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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나무로 만든 카누를 탑니다

최종 수정일: 5월 4일

 

우리는 강변에 삽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노래한 김소월의 시는, 어느새 끝없이 치솟아버려 이제는 살 수 없는 강변의 아파트 가격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회자되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강가에 삽니다. 강가를 어디까지로 정의해야 할지는 모호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요 대도시들은 모두 강을 끼고 있습니다. 집터를 정할 때 우리는 배산임수를 꼼꼼하게 따집니다. 물이 가까워야 마실 물, 농사지을 물, 이런저런 생활용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호남과 충청의 생산물을 한양까지 실어 나를 수 있는 교통로였으며, 근대화 이후에는 공업용수 또한 강에서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빨래를 하지 않습니다. 물놀이를 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강을 따라 걷거나 뛰고, 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강변에서 맥주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는 강변에 아파트가 없어도 도시에 살고, 강변에 삽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우리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에 배가 있습니다. 한강에는 광나루, 마포나루, 서빙고나루, 동작나루, 노들나루 등이 있었고, 현재 한강 주변의 지명에서도 옛 나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거나 강의 상류와 하류를 오르내렸습니다. 이제는 32개의 한강다리 위로 자동차나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넙니다.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를 타고 강의 상류와 하류를 이동합니다. 우리는 배를 타고 강을 오가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배를 교통수단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오세훈 서울시장 정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가의 영역에서 배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또한 즐거운 활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카누나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정박지에 세워 둔 요트는 부의 상징입니다. MBC 무한도전의 조정 특집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회자되고 있고, 아저씨들은 베란다에서 로잉머신을 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는 아직 배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충동적으로 목조 카누를 주문하는 선주와 고통받는 목수



어느 날, 유튜브에서 본 목조 카누가 예뻐 보였습니다. 청년 목수님께 영상 링크를 보내 드리고 물어봅니다. 

“이거 만들어 주실 수 있으세요?”

“어렵겠는데요.”

“그럼 이 유튜브 영상 올린 사람에게 제작을 의뢰하겠습니다.”

“제가 해볼게요.”

목수님은 열을 가해 목재를 휘고, 접착제를 발라가며 켜켜이 쌓았습니다. 유리섬유로 안과 밖을 코팅해 마무리합니다. 설계부터 제작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용을 지불하려는데 목수님께서 추가비용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패들(노)은 별매입니다.”

“뭐라구요??? 배를 주문했는데 노를 안 주신다고요???”

“드릴게요.”

흥정을 통해 착하고 성실한 목수님의 노동력을 조금 착취했습니다.


새로운 지점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입니다



아내님께서 일하시는 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의 마당에 카누가 생겼습니다. 백년숲은 태화강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카누를 힘들게 트럭에 실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인 두 사람이 카누를 들고 강까지 걸어가서 살짝 강물에 담그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안전에 만전을 기하면서 천천히 노를 저으면 됩니다. 목수님께서 배를 잘 만드셨는지 좌우로 흔들림도 거의 없고 꽤 안정적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천천히 노를 저으며 물을 보고, 강가를 따라 흐드러지게 핀 꽃을 봅니다. 강변에 서 있는 왜가리를 보고, 강변 위에서 정지비행을 하고 있는 황조롱이를 봅니다. 아무런 막힘 없이 끝없이 펼쳐진 강 위의 하늘을 봅니다. 카누를 타고 새로운 지점에 가면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봅니다.


카누와 함께하는 관종의 삶


“아빠, 사람들이 자꾸 우리를 쳐다봐.”

“산들아, 그건 당연한 거란다. 이건 안 쳐다볼 수가 없단다.”

그렇습니다. 이 목재 카누는 쳐다보라고 만든 카누입니다. 나무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구나 실내 마감재, 공예품의 소재 등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건축재였고, 농기구였고,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나무는 좀 더 우리 삶 속에 가까이 녹아들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의 목재는 탄소 저장고로서 우리 곁에 아름다운 물건으로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굳이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여 목재 카누를 만든 것은 사람들에게 나무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로 만든 카누는 플라스틱 카누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카누를 타고서 하늘을 보고, 물을 보고, 구름을 보고, 햇살을 보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봅니다. 가끔 재미있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부러움이 담긴 응원을 보내기도 합니다. 나무는 다양한 모습의 행복으로 우리 삶 속에 자리합니다. 사람들이 나무와 함께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사진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생태정치포럼 운영위원장

자연과공생연구소 소장

전)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

서울대 산림과학부 석사

 청년활동가, 청년 김우성의 기후숲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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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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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Park
F Park
Apr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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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글! 네, 나무가 좀 더 우리 삶에 가까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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