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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포럼 | 당근마켓을 통해 옷장에 들어온 파타고니아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2024. 05. 03


아내 님은 항상 아름다우시지만 저는 저 옷이 아름답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당신 이 옷 한번 입어보지 않을래?


많은 물건들이 당근마켓을 거쳐 우리 손으로 옵니다. 가구, 전자제품, 주방용품, 책, 카메라, 운동기구 등등. 저희 집에는 새로 산 물건보다 중고장터에서 온 물건이 훨씬 많습니다. 옷을 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아내 님께서 당근마켓에서 옷을 사오셨습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없는 저는 그 옷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 색깔이 예쁜건가? 저 핏이 맞는 건가? 너무 크지 않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내 님께서는 그 옷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자꾸 당근마켓에서 사오셨습니다. 심지어는 아내 님의 회사에 있는 다른 분들도 같은 브랜드의 옷을 사 입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같은 브랜드의 옷이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 “당신, 이 옷 한번 입어보지 않을래?”라며 제 옷장의 한 켠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브랜드가 ‘파타고니아’입니다.  


‘아, 이 옷 마음에 안 든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없는 40대의 아저씨는 아내가 주는 옷을 잘 입습니다. 이 옷이 예쁘다는 아내의 말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저씨의 잘못이니까 조용히 받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 옷의 문제는 예쁜가 안 예쁜가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안에 입은 흰 티셔츠에 자꾸 옷의 부스러기가 묻어났습니다. 초록색 옷을 입으면 초록색 부스러기가, 노란색 옷을 입으면 노란색 부스러기가 묻어났습니다. 이상한 색의 옷이 자꾸 이상한 색의 부스러기를 뿜어냅니다. 가방에 묻고, 자동차 안전벨트에 묻고, 의자에 묻었습니다.

“박사 님, 이거 옷이 실시간으로 분해되고 있는데요? 이게 맞아요?”

아내 님께서는 그제서야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버려지는 페트병으로 원단을 만들고, 오래 입고, 헤지면 고쳐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라고 합니다. 매순간 분해되고 있는 옷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었지만 저는 순종적인 남편이니까, 아내 님의 말씀에 토를 달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옷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매일 저 옷을 입고 일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매출의 1%를 지구를 위해 사용해 왔습니다


아내 님께서 사랑하시는 파타고니아는 꽤 이상한 브랜드입니다. 옷을 파는 회사가 환경을 위해 옷을 사지 말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기를 쓰고 파타고니아를 사 입고 있습니다. 월스트리의 금융계 종사자들이 유니폼처럼 입어서 '파타고니아 조끼를 입은 노동자(Patagonia vested worker)'라는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를 비롯한 직원 인터뷰를 보면 이게 의류 회사 관계자의 인터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사람들은 은은하게 미쳐 있습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저는 환경단체의 활동가로 2년 정도 일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도 파타고니아 관계자들은 꽤나 환경에 진심입니다.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옷에 그러한 가치를 담기도 하지만 1985년부터 매출의 1%를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되살리기 위해 활동하는 전 세계 환경단체의 활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달곰 친구들, 우이령 사람들,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종이컵은 너그럽게 헤아려 주세요, 전통시장의 어묵국물을 텀블러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왜 옷 만드는 회사가 옷은 안 만들고 환경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걸까요? 기업의 사회적 참여는 왜 중요할까요? 파타고니아의 이러한 활동들이 기업의 성장과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요? 다행히도 기업의 이타적인 행동이 반드시 수익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파타고니아가 이야기하는 환경 보호, 공정한 노동, 안전한 일자리 같은 가치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고,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입니다. 훌륭한 인재를 파타고니아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투자자에게 호감을 얻기도 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은 2020년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펀드로의 투자 붐을 촉발했습니다. 자산운용사로서의 오랜 투자 경험을 통해 환경과 사회에 관한 책임을 다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진 회사가 장기적으로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며 자본시장에 방향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세계적인 기업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 또한 아주 적극적으로 ESG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시민사회의 전문가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여러 주체들과 함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 옷은 아내 님의 일상과 함께합니다

우리는 브랜드의 가치를 소비합니다


파타고니아를 입는 사람들은 브랜드에 담긴 가치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옷을 구입하면서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가치를 함께 소비합니다. 파타고니아 제품의 가격에는 연대와 참여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시시각각 분해되고 있는 파타고니아 옷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여름에는 입지 않을 테니까 그 동안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돌아오는 가을에는 조금 따뜻한 시선으로 파타고니아 옷을 옷장에서 꺼내야겠습니다. 더불어 파타고니아의 꿈이 성공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다른 기업들이 파타고니아의 모델을 바탕으로 공존의 가치가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지구는 제2, 제3, 제4의 파타고니아가 필요합니다.

 

글 사진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생태정치포럼 운영위원장

자연과공생연구소 소장

전)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

서울대 산림과학부 석사

청년활동가, 청년 김우성의 기후숲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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