 정권의 등장은 일본의 보수주의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이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지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미국도 이시바의 ‘아시아판 NATO’ 구상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는 일본의 과도한 ‘군사적’ 성장을 경계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어떤 나라도 대등한 파트너로 성장하지 못하는 비대칭 관계를 미국이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역 외부의 패권국가의 문제는 일본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게도 고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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