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윤세종 |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법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

 

황희정 기자 2024-10-11

윤세종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로스쿨을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LL.M.)를 취득했다. 에너지 분야의 주요 국제 분쟁 사건과 환경 규제 자문을 담당한 변호사로 일하였고 2019년부터 기후솔루션의 이사로 해외 석탄발전 프로그램과 기후 금융을 담당했다. 2022년 기후환경단체인 플랜1.5를 설립해 현재 플랜1.5의 정책활동가로 있다.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법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


어릴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새만금 사업에 대해 법원의 판결이 미치는 영향력을 보고 환경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환경법에 관심이 생겨 법과대학에 진학은 했지만 법조인이 되어야겠다는 확신은 없었다. 군 입대를 먼저 했고, 제대 후 법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후 로스쿨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로펌에서 약 7년간 일하면서 환경규제 업무와 국제 중재 사건들을 많이 했다. 로펌에서도 재미있었고 지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고객들을 자문하고 대리하는 변호사가 사회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은 직접 환경문제 해결에 뛰어들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기후변화나 환경문제는 있는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법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다. 특히 기후변화 문제는 다른 환경문제보다 훨씬 영향과 규모가 컸는데 대응 수준이 가장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2015년 파리협정 체결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았다. 2018년 IPCC특별보고서가 나오면서 정말 급박한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 상황을 바꾸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국가의 기후 대응 정책을 정확히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2022년 '플랜1.5'를 설립했다.


기후변화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방법은 무엇인지


'플랜1.5'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형이고, 1.5도는 우리가 막아야 하는 마지노선이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과 같이 장기적인 목표와 방향은 설정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의 문제는 매우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이다. 정부는 “기후 대응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으므로 천천히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이런 수준으로는 파국적인 수준의 기후변화를 막기 어렵다.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기후변화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방법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 정부 정책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연구하고,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수단을 제안하고자 한다. 제안을 위해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석하고, 다른 나라의 정책까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 결정자,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한다. 우리가 알아낸 중요한 사실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캠페인 형식으로 알리기도 한다.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을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확인을 받아 내다



최근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단연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플랜1.5'는 '청소년기후행동' 청구인들을 대리해 국가의 기후 대응 부족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진행해 왔고, 4년 반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얻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후소송 승소다.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부의 확인을 받은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싸워 온 청구인들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과로 남게 되어 대리인으로서도 큰 보람이 있었다. 이 결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기후 대응이 본격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다. 기후소송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우리 국회와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을 강화할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당장 내년에 UN에 제출할 2035년 감축목표를 비롯해서 각 부문별 감축정책과 수단들도 재검토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플랜1.5'는 핵심적인 부문별 정책들을 하나씩 되짚어보고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지 제안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언론이 극단적 이상기후에 집중하면, 국내 기후변화 영향이 상대적으로 경미해져


기후변화는 ‘느린 재난’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해 온 '익숙한 방식의 재난'과 다르다. 지금 나타나는 기후변화의 피해는 지금 우리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의 결과'이기 보다는 '과거에 완료된 배출의 영향'이다. 지금 배출을 줄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진짜 영향은 10~20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언론이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이상기후에 대한 피해에 집중하면 우리가 한 선택의 결과를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이상기후 피해는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영향을 상대적으로 경미하게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전문가들은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발생할 문제를 '식량 가격에 관한 것'이라고 예측한다. 여기에 물자원과 난민 문제가 결합되면 국제정세와 안보 문제도 달라진다. 인과 관계가 복잡한 문제이고, 선명한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선적으로 기후변화를 보도하고 이해하게 되면 이 문제의 진짜 크기를 파악하지 못한다.


기술진보등의 성과 보도는 시민들에게 해결책이 만들어진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져


객관적으로 기후변화 문제 상황과 대응 수준의 격차는 절망에 가깝다. 희망과 절망의 균형 문제가 있다. 절망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부분들, 달라지고 있는 부분들을 부각하고 행동의 동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에서 다루는 ‘희망’의 형태는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하는 기술적 해결책이나 방법이다. 그 자체로는 혁신적일 수 있지만 규모상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 어려운 수단인 경우가 많다. '대기직접포집'(DAC)이나 '탄소포집이용저장(CCUS)', 수소의 산업적 이용 같은 수단들은 아직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고 당장 필요한 감축을 달성하기에 완성도가 부족하다. 이런 분야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단순히 성과가 있었다는 보도만 나간다면 시민들은 “해결책이 만들어지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게 되고, 전체 문제에서 이런 수단들이 갖는 효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게 된다. 희망은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결과에 기초해야 힘을 갖는다. 기후변화를 막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자원과 노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삶의 방식을 지금 바꾸지 않으면서 기후변화가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을 보호하는 일이고, 그 결과로 더 나은,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모두가 공유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관점이 기후변화 보도에 필요하다.


언론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행동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내야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의 우선순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문제라는 것은 모두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막상 우리의 자원과 노력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는 다른 문제가 우선된다. 이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지금 기후대응을 하지 않으면, 대응에 들어가는 노력보다 훨씬 크고 오래 지속되는 더 큰 피해가 생길 것이다. 언론은 공동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지금까지 언론이 기후변화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아쉬움이 분명 존재한다. 단기적인 ‘뉴스 가치’에 치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다 극적이고 단편적인 사건에만 집중하고 문제 전체를 종합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결과,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행동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기자수첩

윤세종 변호사가 2024년 4월 23일, 뱔표한 '대한민국 기후소송 공개변론 공동대리인단 기자회견문' 전문을 싣는다


안녕하십니까?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 윤세종 변호사입니다. 

오늘 저희는 지난 4년간 청소년, 어린이 그리고 각계 각층의 시민들이 제기한 기후변화 헌법소원의 첫 변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후변화는 우리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기입니다. ‘안정된 기후에서 살아갈 권리’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환경권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이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 255명의 청구인들은 국가의 기후 대응이 국민들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침해하며, 특히 본격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살아나가야 할 세대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헌법적 확인을 받기 위해 이 소송에 나섰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청구인들이 묻고자 하는 것은 “지금처럼 해도 우리 사회가 괜찮은가?”라는 질문입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후 대응 수준으로는 재난적인 기후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의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금이 최선이라고, 앞으로 더 잘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청구인들이 바로 지금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나중’이란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2030년까지 제대로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남겨진 탄소예산은 모두 소진되고,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온도상승 1.5도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 왔습니다. 국회와 정부의 기후대응 실패가 우리 국민, 특히 다음 세대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 각국의 최고법원이 기후변화가 인권과 기본권의 문제이고, 과학적으로 요구되는 감축목표를 세우지 못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 위반이라는 판단을 연이어 내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송은 기후변화라는 중대한 위협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사건이 본격적인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면서 저희 공동대리인단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변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댓글 0개

관련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bottom of page